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껍데기가 타버린 잿더미, 눈부신 백지가 되다
가장 끈질기게 나를 옭아매던 두 가닥의 핏줄을 끊어내고 현관문을 나선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무형이지만 가장 거대하고 폭력적인 세상의 잣대였다. 나는 두 손에 쥔 망치의 손잡이를 고쳐 쥐며,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또 다른 거대한 우상, 바로 '사회적 성공'이라는 알량한 포장지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기억은 내 이름 앞을 장식하던 번듯한 직함이 무참히 떨어져 나가던 그 실직의 날로 향한다. 내 아이와 가족의 시간을 깎아 바치며 20년 넘게 바친 헌신의 무게였다. 하지만 그 모든 삶의 조각들이 마치 폐기물처럼 낡은 종이상자 속으로 왈칵 쓸어 담기던 날, 쫓기듯 회사 문을 나서는 내 등 뒤로 지독한 모욕감과 회한이 무겁게 따라붙었다. 나는 내 삶의 서사 전체에 붉은색 줄이 벅벅 그어지며, 세상의 거대한 톱니바퀴에서 불량품으로 튕겨 나간 듯한 끔찍한 단절감을 맛보았다.
나는 평생 '사회적 인정'이라는 우상을 맹목적으로 숭배해 왔다. 연봉의 액수, 소속된 집단의 간판, 그리고 남들에게 내밀 수 있는 명함 한 장. 나는 내 인생의 무게와 가치를 철저하게 세상의 잣대로 정교하게 계량해 왔다. 그 알량한 타이틀은 나를 세상의 무시와 비루함으로부터 방어해 주는 아주 견고한 신전이자,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유일한 언어였다.
하지만 소속이라는 견고한 보호막이 찢겨 나가자, 그 자리에는 스스로 설 힘조차 없는 앙상한 맨몸의 중년 여자가 떨고 있었다. 직장이라는 조명이 꺼지는 순간, 나는 세상의 좌표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필사적으로 외면해 오던 참담한 현실 한가운데로 내동댕이쳐졌다.
내게 매달 통장에 찍히는 월급은 이혼 후 홀로 버텨야 하는 삶의 유일한 지지대이자, 쉴 새 없이 파고드는 친정어머니의 금전적, 정서적 간섭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던 마지막 얇은 방패였다. 그 알량한 방패마저 증발해 버리자, 나는 굳게 닫힌 아이의 방문 앞을 서성이며 숨죽여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철저한 무능력자가 되었다. 세상 밖으로 나갈 동력을 잃어버린 아이를 건사할 능력도,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날 독립성도 잃어버렸다는 지독한 수치심이 앙상해진 나를 짓눌렀다.
나는 이 비루한 현실을 견딜 수 없어, 끊임없이 구인 사이트를 뒤적이며 내 상처를 덮어줄 또 다른 번듯한 간판을 갈구했다. 명함이라는 신전이 무너지자마자, 나는 또다시 '재취업'이라는 외부의 존재에게 내 구원을 통째로 외주 주려 했던 것이다. 누군가 나를 다시 고용하여 "너는 아직 세상에 쓸모 있는 인간이다"라고 확인해 줄 절대적인 답을 구걸하고 있었다.
니체의 시선으로 보자면, 나의 이 처절한 몸부림은 자아를 찾는 여정이 아니라, 낡은 가치를 버리지 못한 채 사막에서 헐떡이는 '낙타'의 비참한 행보였다. 사회가 정한 성공의 잣대를 내 척추에 박아 넣은 채, 그 무거운 짐들이 내 존재의 무게인 줄 착각하며 살았다. 명함이 사라진 자리에도 나는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과 평판이라는 모래주머니를 기어이 다시 주워 담아 등에 지려 했던 것이다.
나는 핏발 선 눈으로, 내 어깨를 짓누르던 그 무거운 '사회적 쓸모'라는 우상을 향해 세 번째 망치를 치켜들었다. 망치를 청음기 삼아 내 안의 '성공한 직장인'이라는 굳건한 조각상을 툭툭 두드렸다.
뎅, 뎅.
