탯줄을 끊는 서늘한 칼날
1. 똥밭에서 구르며 쌓아 올린 금미륵
서른다섯이었다. 세상이 내게서 남편이라는 우산을 뺏어가고, '청상과부'라는 서늘한 명찰을 달아준 나이가. 그날 이후 내 인생은 우아한 비극이 아니라, 진흙탕 속의 개싸움이었다.
남들처럼 팔자 좋게 사우나에서 땀을 빼거나 백화점 문턱을 넘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나는 식당 주방의 짬통 앞에서 락스 냄새에 코가 마비되도록 불판을 닦았다. 남의 집 변기에 묻은 똥을 닦아내며, 내 자존심도 변기 물과 함께 수없이 내려 보냈다. 지문이 닳아 없어진 손가락 끝은 갈라지고 터져, 겨울이면 피가 배어 나왔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내 등에는 '어미'라는 거대하고 징그러운 혹이 돋아나 있었고,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게 하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가 나를 짐승처럼 살게 했다.
그렇게 10년, 내 손이 여자의 손이기를 포기한 뒤에야 쥐어본 핏물 어린 종잣돈이었다. 나는 그 돈을 들고 복덕방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리며 좋은 정보를 캐러 다녔다. 가방끈은 짧아도 시류를 읽고 돈 냄새를 맡는 짐승 같은 촉 하나는 기가 막혔다. 재개발 현장의 시멘트 가루를 뒤집어쓰고, 사기꾼들과 머리채 잡고 싸우며 바닥의 생리를 익혔다. 투기꾼이라는 손가락질? 웃기지 마라. 그것은 내 아들을 세상의 무시로부터 지켜줄 '울타리'를 치는 피 눈물 나게 처절한 공사였다.
아들이 여자를 데려왔다. 곱게 자란 티가 나는, 내가 살아온 세상과는 다른 세상의 아이였다. 나는 서둘러야 했다. 내 아들이 저 잘난 아이 앞에서 기죽지 않게 하려면 내 무기인 '돈'을 쥐여 줘야 했다. 며칠 뒤, 나는 아들을 조용히 불러 내 지난한 세월의 결정체인 '신축 아파트 등기 권리증'을 식탁 위에 툭 던졌다.
"자, 받아라. 대출 없는 깨끗한 집이다. 너는 네 아비처럼, 아니 나처럼 구질구질하게 시작하지 마라."
나는 칭찬을 바란 게 아니었다. 그저 내 아들이 이 단단한 집 안에서 비바람 맞지 않길 바랐다. 그런데 아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귀를 의심케 했다.
"어머니... 죄송해요. 이거 못 받습니다."
아들의 눈이 내 눈을 피했다. 그리고 그 옆, 다소곳이 앉아 있는 며느리 될 아이가 내 속을 뒤집어놓는 한마디를 보탰다.
"어머니, 마음은 감사하지만요. 저희는 '경제적 자립'을 원칙으로 삼았어요. 부모님 도움 받으면 아무래도... 서로 불편해지잖아요. 저희 일은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권리증을 밀어내는 그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 순간, 내가 피땀으로 쌓아 올린 황금 울타리가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것은 독립 선언이 아니었다. 홀어미 밑에서 자랐다고 손가락질받을까 봐, 내 살을 깎아다 그 애 밑동을 단단히 괴어주며 기를 쓰고 버텨온 어미의 30년 세월을 '부담스러운 짐짝' 취급하며 쓰레기통에 처박는, 가장 잔인한 패륜이었다.
2. 가방끈 긴 여우와 무식한 졸부
천하의 효자였던 내 아들이 제 머리로 이런 발칙한 결단을 내렸을 리 없다. 범인은 저 옆에서 생글거리고 있는, 저 꼬리 아홉 달린 여우 같은 년이었다.
처음부터 그 애가 맘에 들지 않았다. 묘하게 기가 죽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랬다. 그 아이는 명문대를 나왔다던가. 화장기 없는 얼굴인데도 귀티가 흘렀다. 돈으로 처바른 내 명품 백과 옷과는 질이 다른, 태생적인 우아함이 뿜어내는 오만함이 있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사람 속내를 꿰뚫어 보던 내 기민한 촉이, 저 웃는 낯짝 뒤의 서늘한 싸함을 단박에 감지해 냈다.
"야, 너 지금 시어머니가 집을 해준다는데 그걸 마다해? 배가 불렀냐?"
내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높아졌다. 그러자 그 아이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마치 철없는 어린애를 타이르듯 차분하게 대꾸했다.
