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의 황혼 (상) : 핏줄의 족쇄를 깨부수다

'좋은 엄마'와 '착한 딸'이라는 기만을 벗다

by 하노이별

1. 중력의 영과 르상티망, 나를 병들게 한 괴로움의 구조를 해부하다

안전한 도피처를 제 손으로 부수고 나온 자에게 남은 것은 오직 전진뿐이었다. 나는 내 삶의 판을 송두리째 뒤엎을 첫 번째 무기로 니체의 철학을 움켜쥔 채, 본격적인 사유의 최전선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첫 전투는 도서관의 책상머리가 아닌, 매일 오르내리던 동네 뒷산의 가파른 흙길 위에서 시작되었다. 더 이상 퀴퀴한 서가에 숨어 죽은 활자만 파고들 수는 없었다. 도서관에서 읽어낸 니체의 텍스트를 내 뼈와 근육에 온전히 체화하기 위해, 나는 며칠에 걸쳐 묵묵히 산길을 걸으며 내 괴로움의 실체와 구조를 적나라하게 까발려 보았다. 거친 숨을 토해내고 다리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질 때마다, 책 속의 철학은 내 삶의 팍팍한 진흙탕 속으로 걸어 들어와 맹렬한 화학작용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치열한 복기의 과정에서 가장 먼저 내 덜미를 덮쳐온 것은 니체가 설파한 '중력의 영(Geist der Schwere)'이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의 어깨 위에 올라타 끝없이 삶을 무겁고 진지하게 짓누르는 난쟁이 악마를 가리켜 중력의 영이라 불렀다. 이 악마는 가벼운 춤과 웃음을 경멸하며, '너는 마땅히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무거운 도덕과 의무감을 귓가에 끊임없이 속삭인다. 인간이 스스로 날아오르려 할 때마다 납덩이 같은 죄책감과 책임감을 매달아 기어이 바닥으로 끌어내리고야 마는 지독한 분탕질.

그 철학적 묘사를 곱씹는 순간, 산을 오를 때마다 유독 내 어깨를 천근만근 짓누르던 뻐근한 통증의 정체가 뚜렷해졌다. 나는 그것이 단순히 갱년기로 인한 신체적 노화나 삶의 피로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는, 나를 바닥으로 질질 끌어내리는 무거운 중력의 사슬이었다. 세상이 내 어깨 위에 겹겹이 올려둔 당위들. 희생적인 엄마여야 하고, 속 깊은 딸이어야 하며, 쓸모를 증명하는 직장인이어야 한다는 그 징글징글한 강박이 중력의 영이 되어 나를 아래로, 더 아래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이 무거운 중력의 영을 그저 견디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세상이 정해놓은 그 알량한 잣대와 기준들을 절대적인 진리이자 신앙으로 받들어 모시기 시작했다. '좋은 엄마', '착한 딸', '성공한 사회인'이라는 껍데기는 내 삶의 거대한 '우상(Idol)'이 되었다. 스스로 자기 삶의 가치를 창조하고 질문하는 대신, 나는 세상이 빚어놓은 맹목적인 우상의 제단 앞에 내 피와 땀을 바치며 알량한 인정을 갈구해온 것이다.

니체는 이 맹목적인 종속을 '노예도덕(Sklavenmoral)'이라 명명했다. 그는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생명력과 용기가 없는 자들이, 자신들의 굴종을 '착함'이나 '도덕', '희생'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비겁함을 철저히 경멸했다. 나는 이 철학자의 예리한 진단 앞에서 멈칫했다. 우상에게 순종하며 나를 억누르는 것을 대단한 인내이자 미덕으로 착각했지만, 실상 나는 내 삶의 주권을 세상에 헌납한 철저한 노예에 불과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뼈아픈 자각은, 이 노예도덕을 내면화한 삶이 필연적으로 가닿을 수밖에 없는 파멸적인 종착지에 대한 것이었다. 니체는 그것을 '르상티망(Ressentiment, 원한 감정)'이라고 불렀다. 니체에 따르면, 노예도덕에 갇힌 자들은 주도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늘 타인에 대한 '반작용'으로만 살아간다. 내 생명력과 욕망을 내 의지대로 펼치지 못하고 우상의 잣대에 맞춰 억누르다 보면, 그 억눌린 에너지는 속에서 썩어 문드러져 시커먼 독기로 변질된다.

