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활화산이 터지다: 힐링이라는 수상한 독약

by 하노이별

1.캄캄한 거실, 굳게 닫힌 방문 앞의 죄인

새벽 3시. 또다시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한겨울인데도 목덜미를 타고 끈적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가쁜 숨을 몰아쉬는 동안, 갱년기가 몰고 온 이 폭력적인 물리적 열기는 역설적이게도 내 삶이 얼마나 차갑게 식어버렸는지를 잔인하게 일깨워주었다.

어둠 속에서 시선이 머문 곳은 3년째 굳게 닫혀 있는 아이의 방문 앞이었다. 문틈 아래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모니터 불빛만이 아이가 살아있음을 알리는 유일한 생존 신호다. 아이는 저 빛이 들지 않는 방에서 밤낮을 뒤바꾼 채 스스로를 유폐시켰다. 내가 평생을 걸고 매달렸던 '좋은 엄마'라는 이름표가 처참하게 찢겨 나간 현장이다.

선천적으로 예민하고 우울한 성향을 지녔던 아이에게 정서적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시기,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의 육아를 온전히 남의 손에 전담시켰다. 퇴근 후에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아이의 칭얼거림을 등한시했고, 전남편과는 매일같이 소리치며 싸우기 바빴다. 안방에서 오가는 그 날 선 고성들이 아이의 연약한 세계를 산산조각 내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 채, 나는 그저 핏대를 세우며 내 억울함과 내 옳음만 주장해대기 바빴다.

남편과의 이혼 후, 아이는 눈에 띄게 말수가 줄어들었다. 부모가 박살 낸 세상에서 홀로 불안을 견디던 아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왕따까지 당했고, 결국 세상과의 단절을 선언하며 굳게 방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 아이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내게 던진 마지막 말은 내 가슴에 영원히 뽑히지 않는 대못이 되었다.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뭔데? 이럴 거면 대체 나를 왜 낳았어!"


나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닫힌 문을 두드리며 나름대로 발버둥 쳤으나, 이미 거센 물살에 떠내려가는 아이의 손을 잡아채기엔 너무 늦은 뒤였다. 내 삶에서 가장 아프고 뼈저리게 후회되는 난제 앞에서, 나는 그 문턱을 감히 넘을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아이의 처분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무기력한 미결수일 뿐이다.


2. 황금 올가미에 묶인 딸, 끔찍한 대물림의 완성

남편과의 이혼이 온전히 우리 두 사람만의 성격 차이 때문은 아니었다. 그 파국의 이면에는 내 안의 또 다른 굴레, '착한 딸'이라는 이름표가 도사리고 있었다.

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잃고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는, 내게 드리운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그늘을 지우기 위해 맨몸으로 세상의 멸시를 견디며 억척스럽게 그 세월을 살아내셨다. 상당한 부를 일군 어머니는 그 돈으로 내 삶의 그늘을 말끔히 지울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나는 그 피눈물 나는 희생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뼛속 깊은 감사함을 늘 안고 살았다.

하지만 그 거대한 은혜는 어느 순간부터 내 목을 조르는 숨 막히는 족쇄로 변해 있었다. 어머니의 사랑은 지독한 조건부였다. 어머니가 내비치는 기대에 완벽히 부응하고 고분고분 말을 들어야만 사랑이 허락되었다. 그 울타리에서 벗어나면 영영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근원적 공포는 나를 자신의 감정조차 숨긴 채 거절이라는 단어마저 잊어버린 겁쟁이로 길들였다.

어머니는 내게 남편의 빈자리를 채울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며 내 인생을 통제하려 들었다. 사사건건 내 가정에 개입하며 남편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을 때조차, 나는 어머니의 기분을 살피고 눈치를 보느라 남편 편을 들 수 없었다. 그저 갈등을 피하고 싶어 단 한 번도 "안 돼"라는 거절의 말을 뱉지 못했다. 나는 그 거친 간섭을 끊어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어머니의 눈 밖에 날까 두려워 정작 내 가정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방치하였다.

결국 남편이 지쳐 떠나던 날, 그는 내게 "너는 평생 네 엄마의 꼭두각시로 살아라"라는 비수를 내 가슴에 꽂았다. 남편이 떠난 자리에는 어머니에 대한 지독한 원망이 남았지만, 나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릴 때마다 다시 어머니의 황금 올가미에 스스로 가녀린 목을 밀어 넣었다. 버림받을까 두려워 내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그 거대한 족쇄에 나 자신을 옭아맨 것이다.


"아이고, 남편 복 없는 년이 자식 복이라고 있겠냐."