"어머니, 화내지 마시고요. 이건 배부른 게 아니라 '가치관'의 문제예요. 지원에는 간섭이 따르기 마련이잖아요. 저희는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어요. 그게 건강한 가족 관계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가치관? 종속? 주체적?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매끄러운 단어들 앞에서, 나는 순식간에 '돈으로 자식을 휘두르려는 무식하고 천박한 졸부'가 되어버렸다. 말문이 막혔다. 논리로 반박하고 싶은데, 평생 돈 계산기만 두드리느라 가방끈 짧은 나는 그년의 '고상한 논리'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더 환장하겠는 건 내 아들의 꼴이었다. 내가 억척같이 키워 왕자처럼 입혀놓은 그놈이, 내 편을 들기는커녕 며느리의 눈치를 보며 쩔쩔매고 있었다.
"엄마... 그만해. 이 사람 말이 맞아. 우리 뜻대로 하게 해 줘."
아들은 내 눈을 피하며 슬그머니 며느리의 손을 잡았다. 그 깍지 낀 손가락이 내 심장을 난도질했다.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 젊음을 락스 물에 담가 가며 너를 왕자로 만들었는데, 너는 고작 저 굴러들어 온 여우의 시종 노릇을 하려고 나를 버리는가. 내 헌신의 대가가 고작 이런 뒷방 늙은이 취급인가.
하지만 나는 소리 지르지 못했다. 등기 권리증을 찢어발기지도 못했다. 며느리의 눈치를 보며 쩔쩔매는 아들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어서, 그리고 행여나 내가 화를 내면 아들이 영영 저 여우 치마폭에 감겨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릴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텅 빈 거실에 홀로 남겨진 밤, 나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아니면 껍데기만 남은 내 인생에 대한 조소인지 모를 감정이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3. 단톡방의 꽃그림과 미치광이 철학자
며칠을 식음 전폐하고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억울해서 잠도 안 왔다. 내가 어떻게 번 돈인데. 똥 묻은 변기 닦아가며 모은 내 피 같은 돈을, 그 여우 같은 년이 '간섭'이라는 단어 하나로 쓰레기 취급을 해?
"카톡, 카톡!"
머리맡에서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어댔다. 근저 건물주들의 단톡방이었다. 아침마다 할 일 없는 노인네들이 '좋은 글', '명언'이라며 출처도 모를 글귀를 꽃그림에 박아 퍼 나르는, 영양가 없는 카톡이었다. 내심 아들의 카톡을 기다렸는데 쓰잘데기 없는 카톡에 짜증이 솟구쳐 나가기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김 사장이 올린 알록달록한 장미꽃 사진 속 문구가 내 눈알을 찔렀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타인을 구속하는 것은 가장 교묘한 지배욕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지배욕?
순간 뚜껑이 열렸다. 휴대폰을 침대에 집어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니체? 이놈은 또 어떤 놈이야? 지배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웃기지 마라. 내 사랑이 지배라고? 이 철학자인지 나발인지 하는 놈도 분명 배가 불렀을 거다. 락스 냄새에 코가 헐어본 적도, 자식 굶기지 않으려고 남의 집 짬통을 뒤져본 적도 없는 놈이 책상머리에 앉아서 저런 팔자 좋은 소리를 지껄이는 거다.
나의 돈은 구속이 아니라 내 살점이었다. 내 헌신의 실체였다. 나는 아들을 지배하려 한 게 아니라, 그저 이 험한 세상 비바람 맞지 않게 내 날개 밑에 품으려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걸 지배욕이라고? 교묘하다고?
씩씩거리며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묘했다. 니체라는 놈이 지껄인 '지배욕'이라는 단어가, 며칠 전 며느리 년이 내뱉은 '종속'이라는 단어와 겹쳐 들리기 시작했다.
"저희는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년의 그 재수 없는 말투와 니체의 저 건방진 명언이, 마치 짠 것처럼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가방끈 긴 것들끼리 주고받는 암호 같았다. 무식한 나만 빼고,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며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봐라, 무식한 할망구야. 네가 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야. 돈지랄이야.'
나는 부정하고 싶었다. 아니라고 악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목구멍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올라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자. 나는 정말 아들의 안전만을 바랐나?
솔직히 말하자. 나는 아들이 내 아파트에 살면서, 내 말을 거역하지 못하길 바랐다. 내 돈을 받으면, 며느리도 내 눈치를 보며 내 비위를 맞추겠지. 그러면 내 아들은 영원히 내 품 안의 자식으로 남겠지.
그래, 나는 돈줄을 쥐고 흔들려했다. 분양권 딱지 하나 더 거머쥐겠다고 떴다방 여편네들과 엉켜 머리끄덩이 잡고 뒹굴며 배운 게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세상 모든 놈이 돈 앞에서 무릎 꿇었으니, 내 자식도 돈으로 묶어둘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 씨발."