그 독기는 부지불식간에 원망과 분노, 그리고 지독한 피해의식이 되어 튀어나온다. '내가 너를 위해 어떻게 했는데', '내가 이 집구석을 위해, 회사를 위해 얼마나 뼈 빠지게 노력했는데'라며 끊임없이 타인과 세상을 향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내 희생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착한 노예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끝없이 타인을 향한 채찍질과 원한을 키우는 끔찍한 상태로 치닫는 것이다.

정수리에 벼락이 내리꽂히는 듯한 충격이었다. 내가 그토록 지독한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이 절, 저 힐링 센터를 기웃거렸던 이유는 밖에서 날아온 불행 때문이 아니었다. 중력의 영에 짓눌려 우상을 섬기고, 노예도덕에 길들여진 채 르상티망의 독기를 뿜어내던 그 완벽하고도 필연적인 톱니바퀴가 나 자신을 처참하게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교한 고통의 인과관계가 온몸의 감각으로 파고들었다. 니체의 철학은 더 이상 관념적인 이론이 아니었다. 내 삶의 질병을 철저히 해부하는 명증한 도구가 되어 내 핏속에, 내 근육 속에 장착되고 있었다. 내 삶을 옭아매던 괴로움의 뼈대를 정확히 파악하고 나니, 내 눈을 가리던 안개가 걷히며 내가 붙들고 있던 개별적인 우상들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한결 가벼워지고 단단해진 걸음으로 산을 내려왔다. 자, 이제 거시적이고 이론적인 진단은 끝났다. 마침내 내 일상의 가장 깊고 내밀한 관계들을 향해, 본격적으로 니체의 망치를 치켜들 시간이다.


2. 첫 번째 망치질: '좋은 엄마'라는 기만, 불안과 허영이 빚어낸 끔찍한 우상

산을 내려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집 안은 고요했다. 아침에 용기를 내어 아이의 굳게 닫힌 방문 앞에 놓아두었던 샌드위치는, 저녁 무렵이 되도록 손도 대지 않은 채 덩그러니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 뻣뻣해진 식빵 모서리를 보는 순간 억장이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 정성을 이렇게 무시해?'라는 분노 섞인 서운함과, '나는 결국 아이 하나 구제하지 못하는 실패한 엄마'라는 뼈아픈 자괴감이 뒤엉켜 방문을 두드리며 오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산길에서 니체의 철학을 장착하고 내려온 나는 달랐다. 나는 그 말라비틀어진 샌드위치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감정의 밑바닥을 응시했다. 그리고 마침내, 굳게 닫힌 저 방문의 자물쇠를 채운 장본인이 다름 아닌 '나'였음을 똑똑히 직시했다.

시곗바늘은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 되던 해의 방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독 신경이 예민하고 숫기가 없어 늘 내 치맛자락을 맴돌던 아이였다. 하지만 나는 가기 싫다며 울먹이는 아이의 등을 억지로 떠밀어 호주 어학연수 비행기에 태워 보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주변 엄마들도 방학이면 당연하다는 듯 아이들의 스펙을 위해 큰돈을 들여 연수를 보냈다. 나만 내 아이를 보내지 않으면 영영 무리에서 도태되고, 내 아이만 끔찍하게 뒤처질 것 같다는 그 지독한 불안감이 아이의 기질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불안에 떠는 아이를 말도 통하지 않는 사지로 매몰차게 내몰았다.

그것은 모성애가 아니었다. 내 아이가 남들보다 더 뛰어나기를, 최소한 남들 하는 것만큼은 번듯하게 해내어 '나의 성공적인 육아'를 증명해 주기를 바랐던 끔찍한 허영심이었다. 니체가 그토록 경멸했던 '무리 지은 가축'들의 잣대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공포증. 그 알량한 군중의 도덕과 세상의 기준이라는 우상 앞에, 나는 내 아이의 고유하고 여린 성정을 제물로 바쳐버린 셈이다.

