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 속
아름다운 여왕벌과 한 무리의 꿀벌들이 살고 있었어요.
꿀벌들은 항상 부지런히 자신들의 일을 했지요.
아기를 기르는 꿀벌. 벌집을 지키는 꿀벌.
그리고 꿀을 따모으는 꿀벌.
젊은 벌들은 멀리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까지 꿀을 모으러 다녔어요.
화창한 어느 날
솜털이 보송보송한 일벌 한마리가
꿀 내음을 따라 어느 숲속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데이지 꽃들이 끝없이 만발한 언덕을 발견했어요.
와. 이곳에서 꿀을 많이 얻을 수 있겠구나!
젊은 일벌은 기뻐하며 소리를 질렀어요.
일벌은 부지런히 데이지 꽃들을 돌아다니며 꿀을 모았어요.
어느덧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순간 꿀벌은 몹시 피곤함을 느끼고
할 수 없이 데이지 꽃에 앉았어요.
하루의 고단함을 포근한 데이지 꽃술 위에서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그때 데이지 꽃이 말을 걸었어요.
어머? 너는 벌이 아니니?
항상 바쁘게 날아다니는 벌이 어쩌다 꽃 위에 앉아있니?
안녕? 데이지꽃아.
오늘 나는 너무 멀리까지 와서 돌아갈 힘이 없구나.
괜찮다면 나는 이대로 잠시 쉬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니?
그래. 꿀벌아. 너에게 세상 얘기를 들으면 재미있을것 같구나.
나도 많은 꿀벌들을 보아왔지만 너처럼 가까이 있는 것은 처음이야.
달빛아래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밤이 지나가고 있었어요.
꿀벌은 출렁이는 데이지 꽃 위에서 부드러운 바람을 이불삼아 잠을 청했어요.
다음날 꿀을 한가득 안은 꿀벌은 다시 먼길을 돌아 보금자리인 벌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며칠이 지나도 그 데이지꽃이 잊혀지지 않았어요.
꿀벌은 다시 기억을 더듬어 먼 길을 떠났어요.
그리고 그것은
그 데이지 꽃을 만나기 위해서였죠.
한편 그 데이지 꽃도 달빛 아래서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 꿀벌이 생각났어요.
어쩜 그렇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할까?
데이지 꽃은 혼자서 자꾸 미소가 지어졌어요.
그날 저녁.
지친 몸을 이끌고 그 벌이 그 데이지에게 날아왔어요.
그 벌은 데이지꽃을 알아보고는 이렇게 말했어요.
나의 데이지.
나의 데이지를 보러 왔어요.
그러자 데이지 꽃도 화답을 했어요.
나의 벌이여.
그렇게 그 벌과 그 데이지는 서로에게 나의 벌 나의 데이지가 되었어요.
하지만 아침이 되면 꿀벌은 고향을 향해 다시 먼길을 떠나야 했어요.
아쉽지만 데이지는 따라 갈 수가 없었지요.
그렇게 한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면 꿀벌은 다시 데이지 곁으로 돌아오곤 했어요.
그러던 어느날 데이지는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나의 벌과 다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데이지가 물었어요.
나의 벌아. 너는 어떻게 길을 잃지 않고 먼길을 잘 다닐 수 있니?
응, 나의 데이지야 내게는 더듬이가 있어서 방향을 잘 기억하고 찾을 수 있단다.
그날 밤, 밤새 데이지는 생각을 했어요.
나의 벌이 더듬이만 없다면 길을 못 찾을 것이고
길을 못 찾으면 내 곁에만 있을 수 있겠다.
라고.
데이지는 깊은 밤 나의 벌이 잠 든 틈을 타서 벌의 더듬이를 잘라버렸어요.
이윽고 아침이 밝았어요.
해가 떠오르고 이슬 맺힌 꽃들이 활짝 기지개를 펴는 순간
데이지의 벌도 날개를 펴고 다시 꿀을 가지고 떠났어요.
데이지는 더듬이를 잃은 나의 벌이
얼마 가지 못해 길을 헤매다 돌아올것이라고 믿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그 벌은 힘차게 날개짓을 하며 날아갔어요.
그런데 날고 또 날아 계속 앞으로 가도 어쩐지 자꾸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었어요.
그래서 천천히 날며 주변을 확인해보았어요.
이럴수가!
이럴수가!
내가 길을 잃었구나!
나는 정말 길을 잃었구나!
너무 절망해버린 벌은 마음을 잃고 산속을 헤메다 쓰러져버렸어요.
데이지의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하루가 지났어요.
데이지는 그 벌이 떠난 그 순간부터 그 벌을 기다렸어요.
돌아오면 더듬이를 자를 수밖에 없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려 했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흐르도록 벌은 돌아오지 않고 데이지의 지친 마음은
이내 곧 미움으로 바뀌었어요.
하지만 미움은 잠시, 다시 올라오는 그리움에 생각했어요.
내가 만약 바람이라면 자유로이 나의 벌에게 갈텐데.
데이지는 슬픔의 무게로 자꾸 고개가 숙여졌어요.
얼마 후
활짝 핀 데이지 꽃밭에 힘 없이 시든 꽃 하나가 보였어요.
꽃들은 말했어요.
우리 친구가 바람이 되었다고.
끝내 그리던 바람이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