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삶의 한가운데서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법
1. 전 부치는 거실, 중2병 조카가 쏘아 올린 살불살조
기름 냄새가 벽지까지 끈적하게 스며든 명절의 거실은 서른 후반의 미혼인 나에게 언제나 거대한 공개 처형장이다.
"너도 이제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 아니잖니. 사람 착실하고 직업은 구청 공무원이야. 자가 아파트도 있고, 안정적이지? 재작년에 사별했어. 야, 그래도 이혼이 아닌 게 어디니, 사람 좋아. 중학교 다니는 아들이 하나 있긴 한데, 너 차라리 이런 재취 자리가 노후엔 훨씬 낫다."
기어이 고모의 입에서 '재취자리'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짐짓 조카의 앞날을 걱정한다는 듯 무심하게 툭 던진 그 말은 가장 예리하고 폭력적인 비수가 되어 꽂혔다. 옆에서 과일을 깎던 언니가 기다렸다는 듯 한술 더 얹었다.
"그러게 내 말 듣고 서른다섯 넘기 전에 난자라도 얼려두지 그랬어. 여자는 마흔 넘으면 생물학적으로 끝장이야, 넌 아직도 그림인지 뭔지 뜬구름만 잡고 있니. 영미네는 이번에 대출 껴서 신도시 아파트 평수 늘리고 둘째까지 가졌다더라."
주방 한구석에서 기름 튄 앞치마를 두른 엄마는 말없이 내 눈치를 살피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심 고모와 언니의 그 모진 참견을 내가 제발 좀 새겨듣길 바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 유일한 편이어야 할 혈육마저 세상의 잣대에 굴복해 나를 '하자 있는 딸'로 바라보는 그 무언의 눈빛은, 쏟아지는 폭언보다 훨씬 더 숨 막히는 올가미였다.
'여성으로서의 유통기한'과 '결혼 시장에서 폭락한 가치'. 적나라하게 나를 후려치는 핏빛 팩트 폭격 앞에서 나는 말문이 막혔다. "다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라는 혈육의 참견은 그 어떤 욕설보다 잔인했다. 졸지에 나는 '번듯한 직장도 남편도, 심지어 신선한 난자조차 없는 무명 예술가'라는 초라하고도 끔찍한 죄목을 목에 건 채 애먼 식혜 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바로 그 숨 막히는 거실 한복판에서 사건이 터졌다. 시커먼 오버핏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유튜브 쇼츠만 노려보던 싸가지를 실종한 '중2병 말기' 조카 녀석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초등학생 사촌 동생을 향해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겨누며 냅다 포효하는 것이 아닌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아라한을 만나면 아라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라! 하아아압!"
하마터면 입에 물고 있던 동그랑땡을 뿜을 뻔했다. 중국 당나라 임제 선사의 그 서늘하고도 웅장한 선문답인 '살불살조(殺佛殺祖)'가 저 핏덩이 입에서 튀어나오다니. 놀란 눈으로 "너 방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야?"라고 물었더니, 조카는 떡진 앞머리를 훅 불어 넘기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아, 이모 이거 몰라요? 요새 유튜브에 도는 일본 애니메이션 《환상마전 최유기》 짤방이잖아요. 거기 주인공이 요괴들 쓸어버릴 때 쓰는 궁극의 필살기 대사라고요. 받아라, 파괴의 장풍!"
조카는 다시 냅다 보이지 않는 장풍을 쏘아댔고, 동생은 '으악' 하며 소파 위로 나동그라졌다. 그 어이없는 촌극 앞에서 나는 헛웃음을 삼켰다. 천 년 전 임제 선사의 그 피 튀기는 사자후가, 2026년 설 명절 우리 집 거실에서 중2병 조카의 가벼운 장난으로 소비되는 꼴이라니. 저 겉멋 든 텅 빈 허세 덩어리에게 깊은 선불교의 철학이 가닿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페인트 냄새나는 좁은 작업실 침대에 누운 밤, 조카의 그 맹랑한 목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고 거대한 사찰의 종소리처럼 웅장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유치한 만화 대사로 웃어 넘기기엔, 지금 내게 너무도 절박하게 필요한 '진짜 필살기'였기 때문이다.