그 억지스러운 연수는 연약하고 예민했던 아이의 내면에 지울 수 없는 멍자국을 남겼다. 엄마의 불안과 욕심에 억지로 꿰맞춰지며 스스로를 지켜낼 내면의 힘을 잃어버린 아이는, 훗날 고등학교 진학 후 마주한 따돌림이라는 잔인한 폭력 앞에서 자신을 방어할 최소한의 맷집조차 없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결국 세상과의 문을 닫아걸고 시커먼 심연 속으로 침잠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여태껏 그 원인을 밖에서 찾으려 굿판을 벌이고, 이제 와서 말라비틀어진 샌드위치 따위를 밀어 넣으며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밥을 챙기는 좋은 엄마'라는 도덕적 위안을 얻으려 한 것이다. 방문 앞에 놓아둔 그 샌드위치는, 내 안의 펄펄 끓는 죄책감과 불안을 잠재우고, 다시 한 번 아이를 내 입맛대로 통제해 방문 밖으로 끌어내려 했던 지독한 이기심의 발로였다.

나는 '희생적인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겹겹이 포장된 이 거대한 우상을 향해 비로소 니체의 망치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내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평생을 '나는 좋은 엄마다'라는 알량한 믿음 하나로 버텨왔는데, 그것을 내 손으로 부정하는 것은 살점을 도려내는 것 같은 끔찍한 진통을 요구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그가 『우상의 황혼』에서 가르쳐준 대로 망치를 청음기 삼아 내 안의 '좋은 엄마'라는 조각상을 툭툭 두드려 보았다.

뎅, 뎅.

과연 그 속은 완벽하게 텅 비어 있었다. 내 뜻대로 방문을 열고 나오지 않는 아이를 보며 느꼈던 나의 억울함. 그것은 숭고한 모성이 아니라, 노예도덕에 갇힌 자가 통제권을 잃었을 때 내뿜는 전형적인 '르상티망(원한 감정)'의 독기였다.

쨍그랑. 텅 빈 우상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내면에서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평생의 신앙이 무너져 내린 발가벗겨진 듯한 수치심에 한동안 숨을 쉴 수 없었지만, 동시에 징글징글한 중력의 영이 어깨에서 툭 떨어져 나가는 듯한 해방감이 스쳤다. 아이의 방문이 닫힌 것은 기구한 팔자 탓도, 귀신 탓도 아니다. 우상에 짓눌린 어리석은 어미가 자초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원인에 따른 결과였다. 이것은 사이언스 그 자체다. 더 이상 덧붙일 어떠한 군더더기도 없는 과학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지난 과오에 대해 어떠한 변명도 없이 그저 묵묵히 책임지는 자세, 그것뿐이다.

이제 아이의 고립은 아이 스스로 자신의 심연 속에서 홀로 싸워내야 할 그 아이만의 몫이자 독립적인 시간이다. 그것을 내 맘대로 통제하고 구원하려 드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이름의 오만한 폭력이다.

나는 말라비틀어진 샌드위치 접시를 가만히 치웠다. 더 이상 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아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구걸하지 않겠다. '좋은 엄마'라는 기만적인 껍데기를 박살 낸 그 폐허 위에서, 나는 이 병적인 정서적 탯줄을 단칼에 베어내는 대신 억센 매듭을 천천히 늦추기로 했다. 나를 평생 짓눌러온 통제와 불안이라는 거대한 환상에 비로소 균열을 내며, 나는 내 아이를 내 소유가 아닌 온전한 한 명의 타인으로 바라보는 조심스러운 첫발을 내디뎠다.


3. 두 번째 망치질: '착한 딸'이라는 족쇄, 지독한 유착과 르상티망의 실체

아래로 향했던 탯줄을 끊어내고 나니, 이번에는 위를 향해 질기게 연결되어 있던 또 다른 탯줄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평생 내 목 조르고 있던 가장 무겁고 오래된 중력의 영, 바로 어머니였다. 그 징글징글한 유착의 시작은 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서른 갓 넘긴 젊은 나이에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는 끔찍한 상실감과 불안에 휩싸여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그 거대한 공포와 위태로움은 어린 내게 고스란히 전이되었다. '아버지도 하루아침에 사라졌는데, 저렇게 불안한 엄마마저 나를 버리고 어디론가 가버리면 어쩌나.' 생존의 벼랑 끝에 선 아이는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지웠다.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고, 어떻게든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착한 아이가 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다.

