고장 난 몸뚱이로 춤추는 니체의 '아모르 파티'
아내가 죽고 몇 년, 나는 내 몸이 완전히 식어버린 무덤인 줄로만 알았다. 돌이켜보면 아내와 함께한 마지막 십수 년은 부부라는 이름의 결합이라기보다, 서로의 생을 부축하는 환자와 간병인, 혹은 그저 한집에 사는 살붙이 같은 묘한 의리였다.
병마에 찌들어 시들어가는 아내 곁에서 섹스를 떠올리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불경(不敬)이었고, 가끔 닿는 아내의 살결은 설렘이 증발해 버린 메마른 온기일 뿐이었다. 남녀의 뜨거움이 사라진 자리를 가족이라는 이름의 경건한 관념이 채웠고, 나는 그 금기된 분위기 속에서 욕망의 뿌리까지 다 타버린 출가한 스님처럼 살았다. 내 몸 안의 남성은 그렇게 죽어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웬걸, 아내가 떠나고 슬픔의 유효기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 밑바닥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그리움'이나 '외로움' 같은 우아한 단어로 포장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짐승 같은 날것의 '욕정'이다. 지나가는 여자의 매끄러운 종아리만 봐도 눈이 뒤집히고, 닫힌 문 뒤에서 벌어질 살과 살의 부딪힘을 상상하느라 밤잠을 설친다.
80 먹은 노인네가 미친 거라고 손가락질해도 좋다. 하지만 이 미친 발작이야말로 내가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다는 유일하고도 비참한 증거다.
문제는 내 마음은 20대 피 끓는 청춘인데, 현실의 몸뚱이는 쓰레기나 다름없다는 사실이다. 전립선비대증이라는 고약한 병은 내 남성성을 변기 앞에서부터 무참히 짓밟는다. 찔끔거리며 새어 나오는 오줌발을 붙잡고 쩔쩔매는 꼴이라니. 더 기가 찬 건, 여자를 갈구하는 마음은 하늘을 찌르는데 정작 내 물건은 죽은 고목나무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발기부전. 이 단어가 주는 거세의 공포는 80이 넘었어도 여전히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심장을 후벼 판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여자를 덮칠 듯 사자처럼 포효하고 싶지만, 정작 누군가 앞에서 옷을 벗어야 한다면 나는 수치심에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 "세워보지도 못하고 망신만 당하면 어쩌나" 하는 공포.
이 쭈글쭈글한 가죽데기와 고장 난 기계 같은 몸뚱이가 내 욕망을 비웃는 것 같아 미칠 지경이다. 나는 지금 내 안의 뜨거운 짐승과, 그 짐승을 가둬버린 낡고 초라한 감옥 사이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세상은 내게 "늙었으면 늙은이답게 죽음을 준비하라"고 윽박지른다. 공원 의자에 멍하니 앉아 비둘기 밥이나 주거나, 손주 녀석들 만나면 용돈 몇 푼 쥐여줄 생각이나 하며 인자한 미소나 짓고 있으라는 거다.
이런 세상에서 80대 노인이 성욕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나는 그저 '노망난 영감탱이'로 전락한다. 평생 쌓아온 이름 석 자와 명예,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 얼굴을 떠올리면 등골에 식은땀이 흐른다. "우리 아버지가 그럴 분이 아닌데"라는 자식들의 믿음이 깨지는 순간, 내가 마주할 망신살은 죽음보다 더한 공포다.
이 나이에 여자를 탐하다가 구설에라도 오르면, 그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한 인간의 '사회적 부관참시'나 다름없다. 그놈의 망신살이 무서워 나는 오늘도 요동치는 욕정을 억지로 누르며 점잖은 척, 다 해탈한 척 연기를 한다.
내면에서는 피 끓는 사자가 쇠창살을 들이받으며 포효하고 있는데, 겉으로는 남들이 씌워놓은 도덕의 짐을 꾸역꾸역 짊어진 채 비틀거리는 꼴이라니. 남의 눈치나 보느라 내 생명력을 스스로 검열하는 이 비겁한 연극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마음은 이미 저 담장 너머 여자의 온기를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는데, 현실의 무릎은 자식들의 눈초리와 세상의 손가락질 앞에 속절없이 꺾여 바닥을 기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이대로 박제된 채 썩어갈 것인가? 내게 남은 시간은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해는 이미 서산 너머로 기울었고, 내 생의 촛불은 바람 앞에 위태롭게 일렁이며 마지막 심지를 태우고 있다. 내일 당장 눈을 뜨지 못한다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 그 짧고도 귀한 남은 생을, 나는 그저 세상이 시키는 대로 죽은 듯이 엎드려 '점잖은 송장'으로 살다가 마감해야 한단 말인가.
무덤 속으로 가져갈 수도 없는 이 뜨거운 욕망을 품고, 단 한 번의 불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차디찬 흙 속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하면 억울함에 간장이 다 녹아내린다. 전립선은 막히고 물건은 죽어버린 이 폐허 같은 몸뚱이, 언제 멈춰도 이상하지 않을 이 고장 난 기계가 내 마지막 남은 생의 시간을 비웃는 것 같다. 비참하다. 그리고 원통하다.
