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망치로 벼려낸 공존의 기술
우리 집 저녁 식탁은 매일이 소리 없는 전쟁터다. 70대 아버지는 안방에서부터 거실까지 극우 정치 유튜버의 격앙된 고함을 자신의 든든한 지원군처럼 끌고 나오고, 40대인 나는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그들에게 슈퍼챗을 쏘고 있는 아버지가 한심하다며 짜증을 낸다.
내 눈에 아버지는 가짜 뉴스에 포박당한 고집불통 노인이고, 아버지 눈에 나는 예술 한답시고 돈 한 푼 못 벌면서 나라 망치는 '종북좌파' 소리나 늘어놓는, 위선적이고 싸가지 없는 딸이다. 아버지가 흔드는 가상의 ‘태극기’와 내가 붙잡고 있는 ‘상식’이라는 잣대는 결코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그리며 한 치의 양보 없이 충돌한다. 서로가 서로를 극단이라 비난하는 우리의 식탁 위에는 언제나 차가운 역겨움과 원망의 공기가 감돌고 있다.
사실 아버지는 자부심 하나로 평생을 버텨온 분이다. 그 어렵던 시절 대학을 졸업하고 굴지의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하기까지, 아버지는 자신의 힘으로 이 세상을 직접 조각하며 승리해 온 엘리트였다. 은퇴 후에도 백수와 다름없는 예술가 딸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만큼 여유로운 자산을 일구셨다.
아무것도 없던 이 나라의 산업화 최선봉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웠다는 확신은 아버지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얼마 전까진 주말마다 젊은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 광화문 광장으로 달려가 직접 깃발을 흔들며 당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증명하던 능동적인 전사셨다.
그러나 거대한 운명이 아버지의 견고한 성벽을 뿌리부터 허물기 시작했다. 평생의 동반자였던 엄마를 암으로 떠나보낸 뒤, 아버지의 강건했던 신체 또한 예전 같지 않다. 광장으로 나가는 대신 그닥 미덥지 않은 맏딸인 내게 몸을 의탁해야 하는 처지가 된 아버지는 이제 좁은 안방에서 극우 유튜브의 고함 소리에 기대어 하루를 보낸다.
사실 그 곁을 지키는 나의 속사정 또한 초라하기는 마찬가지다. 예술가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붙여보지만, 현실의 나는 마흔이 넘도록 제 앞가림 하나 못해 늙은 아버지의 재정적 뒷받침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무능한 몽상가일 뿐이다.
세상을 향해 고귀한 가치를 읊조리면서도 정작 내 밥그릇 하나 스스로 채우지 못하는 나의 비루한 현실은, 아버지가 세워둔 견고한 성공의 잣대 앞에서 매번 갈기갈기 찢겨져 나간다.
아버지는 무너져가는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유튜브의 고함 속에 숨고, 나는 내 초라한 현실을 가리기 위해 '깨어 있는 시민'이라는 도덕적 우월감 뒤로 도망친다.
나는 이 갈등이 그저 세대 간의 ‘무지함과 깨어 있음’의 싸움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믿어야만 나의 무능함을 가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니체의 망치를 들고 그 이면을 내리쳐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본격적으로 아버지의 분노와 나의 역겨움을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그 거친 파편들 사이에서 뜻밖의 진실을 목격했다. 그곳에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날을 세운 두 개의 견고한 ‘우상’이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성벽을 지키는 늙은 전사였다. 아버지가 TV 앞에서 쏟아내는 분노는 좌파 정치진영이 미워서라기보다, 자신이 평생을 바쳐 일궈온 세계가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것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 내지르는 비명에 가까웠다.