단말마 같은 쌍욕이 나왔다. 니체라는 미치광이 놈 말이 맞았다. 나는 아들을 사랑한 게 아니었다. 나는 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돈이라는 목줄을 아들 목에 걸려고 했던 것이다. 그 여우 같은 년은 그걸 간파했고, 나는 그년의 영악한 눈에 딱 걸린 무식하고 늙은 짐승이었던 것이다. 평생 부동산 바닥의 흐름을 읽어내던 내 짐승 같은 예리한 본능이, 이번엔 뼈아프게 나 자신의 치부를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단톡의 그 빌어먹을 꽃그림이 내 폐부를 정확히 찔렀다.
4. 찢겨 나가는 살점, 거리의 파토스
억울하고 분했다. 단지 가진 돈 좀 쓴다고 내가 지배욕 덩어리라니.
나는 홧김에 유튜브 검색창에 '니체' 두 글자를 꾹꾹 눌러 박았다. 도대체 어떤 놈인지, 그놈 낯짝이라도 봐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알고리즘이 띄워준 영상 제목이 가관이었다. <인간관계에 지친 당신에게: 니체의 거리의 파토스>.
"파토스? 파스는 들어봤어도 파토스는 또 뭐야."
영상 속 양복쟁이는 칠판을 두드리며 떠들어댔다. "고귀한 영혼은 끈적하게 달라붙지 않습니다. 서늘하게 거리를 둡니다. 의존하는 것은 노예의 특징입니다."
영상을 꺼버렸다. 듣기 싫었다. 거리를 두라고? 끈적하지 말라고? 그게 말처럼 쉽냐?
하지만 그 '거리두기'라는 말이 귓가에 윙윙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정말 노예처럼 매달리고 있는 건지.
나는 휴대폰을 들고 아들의 번호를 눌렀다. 통화 버튼 위에서 엄지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지금이라도 전화해서 "집 받아라, 엄마가 미안하다"고 빌면 아들이 돌아오지 않을까? 아니면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욕이라도 퍼부어야 속이 시원하지 않을까?
수십 번을 망설이다가 아들의 카톡 프로필을 눌렀다. 며느리와 찍은 다정한 웨딩화보 사진. 거기엔 내 자리가 없었다. 그 행복한 사진을 보는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인정해야 했다. 나는 지금 '돈 많은 주인'이 아니라, 자식의 사랑을 구걸하는 '빈 깡통 찬 거지'였다.
아들에게 끈적하게 달라붙어 "나 좀 쳐다봐줘", "나 버리지 마" 하고 매달린 건 나였다. 돈이라는 끈을 놓으면 자식과의 인연이 끊어질까 봐 전전긍긍했던 내 꼴이, 마치 다 닳아빠진 신발 밑창에 눌어붙은 껌딱지 같았다.
그 껌딱지를 떼어내려니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이 끈을 놓으면 나는 정말 혼자가 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다시 혼자 남는다. 그게 죽기보다 무서워서 나는 돈을 벌었고, 자식에게 집착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저 가방끈 긴 며느리 년의 나를 경멸하는 눈빛이었다. "어머니, 좀 질척거리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그 눈빛.
나는 무식한 년일지언정, 자존심 하나로 시궁창을 맨몸으로 기어 나온 년이다. 자식한테 동정받고 며느리한테 무시당하느니, 차라리 고독해져 죽는 게 낫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피맛이 났다.
"그래, 떨어져 준다. 내가 더러워서 떨어진다. 에이! 퉤, 퉤"
눈물이 핑 돌았다. 쿨하지도 멋지지도 않았다. 그냥 생살을 도려내는 것처럼 쓰리고 아팠다. 하지만 나는 알아챘다. 이 아픔을 견디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저것들의 눈치를 보는 '호구 전주(錢主) 노릇 하는 하녀'로 살다 죽을 거라는 걸.
나는 거실 창가에 서서 아들 내외가 대출을 끼고 얻었다는 전세 아파트 단지 쪽을 노려보았다.
내가 살려면, 내가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내가 먼저 이 끈적하고 더러운 탯줄을 내 손으로 직접 끊어내야 했다.
"그래, 먹고 떨어져라. 아니, 안 먹어도 그만이다."
마음속에서 '툭' 하고 무언가가 끊어졌다. 그것은 아들에 대한 미련이자, 나의 지난한 고생을 자식을 통해 보상받으려던 이기적인 기대감이었다. 피 튀기는 난장판에서도 기회를 포착하던 내 영악한 생존 본능이, 이제는 나를 갉아먹는 그 집착을 서늘하게 도려내고 있었다. 마취도 없이 생살을 찢어내는 고통 뒤에, 비로소 기묘하고도 홀가분한 정적이 찾아왔다.