하지만 비참함에 젖어 있기엔 내게 허락된 시간이 너무도 짧다. 나는 이제 이 비참한 육체와 사회적 매장의 공포를 뚫고서라도, 내 남은 생을 단 일 분 일 초라도 '진짜 사람'으로 살 수 있는 나만의 비겁하지 않은 길을 찾아야만 한다.
니체가 말한 '힘에의 의지'를 사람들은 흔히 남을 짓밟고 군림하는 억센 힘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진짜 의미는 그런 게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무너져 내리는 나 자신을 기어이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끈질긴 생명력, 내 한계를 어떻게든 뚫고 나가려는 눈물겨운 발버둥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가 다르게 낡아가는 나의 80대 육체야말로 이 '힘에의 의지'가 치열하게 맞붙기 딱 좋은, 가장 가혹하고도 완벽한 전장(戰場)이다.
전립선이 부어올라 소변 한 줄기조차 내 마음대로 다스리지 못할 때, 내 무력한 몸뚱이는 끊임없이 속삭인다. "이제 다 끝났으니 그만 포기하고 늙은이답게 찌그러져 있으라"고. 더 이상 발기되지 않는 아랫도리는 내 남성성이 완전히 죽어버렸음을 매일 아침 비웃듯 증명한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나는 그저 폐기 처분만 기다리는 고장 난 기계일 뿐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벼랑 끝으로 내몰린 바로 그 캄캄한 절망의 밑바닥에서 내 안의 '힘에의 의지'는 더 매섭게 눈을 뜬다.
몸은 이토록 참담한 폐허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누군가의 고운 살결을 탐하고 뜨거운 온기를 미친 듯이 갈구하는 내 안의 이 짐승 같은 성욕. 이것은 늙고 병든 육체라는 감옥에 고분고분 갇혀 죽음을 기다리지는 않겠다는 내 생명력의 격렬한 저항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소변도 제대로 못 가리는 팔순 노인네가, 그 다 망가진 몸뚱이를 끌어안고도 여전히 무언가를 이토록 열렬히 원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막히고 경이로운 일인가.
이 징글징글한 욕정은 내 영혼이 아직 썩어 문드러지지 않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고, 그저 점잖은 척 밥이나 축내며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진짜 시체나 다름없는 삶이니까. 내 안의 이 펄떡이는 의지는 늙음의 비참함과 수치심을 거름 삼아 더욱 독하게 자라난다. 찔끔거리는 오줌발과 죽어버린 물건을 내려다보며 뼈저린 비애감에 사로잡히다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뜨겁게 원하고 있다"는 그 욕망의 크기가 내 절망보다 훨씬 더 크다는 걸 깨닫는 순간, 나는 비로소 쭈그러든 노인이 아니라 내 삶의 당당한 주인이 된다.
니체는 "고통을 깊이 겪어본 자만이 삶을 진정으로 긍정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내 안에서 요동치는 성욕은 단순히 말초적인 쾌락을 좇는 얄팍한 본능이 아니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허무가 시시각각 내 목줄을 조여올 때마다, "아니다, 나는 아직 여기에 생생하게 살아있다!"라고 온몸으로 악을 쓰는, 단단하고 눈물겨운 생존의 외침이다. 그래서 이 갈증은 나를 밤마다 비참하게 짓누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비참함을 딛고 일어서는 '극복하는 자'로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내 안의 '힘에의 의지'는 이렇게 속삭인다. 제 기능도 못 하는 성기를 붙잡고 좌절하는 짓은 그만두라고. 대신, 그 껍데기 같은 육체적 기능을 훌쩍 뛰어넘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갈망을 스스로 만들어내라고. 80세에 불타오르는 이 욕정은 종족 번식 같은 생물학적 본능 따위가 아니다. 시시각각 소멸해가는 육체라는 잔인한 한계를 박살 내고 솟구쳐 오르는, 가장 순수하고 폭발적인 생의 창조다.
나는 이 뒤늦은, 그래서 더 절박한 성욕을 통해 죽음 앞에 비겁하게 엎드리는 대신, 마지막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나 자신을 가장 뜨겁게 불태우는 생의 유희를 기꺼이 즐기기로 했다.