2. 정상성이라는 거대한 감옥, 그리고 비굴한 기도
그 서늘한 필살기의 여운을 안고 명절 끝에 돌아온 작업실은 평소보다 유난히 좁고 비루했다. 환기를 시켜도 가시지 않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코를 찌르는 독한 페인트 찌든 내가 뒤섞여 속이 메슥거렸다. 침대 밑에 굴러다니는 빈 컵라면 용기, 어제 짜다 만 물감들이 굳어버린 팔레트, 그리고 기한을 넘긴 각종 공과금 고지서들. 설날 거실의 화려한 조명 아래서 난도질당했던 내 삶의 민낯이 누렇게 바랜 벽지 위로 적나라하게 투사되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왜 이러고 사는 걸까."
천장을 보며 누워 있자니, 고모가 던진 '재취자리'라는 단어가 천장에 매달린 거미줄처럼 내 얼굴 위로 끈적하게 내려앉았다. 서른 후반, 무명 예술가, 비혼. 세상이 정해놓은 '정상'이라는 궤도에서 튕겨 나가 파편화된 내 존재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불량품 같았다. 남들은 착실하게 자산의 평수를 넓히고 생명의 대를 이어가며 견고한 성채를 쌓을 때, 나는 고작 마르지도 않을 캔버스 위에 허황된 꿈이나 덧칠하며 나이만 먹어온 것일까.
엄마의 그 전전긍긍하던 눈빛이 자꾸만 눈을 찔렀다. 딸의 불행을 자신의 실패로 여기며 자책하던 그 비겁한 연민. 그 눈빛을 견디지 못해 화를 내고 도망치듯 빠져나온 내가 결국 도착한 곳은, 차가운 냉기만 가득한 이 평당 수만 원짜리 감옥이었다. 꿈이라는 우아한 이름으로 포장해 왔던 나의 가난은 사실 지독하게 비참했고, 자유라는 명분으로 고집해 온 나의 고립은 사실 죽기보다 외로웠다. 이 눅진한 괴로움의 정체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나는 애먼 허공에 삿대질하며 분노를 쏟아내거나, 매주 만 원어치 로또를 사들고 제발 내 인생에도 돈벼락 한 번만 떨어지게 해달라고 비굴하게 구걸하고 있었다.
바로 그 비리고 씁쓸한 자기혐오의 한복판에서, 낮에 들었던 조카의 그 장난스러운 외침이 벼락처럼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그것은 단순한 애니메이션의 대사도, 중2병 소년의 객기도 아니었다. 수천 년 전 당나라의 거친 선사 임제가 나처럼 자기 삶의 무게에 짓눌려 헐떡이는 중생들을 향해 내리꽂았던 가장 살벌하면서도 자비로운 독립 선언이었다.
그 서늘한 사자후가 내 작업실의 정적을 가르는 순간, 나는 벼락을 맞은 듯 멈춰 섰다. 그리고 내 영혼의 밑바닥을 향해 가장 아픈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왜 남들이 세운 거룩한 정답 앞에 스스로를 죄인으로 세우는가? 내 삶의 진짜 주인은 누구이며, 나는 도대체 어떤 '가짜 부처'에게 내 영혼을 저당 잡힌 채 이토록 비굴하게 구걸하고 있는 것일까?
3. 내가 꿇어 엎드려 구걸하던 가짜 부처들의 목록
조카의 입을 빌려 당나라의 선사가 벼락처럼 내 삶에 소환된 순간, 나는 비로소 보았다. 내 밖에서 나를 지배하고 있던 '절대적인 권위'와 '세상의 정답'이라는 거대한 우상들을.
"逢佛殺佛 逢祖殺祖 逢父母殺父母"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라.
임제 선사가 토해낸 이 피 튀기는 사자후는 결코 패륜이나 파괴를 선동하는 광기 어린 외침이 아니었다. 여기서 부처와 조사(스승), 그리고 부모는 사회와 내가 스스로 정해놓은 견고한 금기이자, 우리가 맹신하는 엄숙한 잣대, 그리고 감히 거역할 수 없다고 믿는 거룩한 경건성을 뜻한다.
그것은 "네가 네 삶의 당당한 주인(主人)이 되지 못하면, 너는 평생 남이 차려놓은 밥상이나 넘겨다보며 눈치나 보는 가련한 객(客) 일뿐"이라는 서늘한 경고이자 뼈아픈 일갈이었다. 그 살벌하면서도 자비로운 칼날을 손에 쥐고 보니, 나는 평생을 이 세 가지 거대한 우상 앞에 엎드려 "제발 나를 낙오시키지 말아 달라"라고 구걸해 온 가련한 중생이었다.