역시나 그 속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소리가 메아리처럼 공허하게 울려 퍼질수록, 내 안의 수치심은 뼈아프게 선명해졌다. 실직이 그토록 뼈아팠던 이유는 내 본질이 다치거나 내 생명력이 훼손되어서가 아니었다. 스스로 가치를 창조할 힘이 없어 밖에서 나를 증명해 줄 간판만 찾아 헤맨 나의 지독한 '종속성'이 고통의 진짜 원인이었다. 남들의 부러움을 사야 한다는 압박, 실패자로 보이면 안 된다는 허영심이 빚어낸 노예도덕의 결정체. 그동안 나는 내 삶의 운전대를 타인에게 통째로 넘겨둔 채, 그들이 지시하는 목적지만을 향해 숨차게 달려왔던 것이다.
나는 사자의 이빨을 드러내며 그 텅 빈 우상을 향해 사정없이 망치를 내리쳤다.
쨍그랑!
나를 보호해 준다고 믿었던 명함과 연봉이라는 낡은 껍데기가 산산조각 났다. 나를 억누르던 "너는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는 세상의 오만한 명령을 향해, 나는 망치를 쥔 채 사자처럼 포효했다.
"나는 더 이상 내 쓸모를 세상에 증명하지 않겠다! 나는 오직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내 가치를 창조할 것을 원한다!"
허공을 향해 토해낸 외침이 서서히 잦아들자, 귓가에서 나를 매섭게 몰아세우던 세상의 소음도 거짓말처럼 멎었다. 헐떡이던 숨을 고르며 텅 빈 두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누군가에게 내밀어야만 안심이 되던 그깟 종이 쪼가리 하나 쥐지 않았다고 해서, 내 존재 자체가 무너져 내리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펴자, 평생 손아귀를 파고들던 뻐근한 긴장감이 스르르 풀려나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망치로 산산조각 낸 것은 내 삶이 아니라, 나를 남들의 기준에 억지로 끼워 맞추던 투명한 감옥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제야 깨진 조각들 너머로 아주 낯선 홀가분함이 밀려왔다.
명함 한 장 없는 초라한 실직자라는 처지는 더 이상 부끄러운 낙인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옥죄던 모든 가짜 가치와 위선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통쾌한 증거다. 지켜야 할 번듯한 타이틀도, 남들에게 보여줄 알량한 사회적 체면마저 산산조각 난 이 폐허 위에는 오히려 잃을 것이 없는 자의 근거 없는 자만심이 솟구쳤다.
더 이상 세상의 잣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어지자, 나를 칭칭 감고 있던 타인의 시선이라는 질긴 밧줄이 비로소 스르르 풀려나갔다. 나는 '세상이 인정하는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며 내 등을 짓누르던 낙타의 무거운 짐을 마침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명함이라는 사회적 껍데기를 박살 낸 망치는, 이제 내 가장 내밀한 곳, 바로 내 육체를 향해 드리워진 마지막 우상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신체의 노화와, 세상이 중년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여성성의 유통기한'이라는 오만한 잣대였다.
직장이 사라진 서재에서 내 몸은 통제 불능의 상태로 치달았다. 시도 때도 없이 온몸이 용광로처럼 달아오르고 식은땀이 흘렀다. 관절은 삐걱거렸고, 어깨는 오십견이 와서 언제나 묵직한 통증을 달고 있었다. 거울 속에는 탄력을 잃고 푸석해진 낯선 늙은 여자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세상은 이 거친 신체적 변화를 '질병'이나 '여성으로서의 기능 상실'로 취급하며, 끊임없이 내 귓가에 "너는 이제 늙고 매력을 잃었으니 쓸모가 없다"며 보이지 않는 무거운 짐을 지워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아이를 더 낳을 생각도 없었건만, 막상 내 몸이 생물학적인 마감 시한을 선고받자 지독한 상실감이 밀려왔다. 가만히 그 상실감의 밑바닥을 응시해 보았다. 내가 잃어버렸다고 슬퍼하는 것은 생명력 그 자체가 아니라, 젊고 생기 있는 육체를 가졌을 때만 세상으로부터 허락되던 '관대한 시선'이었다.
세상은 여성을 거대한 진열장 속에 가둬두고 끊임없이 평가한다. 생식 능력이 있고, 보기 좋게 아름다우며, 가족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가 있을 때만 그 진열장 안에서 가치를 인정받는다. 나는 그 폭력적인 평가 기준에 철저히 길들여져, 진열장 안에서 내 상품 가치가 떨어졌으니 이제 어두운 창고로 물러나야 한다는 세상의 퇴장 명령을 고스란히 내면화하고 있었다. 내 몸의 고유한 가치를 타인의 시선과 생물학적인 척도로만 계량하며 스스로를 폐기 처분하려 했던 이 끔찍한 자기 기만. 그것은 타인의 잣대에 스스로 목을 들이미는 맹목적인 굴종이었다.