벼랑 끝에서 내가 움켜쥔 동아줄은 결국 니체의 '아모르 파티(Amor Fati)'다. 아모르 파티는 단순히 내 처지를 체념하거나 이 악물고 참아내는 인내가 아니다. 그것은 나를 밤낮으로 괴롭히는 전립선비대증, 고장 나버린 성기, 그리고 쭈글쭈글한 가죽데기가 된 내 흉측한 육체까지도 "그래, 이것이 내 삶이다! 기꺼이 다시 한번!"이라고 외치며 뜨겁게 껴안는 격정적인 긍정이다. 나는 이제 그깟 점잖은 늙은이 코스프레를 집어치우려 한다. 비록 내 몸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지만, 내 안의 욕망은 그 어느 때보다 서슬 퍼렇게 살아 펄떡이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처음 내 안에서 욕정이 폭발했을 때는 그저 젊고 팽팽한 육체를 탐했다. 지나가는 여자의 매끄러운 종아리를 훔쳐보며 침을 삼키던 것은, 어쩌면 다 잃어버린 내 청춘을 타인의 생기에서 훔쳐와 보상받으려 했던 노인네의 얄팍하고 추한 도피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고장 난 내 몸뚱이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기 시작한 '아모르 파티'의 순간, 욕망의 물길은 완전히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팽팽한 젊음을 갈구한다는 건, 결국 늙어버린 나 자신을 혐오하고 부정하는 비겁한 짓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의 이 참담한 쇠락을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끌어안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남의 젊음을 빨아먹어 내 허기를 채우려던 야차 같은 갈증이 스르르 가라앉은 것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나와 똑같이 허물어져 가는 누군가의 쇠락을 기꺼이 품어안고 싶은 거대한 연민과 다정함이 차올랐다. 내 낡은 가죽데기를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 사람만이, 상대의 주름진 살결 속에서 세월이 조각한 고귀함을 온전히 쓰다듬을 수 있다.
나는 이제 '물건이 작동하는 기계'로서의 남성이기를 과감히 포기한다. 젊은 놈들이나 목매는 '삽입'과 '사정'이라는 그 천박하고 얄팍한 잣대에서 내 성(性)을 완전히 해방하기로 한 것이다. 아모르 파티의 진짜 위력은 여기서 빛을 발한다. 육체의 기능이 멈춰버린 이 절망적인 지점이, 내 남성성의 비참한 종말이 아니라 오직 노년만이 도달할 수 있는 '정교하고 눈부신 교감의 예술'이 시작되는 축복의 문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예술은 짐승처럼 헐떡이던 젊은 날의 격정적인 살 섞음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서로의 주름진 살결을 천천히 훑어 내리며 그 안에 굽이치는 생의 굴곡을 읽어내는 고요하고 성스러운 탐색이다. 무너져가는 서로의 육신을 가엾게 여기고 보듬는 아주 깊은 연민의 나눔이다. 완벽하지 않은 늙은 몸을 있는 그대로 허락하고, 텅 빈 결핍의 공간을 수십 년 세월로 다져진 밀도 높은 대화와 고요한 숨결로 채워 나갈 때, 우리는 살덩이를 비비는 쾌락을 훌쩍 넘어선 정신적 일체감이라는 진짜 오르가즘에 도달한다.
늙은이가 주책맞게 망신살이 뻗쳐 세상 구설에 오르내린다 한들 어떠랴. 나는 내 안에서 타오르는 이 불꽃을 남의 눈치 보느라 억지로 끄지는 않겠다. 발기되지 않는 페니스를 원망하며 어두운 방구석에 처박혀 죽을 날만 기다리느니, 그 부끄럽고 초라한 처지까지도 상대에게 솔직히 내보이며 따뜻한 온기를 나눌 용기를 낼 것이다. 검버섯 핀 늙은 몸뚱이와 고장 난 기능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그 결핍조차 내 삶이 새겨놓은 당당한 무늬로 보여줄 수 있을 때, 나는 비로소 세상이 내게 뒤집어씌운 '점잖게 박제된 늙은이'라는 굴레를 산산조각 낼 수 있다. 니체는 자신의 끔찍한 한계를 두 눈 똑바로 뜨고 마주하며, 그 부서진 잔해 위에서 기어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자를 '초인(Übermensch)'이라 불렀다. 껍데기를 다 벗어던진 이 솔직하고 발칙한 용기야말로 노년의 내가 도달한 초인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나의 앞으로의 성생활은 이제 누군가의 육체를 정복하는 폭력이 아니라, 서로의 깊은 외로움을 다정하게 매만지는 유희다. 비록 아래도리를 꼿꼿하게 세우진 못해도, 나는 여전히 상대의 온기를 열렬히 탐하고 내 안에 남은 뜨거운 열정을 아낌없이 나누어줄 수 있다. 서로의 주름진 손을 맞잡을 때 찌릿하게 흐르는 전류, 쇠락해가는 육체를 가여워하며 서로를 품는 그 먹먹한 눈빛이야말로 젊은 것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노년만의 고귀하고 끈적한 성적 유희다.
자식들 얼굴에 먹칠할까 두려워 떨던 그 체면이라는 유령으로부터 나는 이제 완전히 자유롭다. 내 남은 생은 남들이 만들어놓은 얄팍한 도덕을 위해 희생하며 살기엔 너무나도 짧고 아름답다. 나는 마지막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점잖고 추한 노인네가 아니라 '뜨거운 인간'으로, 펄떡이는 '살아있는 짐승'으로 살다가 갈 것이다.
80세. 내 전립선은 꽉 막혔을지 몰라도, 내 삶을 온전히 사랑하겠다는 아모르 파티의 물길은 이제야 비로소 시원하게 터졌다. 나는 이 고장 난 몸뚱이를 미치도록 사랑하며, 내 생의 마지막 춤을 기꺼이 욕망의 불꽃 위에서 출 것이다.
이것이 팔순 노인인 내가 생의 끄트머리에서 선택한, 가장 슬기롭고도 적나라한 성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