5. 아모르 파티 : 나는 내 인생의 건물주다
날이 밝았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나니 눈이 퀭했다. 식탁 위에는 여전히 '신축 아파트 등기 권리증'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저 종이 쪼가리가 내 목숨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저 종이를 보는데 헛웃음이 났다. "이게 뭐라고. 이 종이 쪼가리 하나에 내 인생을 걸었나."
나는 휴대폰을 들어 며칠 내내 망설였던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구질구질한 변명도, 서운하다는 하소연도 다 집어치웠다. 니체 놈이 말한 대로 '서늘하게', 아니 내 식대로 '건물주처럼 당당하게' 딱 두 줄만 적었다.
'그래, 네 뜻대로 해라. 이 집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마. 잘 살아라.'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내 손가락 끝에서 30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휴대폰을 던져두고 거울 앞에 섰다. 락스 물에 절어 쭈글쭈글해진 손, 독기만 남은 눈, 촌스러운 파마머리. 어제까지는 이 모습이 며느리의 하얀 손과 비교되어 그렇게 초라하고 쪽팔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니체라는 미치광이 놈이 그랬다지. "네 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
가만 보니 거울 속의 이 늙은 여자는 초라한 게 아니었다. 남편 없이 그 험한 진창을 맨몸으로 구르면서도 새끼를 굶기지 않은 여자다. 남들이 우아하게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꽃꽂이를 배우러 다닐 때, 흙먼지 마시며 악착같이 내 건물을 올린 독한 여자다.
며느리 년이 가진 게 '배운 자의 우아함'이라면, 내가 가진 건 '무식하게 살아남은 자의 깡다구'이다. 그년은 죽었다 깨어나도 흉내 못 내는 밟아도 밟아도 다시 일어서는 악착같은 날것의 생명력이다. 이 거친 손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내 인생의 훈장이다.
나는 등기 권리증을 집어 들었다. 이건 이제 아들을 묶어두는 탯줄도 아니고, 며느리 기를 죽이는 무기도 아니다. 이건 그냥 '돈'이다. 목숨처럼 신봉했지만, 결국 내 쾌락을 위해 쓰고 죽어야만 가치가 생기는 종이 쪼가리일 뿐이다. 그것도 아주 많은 돈.
"그래, 이 돈. 내가 쓰자."
평생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쳐다보느라, 정작 내 입에는 비싼 회 한 점 제대로 넣어본 적 없었다. 아들놈 수백만 원짜리 메이커 패딩 사 입힐 때는 아까운 줄 몰랐으면서, 정작 나는 시장바닥에서 이만 원짜리 솜 잠바를 깎으려고 흥정했었다. 내가 미쳤지. 내가 돌았지. 이제야 정신이 든다.
나는 당장 옷장을 열어제꼈다. 아들 결혼식 때 기죽지 않으려고 샀던 명품 옷을 제쳐두고, 며느리 눈치 보느라 한 번도 못 입은 날티나는 호피 무늬 코트를 꺼내 입었다. 점잖고 우아해 보이는 옷 따위 다 필요 없다. 지금 내 속에는 한 마리 짐승이 날뛰고 있으니까. 그리고 백화점으로, 아니 여행사로 향했다.
"가장 비싼 거, 제일 멀리 가는 거. 일등석으로 끊어주쇼."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잠시 멈칫했지만 나는 보란 듯이 블랙 카드를 내밀었다. 며느리 년이 말하는 '주체적인 삶'? 웃기지 마라. 얽매임 없이 내 돈 내 마음대로 쓰는 게 진짜 주체적인 거다. 니체가 말한 '입법자'가 별거냐? 내 인생 내 맘대로 리모델링하고, 내 맘대로 세입자 들이고 내보내면 그게 대장이지.
나는 이제 아들의 어머니도, 며느리의 시어머니도 아니다. 나는 똥밭에서 피어난 꽃이고, 내 인생이라는 건물의 영원한 건물주이다.
아파트는 팔아서 세계 일주를 하든, 젊은 제비 같은 놈들 팁으로 뿌리며 밤새 술을 마시든 내 알 바다. 그 잘난 아들 내외 비위 맞추느라 쓸데없이 돈 쓰며 전전긍긍하느니, 차라리 내 비위 맞추는 놈들한테 돈 뿌리며 한판 신나게 놀다 갈 거다. 너희는 너희의 고상한 룰대로 살아라. 나는 내가 정한 룰대로, 질펀하고 후회 없이 살아줄 테니까.
백화점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제법 근사했다. 쭈글쭈글한 손에 낀 순금반지가 번쩍였다.
그래, 씨발. 이게 내 인생이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