내가 첫 번째로 목을 쳐야 할 가장 거룩하고 절대적인 '부처'는, 스마트폰 뱅킹 앱을 열 때마다 마주하는 '텅 빈 잔고'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온 세상을 지배하는 종교이자 완벽한 구원이다. 숫자가 인격이자 신앙인 세상에서, 바닥을 드러낸 통장은 나를 수시로 '함량 미달의 인간'으로 몰아세웠다.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하고 물감 값을 아껴야 하는 구질구질한 빈곤은, 예술이라는 숭고한 가치마저 '돈 안 되는 뻘짓'으로 전락시켰다. 나는 '청빈한 예술가'라는 얄팍한 포장지로 나를 위장하려 했지만, 사실은 그 비참한 숫자라는 전능한 부처 앞에 누구보다 비굴하게 엎드려 '제발 나를 좀 구원해 달라'라고 시주를 구걸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베어버려야 할 나를 가르치려 드는 엄숙한 스승, 즉 '조사(祖師)'는 '안정된 정착'이라는 이름의 폭력적인 잣대였다. SNS 속 친구들은 신도시의 매끄러운 아파트에서 아이의 백일잔치를 하고, 승진 축하 파티를 열었다. 그 견고하고 완벽한 정상성(正常性)의 궤도는 이 시대가 나에게 강요하는 가장 엄격한 가르침이자 모범 답안이었다. 그 훈육 앞에서 물감 얼룩진 앞치마를 두른 내 삶은 늘 이단이고 오답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번듯한 일상을 부러워하며 밤마다 캔버스 앞에서 붓을 꺾고 싶었던 나의 지독한 자기 검열. 그것은 세상의 시선이라는 거대한 스승에게 내 영혼을 통째로 헌납한 비겁한 굴종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가장 깊은 곳에서 옥죄던 '부모'는 내 몸 안에서 째깍거리는 '생물학적 타이머'였다. 부모라는 존재가 상징하는 혈연의 이어짐, 재생산에 대한 본능적인 압박은 서른 후반의 미혼 여성에게 원초적인 공포를 들이밀었다. 명절 거실에서 고모와 언니의 입을 빌려, 그리고 엄마의 전전긍긍하는 눈빛을 빌려 나를 난도질했던 그 엄숙한 잣대. '이대로 영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리면 어쩌지?' 한 번도 진지하게 열망해 본 적 없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그 길이 영영 닫혀버릴지도 모른다는 카운트다운은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그것은 혈연과 생물학적 쓸모라는 낡은 금기를 넘어서지 못해 벌벌 떠는 존재론적 공포였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타지 못해 안달복달했던 '평균적인 삶'이라는 뗏목. 돈과 안정된 정착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쓸모라는 널빤지를 엮어 만든 그 낡은 뗏목을 타야만 안전할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 사실 나는 강을 건너기는커녕, 그 지독한 믿음에 짓눌려 단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그 뗏목을 내 손으로 부수고 침몰시킬 시간이었다. 내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기 위해,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고 두려워했던 저 세 우상들의 목을 치기로 결심했다.
4. 내면의 단두대에 세 개의 우상을 세우다
나는 매캐한 페인트 냄새가 진동하는 작업실 한가운데 우뚝 섰다.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인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낡은 습관을 버리거나 삶의 태도를 조금 바꾸는 알량한 다짐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평생 정답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철옹성 같은 세계관 자체를 내 손으로 완전히 붕괴시켜야만 가능한, 가장 불경하고도 근원적인 도약이었다.
눈을 질끈 감고, 천 년 전 당나라 선사가 벼락처럼 쥐여준 내면의 지혜검(智慧劍)을 치켜들었다. 시대가 만들어낸 견고한 잣대들을 절대적인 진리를 넘어 숭고한 신앙으로 받들며 엎드려 온 나날들이었다. 이제 그 거룩하고 폭력적인 우상들을 향해 기어이 칼을 뽑아 드는 것, 그것은 나를 가두고 있던 낡은 우주를 끝장내고 진짜 나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처절하고도 장엄한 파괴 의식의 시작이었다. 더 이상 이 오만한 허깨비들에게 내 영혼의 피를 빨릴 수는 없었다.
[첫 번째 단두대] '자본'이라는 서늘한 금속 부처
가장 먼저 지혜의 검을 겨눈 곳은 내 숨통을 평생 쥐고 흔들던 '자본'이라는 이름의 거대하고 차가운 금속 부처였다. 통장에 찍힌 숫자가 내 인간으로서의 등급을 매기고 유일한 구원줄이 되는 세상. 나는 이 무자비한 신에게 버림받을까 봐 평생을 바닥에 납작 엎드려 벌벌 떨었다.
