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신 -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이순신 장군이 아들 면의 전사 소식을 접하고 쓴 일기를 읽으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계속 읽어 가니 교실이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놀란 눈으로 선생님의 몸짓을 놓지 않았다.
"마음은 이미 죽고 몸만 남아 울부짖는다"까지 읽고 흐르는 눈물 때문에 더 이상 읽어 갈 수가 없었다.
"얘들아, 오늘은 더 읽을 수가 없구나. 여기까지만 읽자"
"선생님, 왜 울어요? 너무 감동했어요?"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나네."
독후감을 지도하려고 아이들에게 매일 아침 독서시간에 읽어주다가 이순신 장군의 절절한 심정에 그만 내 눈물이 터지고 만 것이다. 몇 해 전 화산초등에서 '연을 쫒는 아이'를 읽다가도 아이들 앞에서 꺼이꺼이 울어버렸다.
하지만 어떠랴! 책을 읽으면서 선생님의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 가장 진솔한 교육이지 않을까? 난 첫 아이를 떠나보내고 삼십 분 울어야 할 울음을 이십 분 울고 참아버렸기에 못다 한 눈물을 이렇게 흘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 2014년 3월 18일 쓴 글
'효성이 지극하다'란 표현이 이해된다. 이순신 장군은 전장에서도 어머니의 평안하심을 가정 걱정하였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지도 못하고 돌아서면서 시대를 잘 못 만난 것을 한탄했다. 치열한 전투 뒤에도 혼자가 되면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순신 장군의 아들 회와 열, 면에 대한 사랑은 정말 절절하다. 아들이 잠시 떠나도 날씨 때문에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루었고 떠나가는 모습을 몸이 차가워질 때까지 바라보기도 한다.
명량해전에서 진 왜군의 보복으로 천안의 본가를 지키려다 죽은 막내아들 면의 전사소식이 적힌 편지를 받은 이순신은 '봉함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떨리고 마음이 조급하고 어지러웠다'라고 하며 목놓아 통곡하는 아버지였다
큰 칼 찬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국민학교 운동장 끝 동산에서 늘 보고 자랐기에 건강하고 용감한 영웅이라 생각하며 자랐는데 일기에는 '몸이 몹시 불편하여'란 표현이 너무 많아 놀랐다. 몸이 아파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고, 아픈 몸으로 공무를 보며 버텨내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장군은 수루에 홀로 앉아 나라를 생각하며 눈물짓는 날이 많았다. 천지간에 혼자라는 외로움에 살고자 하기보다는 죽는 날을 기다리는 이순신장군 같았다. 풍전등화 같은 나라를 두고 자신의 영욕을 먼저 생각하는 무리 속에서 그는 세 번이나 파직을 당하고 백의 종군했다.
추위에 떠는 부하에게 입고 있던 옷도 벗어 주는 인자한 상관이지만 잘못을 문책할 때는 단호하고 엄중하였다. 군법을 어긴 자는 가차 없이 목을 베었지만 귀순한 왜병들에게 광대놀이도 허락하는, 지킬 것과 베풀 것을 확실히 하는 분이셨다.
우리에게 당신의 삶을 함께 한 난중일기를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이켜 보면 [안네의 일기]는 읽고자 했으면서 [난중일기]는 읽고자 하지 않았을까? 책을 권해주신 분께 감사드린다.
- 2014년 4월 7일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