그 지독한 굴종의 끝에는 시커먼 독기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나는 TV 속에 나오는 젊고 싱싱한 여자들의 생명력을 보며 견딜 수 없는 질투심과 박탈감에 시달렸고,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내 몸뚱이를 향해 끊임없이 원망과 저주를 퍼부었다. 찬란했던 과거의 젊음에 목을 맨 채, 시들어가는 현재의 나를 혐오하고 학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핏발 선 눈으로, 세상이 덮어씌운 '쓸모 있는 여성'이라는 거대한 진열장을 향해 마침내 네 번째 망치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철학서에서 배운 대로 망치를 청음기 삼아 내 안의 '젊음과 미모'라는 조각상을 툭툭 두드려 보았다.
뎅, 뎅.
역시나 그 속은 완벽하게 텅 비어 있었다. 내 젊음이 사라진 것에 대한 서러움은 생명에 대한 애착이 아니라, 남들의 시선을 끌며 누렸던 알량한 특권을 잃어버린 자의 발악에 불과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나를 늙고 추한 실패자로 규정하려 드는 그 생물학적 편견들을 향해 사정없이 망치를 내리쳤다.
쨍그랑!
나를 평생 옭아매던 평가의 진열장이 산산조각 나며 날카로운 파편들이 흩어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발밑에 무너져 내린 투명한 조각들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훅 하고 또다시 갱년기의 불쾌한 열감이 얼굴로 달아올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그 뜨거움이 수치스럽거나 원망스럽지 않았다. '여자로서의 가치가 끝났다'며 나를 닦달하던 그 매서운 시선들이 깨져나간 자리에는, 그저 주름지고 투박하지만 더 이상 억지로 꾸며낼 필요 없는 편안한 내 몸뚱이만이 남겨져 있었다. 누군가에게 선택받기 위해, 혹은 쓸모를 인정받기 위해 배에 잔뜩 주고 있던 팽팽한 긴장감이 그제야 탁 하고 풀려나갔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진열장 밖으로 튕겨져 나온 순간, 비로소 갱년기가 단순한 상실의 질병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낯선 감각이 스쳤다. 그것은 세상이 내게 부여한 그 모든 지긋지긋한 역할극—예쁜 여자, 싹싹한 아내, 희생적인 엄마—에서 나를 면제시켜 주는 서늘한 해방 선언일 수도 있었다.
내 몸에서 솟구치는 이 주체할 수 없는 열기는 늙어감의 징후가 아니라, 타인의 잣대에 맞춰 자신을 억눌러왔던 낡은 껍데기를 태워버리는 정화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남자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성별 없는 '아줌마'로 밀려났다는 것은, 도리어 이제 그 누구의 평가에도 얽매일 필요가 없어진 게 아닐까.
평가대에서 밀려난 지금,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쓸모없음'이라는 꼬리표는 도리어 나를 온전히 내버려 두는 자유의 입장권이었다.
"나는 이제 매력도 없고, 돈을 벌어오는 능력도 없는 늙은 여자다"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나를 쥐고 흔들려던 세상의 간섭과 피로한 요구들이 더 이상 나를 침범하지 못했다. 쓸모가 없으니 무언가를 책임지고 희생하라는 압박에서도,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죄책감에서도 비로소 면제된 것이다. 텅 빈 손에 쥐어진 이 기막힌 입장권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극장에서 나를 영원히 퇴장시켜 주었다.
쓸모를 증명할 의무가 사라진 자리에는 지독한 정적이 찾아왔다. 홀가분함과 동시에, 평생 나를 억누르며 뜻밖의 방향을 지시해주던 그 무거운 짐마저 사라져버린 이 낯선 자유는 차라리 아득한 현기증에 가까웠다.
나는 산산조각 난 진열장의 폐허 위에서 땀을 닦아냈다. 나를 옭아매던 네 개의 거대한 우상—가족의 족쇄, 사회의 잣대, 그리고 육체의 편견—이 마침내 내 발밑에 모두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모든 껍데기가 벗겨져 나간 그 텅 빈 폐허 위에서, 내 두 다리는 통쾌함보다는 방향을 잃은 낯선 두려움으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네 개의 거대한 우상이 산산조각 난 텅 빈 거실 한가운데, 나는 길 잃은 짐승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거짓된 껍데기를 모두 부수고 났으니 곧바로 가슴 벅찬 해방의 환희가 찾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핏발 선 망치질이 끝난 직후 나를 덮친 것은, 숨이 막힐 듯한 적막과 뼈가 시리도록 처절한 허무함이었다. 나를 평생 지탱하던 기둥들이 일거에 무너져 내린 그 완벽한 폐허 위에는, 이름도 직함도 방향도 잃어버린 50대의 초라한 여자가 덜덜 떨며 서 있을 뿐이었다.