이 대사는 내가 어머니를 거역하고 그 올가미를 벗어나려 할 때마다 나를 주저앉힌 지독한 주술이었다.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내면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며, 그 빈자리를 내가 꽉 채워드려야 한다는 비틀어진 책임감과 부채의식을 자극했다. 아버지 부재의 괴로움을 내 아이에게만큼은 물려주지 않으려 나름대로 노력했건만,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릴 용기가 없어 그 굴종의 껍데기 속에 갇혀 사느라 정작 내 가정을 지켜내지 못했다. 결국 이 지독한 결핍의 대물림을 내 선에서 끊어내지 못한 나는, 철저히 실패한 딸이자 파산한 어미였다.


3. 비겁한 도피처의 붕괴, 폐기 처분된 명함

가정을 깨트리고 아이를 방치하면서까지 내가 도망치듯 매달렸던 마지막 보루는 직장뿐이었다. 안방에서 전남편과 살육전 같은 싸움을 벌이고, 굳게 닫힌 아이의 방문 앞에서 죄인처럼 서성이다가도, 출근만 하면 나는 '유능하고 빈틈없는 팀장'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집구석의 처참한 문제들로부터 눈을 돌리기 위해 나는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로 내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일했다. 내 청춘과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든 그 알량한 명함 하나가, 내 존재를 증명해 주고 숨통을 틔워주는 유일한 탈출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처절한 믿음이 부서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불과 한 달 전, 회사는 구조조정과 희망퇴직이라는 우아하고 폭력적인 포장지를 씌워 나를 길거리로 내몰았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제2의 인생을 찾으셔야죠."


인사팀장의 건조한 입술에서 흘러나온 그 예의 바른 인사말은 내 20년의 헌신을 휴지통에 처박는 사형 선고였다. 짐을 챙겨 나오던 날, 내 이름 석 자와 직함이 박힌 명함 뭉치가 파쇄기의 날카로운 쇳소리에 갈려 나가던 순간, 나는 세상에서 완벽하게 폐기 처분되었다.

실직이 내게 안겨준 진짜 지옥은 단순히 밥벌이가 끊겼다는 데 있지 않았다. 직장은 내 삶의 끔찍한 문제들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였다. 그 도피처가 통째로 날아가 버리자, 아침이 밝아도 갈 곳이 없다는 낯선 적막감과 함께 미칠 듯한 공허함과 허탈함이 무방비 상태로 나를 덮쳐왔다. 내 존재를 지탱하던 유일한 기둥마저 뽑혀 나간 거실에서, 나는 길 잃은 유령처럼 방황해야 했다.


4. 진통제의 시간을 지나, 진짜 치료제를 갈망하다

직장이 사라진 텅 빈 일상에 갱년기의 폭력적인 증상들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왔다. 시도 때도 없이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고, 짙은 우울감과 불안이 목을 조르듯 덮쳐왔다. 아이, 엄마, 실직이라는 세 가지 거대한 절망이 갱년기의 신체적, 정신적 붕괴와 맞물려 내 안에서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이 끔찍한 열기와 절망을 끄기 위해 세상이 권하는 온갖 처방전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유명하다는 산부인과를 찾아 호르몬 패치를 붙였고, 정신과 문턱을 넘나들며 우울증 약을 털어 넣었다. 그것도 모자라 비싼 돈을 들여 산속의 힐링 센터를 찾아다니고, 주말이면 절에 찾아가 수없이 108배를 올리거나 교회의 구석진 의자에 앉아 소리 내어 울며 신께 나의 구원을 간청했다.

급기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용하다는 무당까지 찾아갔다. 처음에는 갱년기가 몰고 온 알 수 없는 불안과 터질 듯한 가슴 답답함을 하소연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무당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내 몸이 아프고 불안한 건 내 탓이 아니라 굳게 문을 걸어 잠근 아이에게 시커먼 귀신이 들러붙어 집안의 기운을 다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라며 혀를 찼다.

그 한마디는 벼랑 끝에 서 있던 내 마음에 무서운 불을 질렀다. 이 모든 가정의 파탄이 내 방치 때문이 아니라 귀신의 장난일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안도감과, 당장 내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어미로서의 맹목적인 강박이 뒤엉켜 이성을 마비시켰다. 결국 나는 불안을 부추기는 무당의 겁박에 홀린 듯 수천만 원을 허공에 뿌리며, 미친 듯이 울리는 꽹과리 소리에 맞춰 처절한 굿판까지 벌이고 말았다.

나의 이 눈물겨운 분투는 결국 내 안의 곪아 터진 괴로움을 어떻게든 밖으로 배설해 보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들이 건네는 위로의 말들과 따뜻한 차 한 잔, 신에게 바친 기도와 시뻘건 부적들은 아주 잠시나마 내게 찰나의 평화를 주는 듯했다.