엄마의 빈자리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이라는 ‘실존적 허무’에 대항해, 아버지는 ‘과거의 영광’이라는 우상을 세웠다. 자신이 믿는 가치가 절대적인 선(善)이어야만 고단했던 세월이 비로소 의미를 갖고, 어렵던 그 시절의 자신의 수고가 보상받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보상을 위해 현재를 규정하는 이 해묵은 목적론은 아버지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동시에 나 또한 나만의 우상에 갇혀 있었다. 나는 내가 쥔 ‘합리성’과 ‘민주적 가치’가 유일한 정답이라는 오만에 빠져 아버지를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낙인찍었다. 세상을 선과 악으로만 나누려 했던 나의 이분법은 아버지의 고집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나 또한 내가 믿는 ‘옳음’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도 아버지는 화면 속 선동가의 목소리에 맞춰 식탁을 내리치려다, 빗나간 손등을 쥐고 마른기침을 삼켰다. 화면 속 사내의 목소리는 저토록 기세등등한데, 정작 그 소리에 기대어 앉은 아버지의 기침 소리는 한없이 버겁고 위태로웠다. 아버지는 무너져 내리는 자신의 초라한 현실을 들키지 않으려 더 크게 고함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분노로 일그러진 주름 사이로 찰나처럼 스쳐 지나간 것은 맹신이 아니라, 세상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늙은 투사의 지독한 공포였다.
그 낯선 두려움을 마주한 순간, 나를 팽팽하게 당기고 있던 분노가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매일 이렇게 서로를 할퀴고 있었던 걸까. 늘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내 안의 단단한 잣대들이 처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 니체의 ‘망치’가 떠오른 것은 바로 그때였다. 니체에게 망치는 단순히 파괴하는 흉기가 아니라,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우상들을 두드려 그 속이 비어 있는지 확인하는 진단 도구다. 가만히 숨을 고르고, 내가 가진 상식과 아버지의 신념을 그 망치로 두드려 보자 그 안에서는 텅 빈 공허한 소리만 울려 퍼졌다.
우리가 그토록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정답들이 대단한 진리가 아니라, 사실 각자의 불안과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세워둔 껍데기였음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아버지와 똑같이 초라함을 들키기 싫어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머리에 띵한 충격과 함께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버지가 쥔 그 낡은 깃발은 진리가 아니라, 무너져가는 자아를 지탱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붙잡은 지팡이였다. 엘리트로서 호령하던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무력함 사이에서, 아버지는 길을 잃지 않으려 그토록 처절하게 소리를 지르고 계셨던 것이다.
아버지를 미워하고 한심해하던 나의 경멸은 사실 그 처절한 생존 투쟁을 이해하지 못한 나의 나약함이었다. 망치가 휩쓸고 간 식탁 위에는 적막한 공백이 남았고, 나는 그 텅 빈 공간에서 처음으로 아버지를 '적'이 아닌 '사람'으로 마주했다.
식탁 위로 쏟아졌던 그 눈물은, 나를 철부지 싸움꾼에서 항해하는 해석가로 단숨에 뒤바꾸어 놓았다. 망치가 휩쓸고 간 빈자리에서, 나는 속절없이 무너져가는 한 인간의 실존적 벼랑을 보았다. 그러나 뺨을 닦아낸 뒤 찾아온 감정은 결코 상대를 불쌍히 여기는 값싼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붕괴를 막기 위해 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한 생명에 대한 장엄한 목격이다. 나는 비로소 아버지를 '내가 가르쳐야 할 낙오자'가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지켜내는 '고귀한 투쟁가'로 존중하게 되었다.
여기서 나는 니체가 말한 ‘거리의 파토스(Pathos of Distance)’를 배운다. 그것은 타인을 나와 똑같은 존재로 만들려는 비겁한 동정을 버리고, 서로의 다름이 빚어내는 그 깊은 간격 자체를 고귀한 품격으로 긍정하는 마음이다.
거리의 파토스는 내게 '이해'라는 명목의 침범을 멈추라고 말한다. 그간 아버지를 내 상식의 틀로 구겨 넣으려 했던 시도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무모했었는지를 정직하게 고백한다.
비로소 시야가 맑아지자, 식탁 위의 풍경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찌개 김 사이로 아버지의 손이 보인다. 검버섯이 내려앉고 주름지고 투박하기 그지없는 그 손은 거친 파도가 휘몰아치던 시대의 한복판에서 가족과 자신의 세계를 지켜내기 위해 사력을 다해 노를 저어온 흔적이다.
