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영혼의 화가들 - 김광우 -
고갱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빈센트 반 고흐를 힘들게 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그림이 궁금했다. 언젠가 그에 관한 책을 읽으리라 여겼는데 이 책을 통하여 고갱이라는 화가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또 이 책을 손에 잡은 이유 중에는 무엇보다 고흐의 그림을 보고픈 마음이 컸다. 내게는 그의 그림을 보고 또 봐도 좋은 친숙함이 있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작업의 진행에 관해 들려준 이야기를 들었기에 그림을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볼 때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지난해에는 어느 레스토랑의 화장실에 걸려있는 반 고흐의 〈핑크빛 복숭아나무〉와 꽃을 그린 정물화를 보고 주인장에게 호감이 갔다. 그도 나처럼 빈센트를 좋아하기를 기대했다. 조심스럽게 고흐를 좋아하는지를 물어보니 여행지인 프랑스 아를에서 마음에 든 그림을 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화장실에 걸린 두 개의 그림이 모두 고흐의 것이라 기뻤다고 말했더니 주인은 그림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며 나를 의아해했다.
우린 관심사가 같을 때 친숙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정서를 나눌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고 내게 있는 것을 펴 보이고 상대의 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할 때에도 풀어나갈 수 있는 주제가 있기에 풍부한 소재를 끄집어내어 가며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끌어 나갈 수 있다.
고흐에 관한 부분을 읽다가 〈핑크빛 복숭아나무〉를 펼쳤는데 순간 그림을 오려 내 책상 옆 벽에 붙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다 깜짝 놀라며 ‘지성인이잖아’를 되뇌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고흐 팬이 책을 볼 때 ‘얼마나 속상해하겠어’를 생각하니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집에 많이 있는 고흐에 관한 책 중에서 그림 한 장씩을 오려서 방 분위기를 바꾸기로 마음먹고 마무리 지었다.
고흐의 죽음을 두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자살설과 타살설까지. 난 그의 죽음을 자살로 보고 싶지 않아 애써 타살로 보는 논리를 내 마음에 장착하지만 테오에게 보낸 고흐의 마지막 편지 내용을 보면 절망적인 화가의 심정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화가가 죽기 직전의 전시회 ‘앙데팡당전’을 통해 고흐의 그림은 평론가의 극찬과 동료 화가들의 인정을 받는다. 동생 테오가 형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희망에 찬 미래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자살로 끝을 맺으니 두 사람을 보는 나는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하여 작가 서머싯 몸이 쓴 책 《달과 6펜스》를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었다. 예술가가 예술을 선택하며 겪는 물질적인 궁핍함이 잘 표현되어 있다. 생활고를 겪으며 자신의 예술성을 끌고 나가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말한다. 작가는 예술을 달에, 물질을 6펜스로 비유하며 물질을 쫓는 인간의 욕망도 비판한다.
고갱의 삶을 읽으며 참으로 무책임한 가장이었구나 싶었다. 자녀 다섯을 혼자의 힘으로 기른 그의 부인 메테의 삶을 상상하니 같은 여자로서 위로를 하고 싶다. 성적 욕망이 강한 고갱은 가는 곳마다 여인이 곁에 있었고 타이티에서는 열서너 살 되는 어린 두 여자와 살았다니 예술이란 이름 앞에서는 도덕성을 거론하지 말아야 하는가 싶다. 업적과 사생활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은 알지만 자신을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장발장으로 여긴 고갱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서로 다름을 인정한 고흐와 고갱. 고갱과 함께할 수 없음을 아파하며 슬퍼할 정도로 외로움에 몸부림쳤던 고흐에겐 자신을 희생하며 그의 뮤즈가 되어 준 여인이 왜 한 사람도 없었을까. 그 누구보다 사랑이 많은 고흐인데...
전통적인 화법을 따르지 않아 당대에는 인정을 받지 못한 두 화가. 그림이 팔리지 않으니 가난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그들을 옥죄었고 건강마저 해쳤다. 두 사람은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려 몸부림쳤고 끝내 그들은 하늘의 별이 된 후에야 이름을 얻었다. 자신만의 예술을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하는 삶은 너무나 가혹했다. 하지만 후대의 화가들에게 인내와 용기를 보여 준 위대한 스승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