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과 보살, 내 삶의 폐허 위로 걸어 들어오다
며칠 뒤, 고요한 거실의 적막을 깨고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요란했던 굿판의 잔금을 치르라는 무당의 독촉 문자와, 이미 한도 초과를 알리는 카드값 청구서였다. 액정 화면에 선명하게 찍힌 수천만 원이라는 숫자를 마주한 순간, 서늘한 식은땀을 넘어 명치끝에서부터 지독한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이 돈이 어떤 돈인가. 내 청춘과 영혼을 파쇄기에 갈아 넣으며 버텨낸 직장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벌어들인 내 목숨값 아니던가.
그 피 같은 돈을, 굳게 닫힌 아이의 방문을 열어보겠다고, 내 안의 펄펄 끓는 갱년기의 불안을 잠재워 보겠다고 사기꾼 같은 무당과 가짜 위로자들의 주머니에 무참히 쑤셔 박은 것이다.
눈이 멀어 허공에 삽질을 해댄 그 엉뚱하고도 어리석은 짓거리의 과보가 고스란히 찍힌 영수증을 직시하는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서슬 퍼런 각성이 일었다. 나는 내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철저히 구걸하는 거지에 불과했다. 병원의 우울증 약, 숲속 힐링 센터의 명상, 이 절 저 교회로 몰려다니며 바쳤던 맹목적인 기도, 급기야 귀신 탓을 하며 벌인 미친 굿판까지. 이 모든 분투는 내 안에서 터져 나온 곪은 괴로움을 오직 내 밖의 어떤 것, 타인의 신통력과 약물로 단번에 해결해 보려 했던 지독한 의타성이었다.
그런데 그 징글징글한 의존성보다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든 것은, 그 맹목적인 구걸 속에서조차 그 흔한 악착같음이나 뚝심 하나 없었다는 뼈아픈 사실이다. 남의 손을 빌려 나를 고치기로 마음먹었으면 피를 토하더라도 끝장을 봐야 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저 귀 얇은 사람처럼 쉽고 빠른 위로만 찾아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기웃거리기 바빴다. 당장 눈앞에 드라마틱한 효험이 보이지 않거나 조금만 견디기 힘들어지면, 금세 싫증을 내고 또 다른 진통제로 갈아타며 비겁하게 도망쳤다. 나의 이 천박한 조급함, 이리저리 휩쓸리는 깃털 같은 가벼움과 근성 없음이 수천만 원짜리 영수증 위로 낱낱이 까발려지자 참담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대체 나는 어디로 가고 있었던 것인가. 진짜 병을 고치고 삶을 마주하려 했던 것인가, 아니면 그저 아프다는 핑계로 끝없이 도망칠 화려한 도피처만 찾고 있었던 것인가. 내가 걸어온 방향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끔찍한 자각이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내 상처를 내 손으로 찢고 들여다볼 용기가 없어, 남의 칼을 빌려 수술대에 누워보려 했던 비겁함의 극치였다. 게다가 그 남의 칼조차 진득하게 믿고 견디지 못하는 알량한 인내심으로 고통을 회피하는 동안, 내 인생의 폐허는 단 한 뼘도 복구되지 않은 채 더 깊이 썩어가고 있었다.
언제까지 쉽고 빠른 정답만 찾아 헤매며 남의 바짓가랑이, 요란한 치마저고리, 펄럭이는 장삼 자락을 번갈아 붙잡고 징징댈 것인가. 아이에게, 어머니에게, 남편에게, 회사에, 그리고 이제는 인스턴트 같은 힐링과 사이비 무당에게까지 목줄을 내어주었다. 그렇게 질질 끌려다니던 끔찍한 노예의 사슬을 이제는 스스로 끊어내야만 했다. 차라리 상처가 곪아 터져 맨몸으로 피투성이가 될지언정, 두 번 다시 이리저리 도망치며 내 삶의 운전대를 남에게 넘기지 않겠다. 오직 내 두 발로 이 폐허의 진흙탕을 딛고 서서, 내 두 눈으로 이 지독한 불안의 민낯을 끝까지 정면으로 노려보겠다.
휴대폰 화면을 거칠게 꺼버리며, 나는 내 목을 조르던 모든 가짜 위로와 한없이 가벼웠던 나의 얄팍한 근성을 향해 가장 서늘하고도 폭발적인 결별을 선언했다. 내 삶의 주권은 이제, 철저히 내가 탈환한다.
다음 날 아침, 텅 빈 거실에서 눈을 뜬 나는 예전처럼 무기력하게 소파로 파고드는 대신 단호하게 주방으로 향했다. 쌀을 씻어 밥솥을 안치고, 평생 바쁘다는 핑계로 걸러왔던 아침밥을 입 안 가득 밀어 넣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알을 턱관절이 뻐근해지도록 꾹꾹 씹어 넘기며, 내장 깊숙한 곳부터 다시 살아갈 생존의 열기를 채워 넣었다. 냉장고 구석의 반찬을 그러모아 내 몫의 간소한 도시락을 쌌다. 그리고 부드러운 식빵을 꺼내 달걀을 부치고 햄과 양상추를 얹어 샌드위치를 하나 더 만들었다.