평생을 바깥의 무언가에 기생하듯 매달려 온 관성은 생각보다 훨씬 질기고 무서웠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겁 없이 휘두른 망치질의 결과물을 마주하자, 통쾌함보다는 '내가 도대체 무슨 미친 짓을 한 거지?' 하는 뼈저린 후회가 먼저 목덜미를 덮쳤다. 아무리 나를 갉아먹고 숨 막히게 하던 우상들이라 해도, 그 익숙한 굴레 안에서는 최소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정답은 정해져 있었다. 고통스럽고 비루하더라도, 눈 딱 감고 남들처럼 꾸역꾸역 버티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 견고한 벽을 내 손으로 다 때려 부수고 나니, 당장 내일 아침부터 이 앙상한 맨몸으로 어떻게 세상과 맞서야 할지 아득한 공포가 밀려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낯선 불확실성 속으로 걸어 들어가느니, 차라리 바닥에 흩어진 저 깨진 파편들을 주워 모아 다시 덕지덕지 테이프로 붙이고 싶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익숙한 고통의 자리로 싹싹 빌며 다시 기어 들어가고 싶은 끔찍한 나약함이 내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하지만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 파편들을 다시 쥐려는 순간, 내가 기어 들어가려던 그 '익숙한 자리'의 민낯이 떠오르며 지독한 회한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타인이 정해준 정답안지를 베껴 쓰느라 피눈물을 흘리며 내달렸던 50년의 세월.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내 영혼의 진짜 목소리는 단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다. 타인의 인정이라는 신기루를 좇느라 정작 가장 소중한 내 아이의 여린 영혼이 부서지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버림받을까 두려워 늙은 어머니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느라 내 가정이 무너지는 것을 방치했다. 그리고 쓸모를 증명하려 내 피와 땀을 갈아 넣은 명함이 사라지자마자, 나는 내 존재 가치마저 잃고 스스로를 폐기 처분하려 했다.
내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알량한 '착함'과 '성실함'은, 결국 내 생명력을 스스로 갉아먹고 타인에게 내 삶의 운전대를 몽땅 넘겨준 비겁한 굴종이었음을 피투성이가 된 채 비로소 인정했다.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내 삶 전체가 거대한 오답 노트를 마주한 듯 참담했다.
다시 과거로 도망치고 싶은 비겁함과, 그 끔찍한 굴종의 삶을 스스로 선택해 온 찌질한 나 자신을 향해 나는 소리 없는 오열을 토해냈다. 나침반이 산산조각 난 자리에 고인 이 숨 막히는 텅 빈 무력감과 방황의 시간은, 비록 고통스럽지만 낡은 나를 장사 지내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지독한 애도의 의식이었다.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던 독기 어린 회한을 눈물로 남김없이 게워내고 나자, 거친 숨소만 남은 텅 빈 내면에 차가운 바람이 스르르 불어오기 시작했다. 언제까지고 이 잿더미 위에서 죽은 우상들의 파편만 끌어안고 울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 아득한 상실감의 밑바닥을 박박 긁고 나자, 역설적으로 아주 낯선 감각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세상의 동정 어린 시선이나, "남들도 다 그렇게 참고 살아"라는 평범한 무리의 위로로부터 나 자신을 가차 없이 분리해 내고 싶은 서늘한 거리감. 그것은 바로 니체가 말한 '거리의 파토스(Pathos der Distanz)'의 조심스러운 맹아였다.
나를 옭아매던 낡은 가치들과 철저히 거리를 둔 채, 아무도 대신 걸어줄 수 없는 이 고독하고 텅 빈 폐허 한가운데 서서 나는 조용히 숨을 고른다.
이 철저한 무(無)의 공간, 모든 껍데기가 타버린 이 서늘한 잿더미야말로 비로소 진짜 내 삶을 창조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도 눈부신 백지일지도 모른다. 아직 내 손끝에는 부서진 파편들의 진동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남아 있었지만, 나는 기꺼이 이 막막한 폐허 한가운데 주저앉아 그 불안한 잔불들을 응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