손가락 마디마다 아로새겨진 고단함은 한 생명이 짊어져 온 운명의 무게이자, 그 자체로 숭고한 삶의 궤적이 되어 내 시선에 깊게 머문다. 유튜브의 고함 소리 사이로 새어 나오는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 또한 더 이상 소음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를 향한 공격이기 이전에, 단절된 세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외롭고도 절박한 맥박이다. 이제 우리 사이의 이 메울 수 없는 거리는 차가운 벽이 아니라, 서로의 고결함을 지켜주는 신성한 비무장지대다.
아버지는 그 거리 너머에서 노병으로서 자신의 깃발을 사수하고, 나는 이 서늘한 간격 덕분에 아버지를 내 잣대로 심판하려 들지 않고, 각자의 항로를 묵묵히 지켜보는 관찰자로서 온전히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4. 서늘한 간격 위에 피어난 꽃, 운명을 춤추게 하는 아모르 파티(Amor Fati)
이제 우리의 식탁 위에는 진정한 화해와 공존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것은 아버지가 내 입맛에 맞게 변했거나, 우리가 극적인 타협을 거쳐 얻어낸 평화가 아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완고하고, 거실에는 여전히 극우 유튜버의 고함 소리로 가득하다. 달라진 것은 오직 하나, 내가 서 있는 자리와 아버지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를 ‘고쳐야 할 오답’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자기 방식대로 생을 긍정하려 애쓰는 한 생명의 뜨거운 몸부림으로 바라본다.
니체에게 화해란 과거를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갈등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기에 나는 그것을 원했다”고 선언하는 운명애(Amor Fati)다.
나는 아버지와 주고받았던 지독한 불협화음, 서로를 향해 쏘아붙이던 서늘한 눈빛, 그 모든 상처 입은 시간들을 이제 기꺼이 긍정하기로 한다. 그 진통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그 뾰족했던 부딪힘 너머에서 내 몫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영원히 평행선을 걷겠지만, 이제 그 선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나란히 나아가는 든든한 철길이 된다.
니체가 꿈꿨던 공존은 모든 것이 하나로 뒤섞이는 질척한 화합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개의 태양이 각자의 궤도를 지키며 고유한 빛을 내뿜는 당당한 거리두기다.
나는 더 이상 나의 빛으로 아버지의 어둠을 몰아내려 하거나, 아버지의 궤도를 나의 중력 안으로 끌어당기려 애쓰지 않는다. 우리는 같은 식탁에 앉아 있지만, 각자의 별에서 빛나고 있는 독립된 주권자들이다.
이 서늘하고도 선명한 간격이 유지될 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를 훼손하지 않고 그 찬란한 생명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침범하지 않기에 영원할 수 있는 이 평행선 위에서, 우리는 각자의 색깔로 빛나며 나란히 걷는 고귀한 동행자가 된다.
‘아모르 파티’는 단순히 견뎌내는 인내가 아니라, 우리 사이의 ‘서늘한 간격’을 즐기는 적극적인 유희다. 아버지는 대지 위에서 자신의 성벽을 사수하고, 나는 그 대지를 적시는 파도가 되어 나만의 항로를 개척한다.
아버지가 내뿜는 거친 분노 속에서 나는 ‘살고자 하는 파도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나의 삶을 조각한다. 식탁 위에 뒤섞인 태극기와 촛불, 그 어지러운 혼란조차 생동하는 삶이 빚어내는 무죄한 풍경일 뿐이다.
나는 내 몫의 찌개를 뜨며, 저 건너편에서 치열하게 투쟁 중인 늙은 전사에게 고요한 경의를 표한다. 이 서늘한 간격이야말로 우리가 서로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서로를 안쓰럽게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나는 아버지를 바꾸려 했던 오만함을 거두고, 대신 이 운명적인 부딪힘을 향해 미소 짓는다.
“이것이 우리 부녀의 삶인가? 지독하게 부딪히는구나.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이 불협화음이야말로 내 몫의 삶을 온전히 껴안고 항해하는 내가 만난 가장 장엄한 파도이며, 우리 삶이 내는 가장 솔직한 선율이다. 나는 이제 이 운명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거친 삶의 파도를 타고서 가장 우아하게 춤을 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