'배고프면 먹어.'
짧은 메모 한 장을 곁들여 아이의 굳게 닫힌 방문 앞에 접시를 가만히 내려놓았다. 출근길마다 습관처럼 쥐던 자동차 키는 신발장 위에 덩그러니 내버려 두었다. 발목에 다가와 몸을 비비는 고양이의 따뜻한 체온을 뒤로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우리 집 뒤편으로는 제법 수풀이 우거진 동네 뒷산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산등성이를 가로질러 굽이굽이 넘어가면 반대편 산자락 끝에 조그마한 도서관이 하나 나타난다. 나는 매끄러운 아스팔트 대신 그 가파른 흙길에 기꺼이 몸을 실었다.
그렇게 매일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산을 넘고 도서관을 오가는 생활이 1년 남짓 이어졌다. 처음에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갱년기로 약해진 무릎이 비명을 질렀지만, 멈추지 않고 묵묵히 산길을 올랐다. 매일 흙을 밟고 숲의 숨결을 들이마시다 보니, 나의 이 규칙적인 발걸음이 대자연의 거대한 절기(節氣)와 아주 자연스럽게 맞물려 돌아갔다. 그러면서 내 안의 원초적인 생명력이 펄떡이는 것을 서서히 느낄 수가 있었다.
얼었던 대지가 녹아내리고 봄비가 내린다는 우수(雨水) 무렵, 쩍쩍 갈라졌던 산길에 물기가 돌고 파릇한 새싹이 흙을 밀고 올라오는 것을 보며 나는 내 안의 꽁꽁 얼어붙었던 기운이 다시 움트는 것을 감지했다. 지독했던 늦더위가 한풀 꺾이는 처서(處暑)의 산등성이에서는, 내 몸을 불태울 듯 미쳐 날뛰던 갱년기의 펄펄 끓는 열기조차 서늘한 바람 앞에서는 기꺼이 순응하며 스러진다는 것을 온몸으로 호흡했다. 발버둥 치는 대신 대자연의 기운에 나를 저항 없이 맡기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층위에서의 평온이 찾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에 이르러, 붉게 물든 나뭇잎들이 미련 없이 가지를 떠나 흙으로 돌아가는 풍경을 마주했다. 그때 나는, '평생을 아등바등 움켜쥐고 있던 네 안의 허상과 껍데기들도 저 낙엽처럼 그저 순리대로 흙으로 돌려보내면 된다'고 넌지시 일러주는 대자연의 품에서 깊은 위안을 받았다.
자연의 거대한 섭리와 조용히 소통하며 그 흐름에 나를 맡기다 보니, 어느새 처참하게 쪼그라들었던 체력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육체만 단단해진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수백, 수천만 원을 쏟아부었던 작위적인 힐링 센터나 억지스러운 기도원에서는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날것 그대로의 회복력이었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일, 단단하게 흙을 딛고 차오르는 그 규칙적이고 묵직한 생명의 박동은 잿빛이었던 내 정신마저 아주 서늘하고 명료하게 벼려놓았다. 그 생생한 흙길을 지나, 나는 마침내 나를 날카로운 지혜로 무장시켜 줄 철학의 서가에 가닿고 있었다.
산을 넘어 도착한 도서관. 실직으로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던 나에게, 퀴퀴한 종이 냄새가 나는 철학 서가는 세상으로부터 폐기 처분된 채 목적지 없이 부유하던 나의 시간을 조용히 묻어두기에 가장 좋은 장소였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베스트셀러 코너와 달리 철학 서가는 늘 텅 비어 한가했기에, 도망치듯 숨어든 내게는 더더욱 마음 편한 피난처였다. 대자연의 호흡으로 머릿속의 안개가 걷히고 나니, 이전에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도 몰랐던 두꺼운 책들의 언어가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서가 구석에서 나는 프리드리히 니체를 만났다. 그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싸가지 없고 시니컬한, 묘하게 힙한 철학자였다. 세상의 모든 도덕과 낡은 껍데기들을 망치로 때려 부수라며 오만하리만치 당당하게 독설을 내뿜는 그의 거친 언어들은, 평생 남의 눈치만 보며 살아온 내 안에 억눌려 있던 야성을 조용히 건드렸다. 그는 내게 현실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씹어 삼키며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자, 즉 '초인(Übermensch)'의 길을 넌지시 가리키고 있었다.