검을 치켜들자마자 서릿발 같은 냉기가 칼날을 타고 내려와 내 손목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당장 다음 달 내야 할 작업실 월세, 마트에서 들었다 놨다 하던 식료품의 가격표, 명절 거실에서 들려오던 동년배들의 빛나는 아파트 평수가 환영처럼 눈앞을 덮쳤다. "돈도 안 되는 짓거리, 당장 때려치우지 못해? 평생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늙어 죽을래?" 자본주의의 정답이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비웃음은 너무도 생생하고 뼈아팠다. 검을 쥔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통장의 숫자를 부정하는 것은 곧 생존 자체를 포기하는 것만 같아 차마 칼이 나가지 않았다.
단칼에 베어낼 수 있는 가벼운 허깨비가 아니었다. 뼛속까지 스며든 가난의 공포와 돈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는 내 살점과 단단하게 엉겨 붙어 있었다. 나는 눈물을 쏟으며, 내 영혼에 깊게 박힌 그 쇳덩어리 같은 수치심을 향해 톱질하듯 힘겹게, 아주 힘겹게 검을 밀어 넣었다. 칼날이 들어갈 때마다 내 쪼들리는 일상이 온통 부정당하는 듯한, 생살이 찢기는 고통이 밀려왔다. 나는 이를 악물고 짐승처럼 앓는 소리를 내며 그 질기고 단단한 맹신의 목통을 조금씩 썰어냈다. 내 손은 피투성이가 되었고 호흡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
얼마나 길고 참혹한 사투를 벌였을까. 마침내 기괴한 파열음과 함께 나를 무가치하게 짓누르던 그 금속성의 거대한 권력이 굉음을 내며 허물어져 내렸다. 예술은 돈으로 환산될 때만 가치 있다는 그 오만한 신앙의 목을 억지로 끊어내고 나니, 온몸이 땀범벅이 된 채 가쁜 숨만 몰아쉬게 되었다. 그 지독한 숭배를 내 손으로 끝장낸 폐허 위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통장의 잔고는 그저 내 생활을 조금 불편하게 만드는 숫자일 뿐, 더 이상 내 존재 자체를 심판하거나 구원할 전능한 부처의 자격을 영원히 상실했다는 것을.
[두 번째 단두대] '정상성'이라는 폭력적인 율법
두 번째 칼날은 나를 끊임없이 훈육하고 채점해 온 시대의 거대한 스승, '정상성'이라는 폭력적인 율법을 향했다. 남들처럼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제때 짝을 만나 궤도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강박은, 감히 의심조차 할 수 없는 이 사회의 유일무이한 정답이었다. 지혜의 검을 들이밀자, 스마트폰 너머로 보았던 지인들의 화려한 가족사진, 명절마다 쏟아지던 친척들의 은근한 동정과 무시, '그러다 늙어서 고독사한다'는 세상의 서늘한 저주가 질척이는 거미줄처럼 칼날에 엉겨 붙었다.
궤도를 이탈하면 영원한 구제불능의 이단아로 낙인찍힐 것이라는 끔찍한 소외감이 내 목을 옥죄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라'는 타협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아우성치며 칼 쥔 손을 마비시켰다. 나는 그 달콤하고도 폭력적인 소속감의 유혹을 끊어내기 위해, 피가 섞인 진흙탕을 뒹굴어야 했다. 내 생살에 박힌 타인의 시선과 열등감을 핀셋으로 하나하나 생으로 뽑아내듯,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억압의 제단을 향해 칼을 내리쳤다.
몇 번이나 주저앉고 싶은 끔찍한 사투 끝에, 마침내 눅눅하게 엉겨 있던 맹신의 결속이 질기게 뜯겨 나갔다. 타인의 궤도를 훔쳐보며 부러워하던 내 안의 비굴한 노예가 그제야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나를 옭아매던 세상의 시선이라는 거대한 가짜 스승은, 그토록 처절한 난도질 끝에 내 발밑의 구정물 속으로 처박혔다.
[세 번째 단두대] '생물학적 타이머'라는 원초적 성역
마지막으로 검끝이 향한 곳은 내 몸통 가장 깊숙한 곳에 똬리를 튼 원초적인 성역, '생물학적 쓸모'와 '혈연'이라는 이름의 절대 우상이었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핏줄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옥죄었던 종족 보존의 거룩한 잣대. 그것을 베어내는 것은 앞선 두 우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살아있는 내장을 도려내는 듯한 근원적인 고통이었다.
