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는 날]을 읽고

- 애니타 해닉 -

by 작은손

내가 다니던 도서관이 리모델링을 했다. 카페보다는 도서관을 좋아하는 나는 그 기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3개월만에 개관한다기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기대가 컸는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에 실망했다. 하지만 책으로 공간을 채운 곳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보물찾기 놀이를 앞둔 아이처럼.


내 메모지에는 읽고 싶은 책들이 몇 권씩 저장되어 있다. 대게 책을 읽다가 메모해 둔 것들이 많고, 다른 이들이 읽고 추천한다는 영상을 보거나 브런치와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책들이 늘 대기하고 있다. 하지만 확보해 둔 먹이보다 새 먹잇감이 더 관심을 끌듯 신간 구역으로 갔다. 이런저런 책들을 보며 살펴보는 재미도 있지만 나의 관심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책을 보다가 [내가 죽는 날]을 선택했다. 병을 안고 살아가는 나는 죽음에 관한 책을 정기적으로 읽어 왔다. 저자가 문화인류학자라 좀 더 객관적인 글일 수 있겠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실행되지 않는 '조력 사망'에 관한 책이다. 참으로 요원해 보이지만 나는 희망을 안고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언젠가 조력 사망이라는 제도가 도입되기를. 가장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조력 사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출산의 고통보다 더 끔찍한 고통을 수반하는 말기 암환자의, 고통만 남은 날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 여긴다.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중대한 일이지 않겠나 싶다.


저자는 조력 사망을 원하는 사람과 가족, 의사 등 관계된 사람들을 인터뷰만 해서 쓴 책이 아니라 '적극적 참가자로서 타인의 경험 일부를 함께 겪고' 쓴 책이기에 '훨씬 더 깊은 통찰'에 이를 수 있었다고 한다. 사례들을 읽으면서 나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현장에 함께 하면서 조력 사망을 선택한 사람들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권리를 본인이 가지고 있음을 얼마나 감사하는지 이야기한다. 또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자리에서 마음을 전하고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가족들과 끝내 더 일찍 가려는 가족을 이해하지 못한 남은 자의 고통도 얼마나 큰 지를 알려 준다. 조력 사망을 자살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사랑으로 떠나보내기'를 하지 못한다.


책에서 나에게 감동을 준 이야기가 있다. 루이스라는 남자의 조력 사망에 관여한 의료 사회복지사 에이다의 이야기이다. 집이 없는 루이스에게 조력사망할 수 있는 장소로 자신의 아파트를 제공한다. 그것도 10살 된 어린 딸이 있는데도. 치사 약물을 마신 루이스가 순조롭게 진행되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깨어나고, 말하고, 지퍼를 내려 오줌을 지리고, 구토하고 경련을 일으킨다. 결국 911로 연락하여 병원으로 이송되고 약물 복용 후 닷새 만에 사망한다. 이 과정을 함께 한 에이다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나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에이다는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루이스를 도울 수 있었다고 하는데......


또한 조력 사망에 자원봉사로 오랜 시간 활동하는 데리애나도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봉사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는 내가 부끄럽게 여겨지도록 한다. 간호사로 일한 그녀는 임종을 지켜보는 곳에 있음이 영광스러운 자리이고 은총이라 여긴다. 조력 사망을 간절히 원했던 환자가 건너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기를 받을 때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고 하니 출생과 죽음은 다름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죽음이 '적극적인 내려놓기' 과정이라 한다. 많은 죽음이 있겠지만 병사의 가장 큰 원인은 암이다. 어느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암이 축복일 수 있도록 살아가라고. 처음에는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라고?'라며 흥분했다. 하지만 축복일 수 있다. 순간을 더 정성껏 살아갈 수 있게 하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들게 한다.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며 관계를 정리할 수 있고, 물건을 정리할 수 있다. 남은 날을 조금이라도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지금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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