하지만 그 알량한 약발은 굳게 닫힌 아이의 방문 앞을 지나는 순간, 혹은 어머니의 신경질적인 전화벨이 울리는 순간 여지없이 산산조각 났다. 그 요란했던 굿판으로도, 수없이 반복했던 절과 기도로도 아이의 닫힌 문은 단 1밀리미터도 열리지 않았다.

세상이 갱년기 여성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나 힐링이라는 단어는 결국 내게 아무런 답이 되지 못했다. 그것은 그저 나를 다시 예전처럼 자기 감정을 억누르는 착한 딸과 묵묵히 희생하는 엄마의 자리로 얌전히 밀어 넣으려는 마취제에 불과했다. 약 기운에 취해 고통을 회피하는 동안, 삶의 근본적인 문제는 단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 더욱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아이가 무너진 이유를 내 방치가 아닌 귀신 탓으로 돌리려 했던 내 비겁함마저 진저리 나게 혐오스러웠다.

문득, 서슬 퍼런 각성이 일었다. 언제까지 썩어 문드러져 가는 곪아 터진 상처를 덮어두고 가짜 진통제만 찾아 헤맬 것인가. 밖에서 주입하는 마취제에 취해 잠드는 짓은 이제 끝내야 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아주 잠깐 통증을 잊게 해주는 임시방편이 아니라, 내 삶의 폐허를 밑바닥부터 뜯어고칠 진정한 치료제였다.


5. 허상의 껍데기에 바친 피눈물, 그리고 눈먼 자의 질문

진통제를 끊어낸 맨정신으로, 텅 빈 거실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내 인생의 성적표를 헤아려본다. 나는 정말이지 요령 한 번 피우지 않고 내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어떻게든 아이에게 번듯한 울타리가 되어주려 내 살을 깎았고,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 드리고 싶어 속을 끓였으며, 회사에서 도태되지 않으려 밤낮없이 내달렸다. 피눈물을 흘리며 내게 주어진 그 역할들을 완벽하게 지켜내려 아등바등 발버둥 쳤다.

하지만 지금 와 돌아보니 아이 문제도, 엄마 문제도, 실직 문제도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나의 최선, 이 피 튀기는 전력 질주가 결국 눈먼 자가 절벽을 향해 달리는 끔찍한 자멸이었나 싶어 미치도록 괴로웠다.

돌아보니 내가 그토록 목숨 걸고 매달렸던 목표들은 온전한 나의 행복이나 내 내면의 기준이 아니었다. 철저히 남들 보기에 그럴싸한 삶, 타인의 인정이라는 허상에 불과했다. 설령 그것이 방향을 잃은 가짜 목표였다 할지라도,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쏟아 부은 피땀과 눈물만큼은 미치도록 진짜였다.

그런데 그 죽을힘을 다해 달려온 끝에 내 손에 쥐어진 결과물은 처참한 낙제점 그 자체다. 굳게 문을 걸어 잠근 채 숨만 쉬는 아이, 영원히 탯줄을 끊어주지 않고 내 숨통을 조이는 어머니, 그리고 20년의 헌신을 비웃듯 길바닥에 폐기 처분된 초라한 짐상자.

방향이 틀렸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음에도, 가슴 밑바닥부터 뜨거운 분노가 치밀어 올라 텅 빈 허공을 향해 짐승처럼 악을 쓰고 싶었다. 내 영혼을 갈아 넣어 쌓아 올린 세계가 한낱 모래성이었다는 숨 막히는 절망과 억울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갱년기의 펄펄 끓는 물리적 열기가 내 인생이 철저히 파산했다는 그 지독한 공허함과 뒤엉켜 폭발하는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무거운 질문 하나를 던지게 되었다.


"도대체 왜, 미친 듯이 치열하게 살아온 내 인생의 스텝이 이다지도 지독하게 꼬여버렸는가?"


질문의 끝에서 마주한 진실은 서늘했다. 그것은 밖이 정해준 기준에 갇혀 내 진짜 삶을 내팽개친 뼈아픈 대가였다. 밖이 정한 삶이 아닌, 온전히 내가 주인이 되어 정하는 삶으로 방향을 틀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체 어떤 어리석음과 비겁함이 내 인생을 이토록 처참하게 망가뜨렸는지 정확하고 냉혹하게 진단해야만 한다.

이 끔찍한 폐허의 밑바닥에서, 나는 나를 집어삼킬 듯 으르렁거리는 저 거대한 불안의 민낯과, 내 삶을 이토록 처참하게 망가뜨린 나의 뼈아픈 비겁을 정면으로 직시하기로 했다.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내 두 발로 다시 서기 위한 처절한 여정이, 바로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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