칼을 대는 순간, '여성으로서의 유통기한이 끝난다'는 끔찍한 숙명론이 펄펄 끓는 핏물이 되어 내 시야를 가렸다. 한 번도 간절히 원해본 적 없는 삶임에도, '이대로 영영 아이를 낳지 못하는 텅 빈 껍데기로 늙어가면 어쩌지?' 하며 나를 벼랑 끝으로 밀어붙이는 존재론적 공포가 내장을 헤집어놓았다. 명절 거실에서 한숨 쉬던 엄마의 불안한 눈빛이 떠올라 손아귀의 힘이 풀렸다. 혈연이라는 이 지독한 종교를 거스르는 것은 천륜을 끊는 패륜처럼 느껴져 차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채, 기어이 내 숨통을 조이는 그 질긴 태반 같은 족쇄를 향해 다시 칼을 쥐었다. 한 번에 잘리지 않아 수십 번을 내리치고 찢어내며, 내 안의 여성성을 억압하던 낡은 자궁의 신화를 생으로 도려냈다. 끔찍한 비릿함과 함께, 여성의 몸을 출산의 도구로만 매겨버리던 그 폭력적이고 맹목적인 믿음이 마침내 핏덩이가 되어 바닥으로 툭, 떨어져 내렸다.
5. 처절한 도살, 그리고 아주 천천히 스며든 텅 빈 자유
이 시대가 강요한 세 개의 거대한 절대 신앙이 마침내 떨어져 나간 내면의 폐허. 내가 그토록 구걸하며 매달렸던 세속의 거룩한 정답들은 처참하게 난도질당해 불길에 휩싸였다.
사방에 가짜 우상들의 살점과 파편이 낭자한 그 고요한 폐허 한가운데, 나는 칼을 쥔 채 헐떡이며 꿇어앉아 있었다. 만신창이가 된 맨발로 홀로 우뚝 서기까지, 내 안의 세계가 몇 번이나 무너지고 찢겨 나갔는지 모른다.
단칼에 우상들의 목을 쳤다고 해서 곧바로 환희나 해방감이 밀려온 것은 아니었다. 평생을 기대어 온 거대한 기둥 세 개를 내 손으로 무너뜨렸다는 사실에, 오히려 낯선 공포와 지독한 현기증이 먼저 덮쳐왔다. 나를 지탱해 주던 오만한 정답들이 사라진 자리는 너무도 거대하고 아득해서, 당장이라도 그 텅 빈 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잘려 나간 살점이 아려오듯 '그래도 남들처럼 살아야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오랜 미련이 환상통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하지만 턱 끝으로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을 닦아내며, 무너진 잔해들을 가만히 직시하는 동안 기적처럼 서늘하고도 고요한 감각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를 그토록 옥죄었던 두려움의 실체들이 바닥에 뒹구는 흉측한 허깨비에 불과했음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것이다. 나는 마침내, 내 영혼을 철저히 짓누르고 있던 시대의 억압적인 부처들을 내 뼈와 살을 깎는 지혜의 검으로 기어이 도살해 내고야 만 것이다. 피비린내 나는 그 황량한 폐허 위에서 짐승처럼 거친 숨을 고르며, 나는 비로소 그 어떤 것에도 엎드리지 않는 가장 거룩하고 텅 빈 자유를 아주 천천히 예감하고 있었다.
6. 피 튀기는 폐허 위에서 진짜 나를 출산하다
가짜 우상들의 목을 쳤다고 해서 내일 아침 당장 통장에 0이 더 붙거나, 서른 후반의 나이가 스물로 역주행하는 마법은 일어나지 않는다. 밀린 공과금 고지서는 여전히 내 책상 위를 뒹굴 것이고, 노산을 걱정하는 친척들의 오지랖은 다음 명절에도 어김없이 날아들 것이다. 무명 예술가의 길은 아득하고, 30대 후반 미혼 여성이라는 꼬리표는 수시로 내 발목을 잡으려 들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입가에 자꾸만 실없는 웃음이 번졌다. 나는 비루한 현실을 외면하고 가진 것 없어도 마음만은 평화롭다며 값싼 정신승리를 부르짖으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이제, 남의 잣대에 나를 구겨 넣으며 스스로를 학대하는 바보짓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외부의 권위를 죽여버린 그 폐허의 자리에, 비로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자명하고도 눈부신 '진짜'가 돋아나기 시작했을 뿐이다.
