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읽고

- 장자크 루소 -

by 작은손


외톨이가 된 장자크 루소가 산책을 하면서 쓴 글이다. 그의 책 [에밀]을 읽을 때는 '형제도, 이웃도, 친구도, 교제할 사람'도 없는 고독 속에서 인생 말년을 쓸쓸하게 살았음을 몰랐었다. 18세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이해해야만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자식을 고아원으로 보낸 이가 교육에 관한 책을 써서 고전으로 남게 했다니.


걷고 싶을 때가 있다. 함께도 좋지만 혼자 걷고 싶을 때가 있다. 혼자 걸으면 우선 편하다. 그 무엇인가로부터 해방된 기분도 들고 복잡한 것으로부터 놓이는 느낌도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이 편안히 다가온다. 나의 산책은 거니는 것이 될 때가 많다. 굳이 운동이 되게 하고 싶지가 않다. 거닐면서 나에게 너그러워지고 싶은지도 모른다.


루소는 '모든 사랑을 빼앗기고'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걷고 있다. 자신의 생각들을 몽상으로 표현하며 일기처럼 기록한다. 과거를 돌아보고 자신의 '거짓말'로 인해 한 여인을 곤경에 빠지게 한 사건을 뼈저리게 후회를 한다. 그 사건으로 인해 평생을 정직하게 살려 노력했다고 한다. 매일 산책하며 여가 시간을 명상의 시간으로 채워나갔다니 부러운 일이다.


저자는 산책을 하며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지 않았다면 절대로 누리지 못했을 평온을 누린다고 주장하면서 시간이 흘러 후세들의 평판을 자신한다. 역사를 볼 때,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 갖는 시각은 종종 조롱과 멸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교육론은 재조명을 받았지만 자식을 버린 일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라 생각된다. 하나도 아닌 넷을!


글에 대한 나의 생각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 주저리주저리 읊는 것 같이 부연되고 반복되는 내용도 있지만 확고한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루소는 현재 상황에서 하루를 버틸 수 있는 내용을 찾아가는 것이다. 자신과 대화를 시작하고 산책길에 야생의 식물들에 관심을 주고 연구도 한다.


야생식물에 관한 그의 관심을 보면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소로의 야생화 일기]를 떠올렸다. 평생에 걸쳐 식물을 관찰하고 기록한 자연학자이자 식물 애호가인 소로처럼 루소는 식물을 친구로 만들면서 자연을 이해하는 일은 곧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일로 받아들인 것 같다. 식물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그들과 공통점이 있다는 것만으로 친근하게 느껴진다. 자연은 시대를 뛰어넘어 함께할 수 있는 언어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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