내 욕망을 거세한 채 타인의 기준에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그렇게 내 영혼의 밑바닥에 자리 잡았다. 니체의 렌즈로 보자면, 그것은 안전을 구걸하기 위해 기꺼이 자기 목에 밧줄을 거는 나의 '노예도덕'의 뼈아픈 기원이었다.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거대한 공포와 불안을 '돈'을 버는 것으로 악착같이 메워 나갔다. 억척스럽게 부를 일구며 내게 드리운 결핍의 그늘을 지우려 하셨지만, 어머니가 지폐를 쌓아 올릴수록 어린 내 마음속 애정의 우물은 지독하게 말라갔다. 어머니는 따뜻한 품 대신 차가운 돈으로 모든 사랑과 보상을 대신하려 했고, 그 무조건적인 황금에 대한 맹신은 결국 내 삶의 완벽한 통제권을 쥐고 흔드는 억센 기제로 작용했다.

나는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간섭하려는 어머니의 방식을 속으로는 끔찍하게 환멸하면서도, 그 물질적 울타리와 조건부 애정에서 쫓겨날까 두려워 영원히 그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거절'이라는 단어를 잊은 겁쟁이로 살았다. 내 가정이 파국으로 치닫던 처참한 시간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어머니가 내 삶에 깊숙이 개입하며 전 남편의 자존심을 짓밟고 숨통을 조일 때, 나는 어머니의 분노를 살까 두려워 남편의 방패가 되어주지 못했다. 내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한 채 꼭두각시처럼 끌려다니다 결국 가정을 잃었으면서도, 나는 스스로 족쇄를 풀지 못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내가 채워야 한다는 비틀어진 부채의식과 버림받고 싶지 않다는 유아적인 공포가 나를 계속 그 지옥 속에 주저앉혔다.

나는 드디어 두 손에 쥔 망치를 치켜들고, 평생토록 신주단지 모시듯 떠받들어 온 '착한 딸'이라는 견고한 우상을 향해 사정없이 내리쳤다.

뎅, 뎅.

역시나 속이 텅 빈 깡통 소리가 났다. 그 안에는 늙은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숭고한 효녀가 없었다. 그저 보호막을 잃을까 봐 벌벌 떠는 '상처받은 다섯 살 아이'만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진정으로 어머니를 사랑해서 희생한 것이 아니라, 홀로 내 삶의 무게를 감당할 용기가 없어 주권을 몽땅 넘겨준 비겁자였음을 인정하는 뼈아픈 순간이었다.

더욱 참담한 것은 그 비겁함이 낳은 결과였다. 겉으로는 효녀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내 속은 어머니를 향한 지독한 '르상티망(원한 감정)'으로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내 가정이 깨진 것도, 내 아이가 망가진 것도, 종국에는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처참한 괴로움 속에서 몸부림치는 것조차 다 '당신의 지나친 간섭 때문'이라며 끊임없이 불행의 책임을 어머니에게 전가했다. 스스로 삶을 개척할 근성이 없으니, 속으로는 채찍을 든 채권자처럼 어머니를 탓하며 독기를 뿜어내고 있었던 나의 역겨운 민낯.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다시 한 번 망치를 힘껏 내리찍었다. 쨍그랑! 평생 나를 지탱해 주던 그 견고하고 폭력적인 핏줄의 우상에 쩍쩍 금이 가며 파편이 떨어져 내렸다.

물론 평생을 질기게 얽매여 온 이 징글징글한 유착을 단숨에, 그리고 완벽하게 베어낼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내 불행을 어머니 탓으로 돌리던 찌질한 굴종과 은밀한 원망의 쳇바퀴를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것을. 나를 평생 짓눌러온 그 거대한 환상에 비로소 균열을 내며, 나는 어머니라는 묵직한 중력권 밖으로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디뎠다.

가장 끈질기게 나를 옭아매던 두 가닥의 핏줄을 끊어내고 나니, 비로소 내 온전한 두 발이 폐허의 바닥에 닿는 감각이 느껴졌다. 피투성이가 된 채 집 안의 가장 내밀한 우상들을 박살 낸 나는, 이제 천천히 현관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밖에는 아직 나를 기다리고 있는 세상의 잣대들이 시커멓게 버티고 서 있었다. 명함으로 증명되던 알량한 사회적 성공과, 늙어감으로 치부되는 갱년기라는 오만한 편견들. 나는 두 손에 쥔 망치의 손잡이를 더욱 단단히 고쳐 쥐었다. 진흙탕 속에서 막 첫발을 뗀 나의 사유의 전투는, 이제 겨우 절반을 지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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