타인의 인정과 세상의 정답이라는 껍데기를 벗겨내자, 내가 평생을 바쳐 모셔야 할 진짜 부처와 조사, 그리고 부모의 다정하고도 단단한 맨얼굴이 드러났다.
내가 마주한 '진짜 부처'는 자본주의의 숫자가 아니라, 평가받지 않는 나의 맹렬한 고유함이었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기어이 캔버스 앞에 앉아 물감을 섞는 이 충만한 몰입. 타인의 승인 따위는 필요 없이, 오직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창조의 기쁨을 쏟아내는 그 유연한 붓질의 순간이 바로 불성(佛性)의 발현이었다. 비참한 숫자를 베어낸 자리에, 어떤 세속의 잣대로도 훼손될 수 없는 나라는 가장 존귀하고 유일한 부처가 유유자적 미소 짓고 있었다.
나를 가르치는 '진짜 조사(스승)'는 남들이 정해놓은 정상성의 궤도가 아니었다. 진짜 스승은 바로 이 찌질하고 끈적하지만 생동감 넘치는 나의 일상 그 자체였다. 실패할까 봐 남의 모범 답안만 훔쳐보던 노예의 눈을 뽑아버리고 나니, 붓을 꺾고 싶으면서도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다시 팔레트를 잡는 나의 이 고단한 분투가 눈물 나게 대견해 보였다. 성공한 자들의 오만한 조언이 아니라, 결핍 속에서도 유연하게 나만의 궤도를 만들어가며 뒹구는 이 진흙탕 같은 일상이 나를 가장 단단하고 따뜻하게 품어주는 진짜 스승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품어야 할 '진짜 부모'는, 유전자를 물려주는 생물학적 의무가 아니라 나 스스로를 낳는 위대한 실존이었다. 서른 후반의 생물학적 타이머라는 폭력적인 잣대를 쳐 죽인 자리에, 깃털처럼 가벼운 해방감이 밀려왔다. 나는 타인의 생명을 잉태하는 자궁을 닫는 대신,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자유로운 나를 기꺼이 잉태하고 출산하기로 했다. 세상의 오지랖에 휘둘리던 연약한 딸을 지워내고, 내 삶을 온전히 긍정하고 보듬어 안는 나 자신의 강인하고 다정한 어미가 된 것이다.
이것이 임제 선사가 쥐여준 지혜검의 진짜 용도였다. 무지함의 우상을 베어낸 자는 더 이상 현실을 도피하지 않는다. 이 궁핍하고 팍팍한 현실 한가운데를 자신의 거룩한 성소(聖所)로 삼고, 기꺼이 그 위에서 유연하게 춤을 출 뿐이다. 나는 정해진 궤도에서 이탈한 가련한 낙오자가 아니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번듯한 뗏목에 매달려 안전을 구걸하는 대신, 널빤지 하나 쥐고 망망대해에서 맨몸으로 파도를 타며 유쾌하게 웃어젖히는 뻔뻔하고 치열한 몽상가다.
명절날 거실에서 허공을 가르던 조카의 그 맹랑한 장풍이 새삼스레 다정하고 고맙다. 앞으로 이 치열한 몽상가로 살아가는 동안, 통장 잔고가 바닥을 치고 세상의 잣대가 또다시 스멀스멀 밀려오는 순간이 오더라도 나는 더 이상 죄인처럼 숨거나 비굴하게 구걸하지 않을 것이다.
다가오는 명절에는 더 이상 애먼 식혜 잔만 만지작거리며 주눅 들지도 않을 것이다. 친척들의 얄미운 오지랖이 날아오면 그저 속으로 유쾌하게 기합 한 번 넣고, 갓 부친 동그랑땡을 보란 듯이 아주 맛있게 씹어 삼켜 줄 것이다. 그리고 내 삶의 한가운데 가장 비장하고 우아한 자세로 우뚝 서서, 조카 녀석에게 완벽하게 빙의해 냅다 나만의 유쾌한 필살기를 쏘아 올릴 참이다.
"나를 주눅 들게 하는 그 어떤 가짜 부처를 만나더라도 나는 그 목을 단칼에 쳐버리고, 오직 나 자신이 진짜 부처가 되어 찬란하고 뻔뻔하게 살아남으리라! 하아아압!"
자, 이제 낡은 뗏목이 불타버린 자리에 서서 다시 캔버스 앞에 앉을 시간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정답 따위는 알 바 없이, 오직 나만의 당당하고 고유한 오답을 칠해나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