한편, 펄펄 끓는 니체의 망치질만으로 널뛰는 감정을 다 다스리기 벅찬 날이면 산길 중턱에 자리한 조그마한 절에 들러 108배를 올렸다. 불교 교리 같은 건 전혀 몰랐지만, 대웅전 부처님 앞에서 한없이 몸을 낮춰 엎드리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명치끝에 엉켜있던 독기가 빠져나가며 알 수 없는 평온이 찾아왔다.
땀방울이 나무 마루에 뚝뚝 떨어지도록 절을 하던 어느 날, 법당 한구석에서 허드렛일을 거드시던 굽은 등의 노보살님 한 분이 소리 없이 다가와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주셨다. 섣부른 참견 하나 없는 그 고요한 미소 속에서, 나는 "다 괜찮다. 다 지나갈 거다"라고 다독이는 깊은 위로를 읽어냈다. 그 다정한 침묵 앞에서 나는 굳게 잠가두었던 눈물을 왈칵 쏟아내고 말았다.
어떤 잣대도 들이대지 않고 묵묵히 온기만을 내어주는 그 부담 없는 배려를 겪고 나니, 이 고요한 종교에 대해 깊은 호감과 경외심이 자연스레 피어올랐다. 그러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흔히 절에 다니는 나이 든 여자를 뭉뚱그려 '보살'이라 부르지만, 나를 흠뻑 울게 만든 저 단단하고 따뜻한 힘의 근원, 즉 진짜 보살(菩薩)이란 대체 어떤 존재일까.
그 찻잔의 온기를 계기로 나는 도서관 종교 서가로 자리를 옮겨 불교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4. 허상의 우상을 깨고, 얽매임 없는 주인의 삶을 예고하다
그렇게 흙먼지 날리는 산길과 고요한 도서관을 오가며, 나는 니체의 거친 언어와 부처의 단단한 지혜를 천천히 내 삶의 궤도 안으로 끌어들였다. 서양의 역동성과 동양의 관조하는 지혜. 전혀 다를 것 같은 두 철학이 묘하게 겹쳐져 보이기 시작했다.
허무와 냉소를 깨고 피비린내 나는 현실 한복판에서 생의 찬가를 부르는 니체의 '초인', 그리고 안온한 열반을 거부하고 징글징글한 진흙탕 같은 세상 속으로 기꺼이 뛰어든 대승불교의 '보살'. 생의 가장 깊은 심연을 통과해 다시 지상으로 돌아온 이 두 존재는, 결국 어떠한 고통 속에서도 '자기 삶의 완전한 주인이 되겠다'는 단 하나의 뜨거운 선언에서 만나고 있었다.
그 서늘한 철학의 렌즈들을 겹쳐 내 지난 삶을 비춰보자, 그토록 견고했던 고통의 장벽에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짊어진 이 처참한 괴로움은 밖에서 날아온 억울한 재앙이 아니라, 나 스스로 엮어낸 덫이었음을 조심스럽게 인정해야 했다.
니체의 시선으로 더듬어본 내 과거는, 세상이 쥐여준 '착한 딸', '완벽한 엄마', '유능한 직장인'이라는 껍데기를 진짜 나라고 믿고 섬겨온 '우상 숭배'의 시간이었다. 그 가짜 우상들에게 인정받으려 발버둥 치느라, 정작 내 영혼의 주권은 남에게 다 내어준 채 비겁하게 끌려다녔던 셈이다.
또한 부처의 고요한 눈으로 바라보니, 세상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영원히 고정된 나라는 존재는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섭리를 거스르려 했던 나의 무지가 뼈아프게 밟혔다. 아이도, 어머니도, 심지어 나 자신조차 매 순간 변해가는 흐름 속에 있다. 그런데도 나는 억지로 그것을 내 뜻대로 통제하고 영원히 움켜쥐려 했다. 그 지독한 탐욕과 억지스러운 집착이 내 손발에 족쇄를 채운 근본적인 원인이었음을 통렬하게 자각했다.
물론 철학책 몇 권 읽었다고 완벽한 해답을 찾은 것도, 하루아침에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니었다. 당장 오늘 집으로 돌아가면, 아침에 방문 앞에 두고 온 샌드위치가 손도 대지 않은 채 덩그러니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보며 또다시 억장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여전히 내 앞에는 존재를 뒤흔드는 불안이 시커멓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방향만큼은 명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밖에서 임시방편의 진통제를 찾으며 남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리지는 않겠다는 것. 아직은 비틀거리고 두렵지만, 내 뼈를 갉아먹던 우상의 실체와 어리석음을 직시하며 기어이 내 두 발로 이 진흙탕을 딛고 서보겠다는 단단한 다짐이었다. 망치를 든 초인과 진흙 속의 보살이 내 핏속에서 뜨겁게 섞이기 시작했다. 낡은 껍데기를 찢고 나온 날것의 불안 앞에서,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꿀 눈부신 사유의 전투가 마침내 그 서막을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