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자매
이 이야기에
반드시 등장하고야 말 인물이 있다면
우리 세 자매이다.
(언젠가 우리 세 자매 이야기를 낱낱이 쓰고 말테야!)
언니는 정신적 리더이다.
막내는 실질적 리더이다.
(무조건 막내 말을 들어야 한다!)
나는 반항하지 않는 둘째다.
그리고 나는 우리 세 자매 이야기를
가끔 시로 쓰기도 한다.
이 글의 끝에 있는 시는
2호선 대림역, 3호선 양재역,
5호선 영등포구청역, 6호선 동묘앞역
스크린도어에 절찬 게시 중인데
우리 세 자매 실화를 바탕으로 썼다.
우리 세 자매의 엄마는 1989년 늦봄에 돌아가셨다.
엄마 나이 고작 49살.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아까운 나이였지만
그때 우리는 너무 어려서 잘 몰랐다.
그 후 우리 세 자매가 중년이 되어가는 동안
엄마의 기일은 우리 세 자매의 엄마 추억 여행이자
“무조건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자”는 마음을
다지는 날이기도 했다.
엄마 추억 여행의 대부분 일정은
우리가 어렸을 때 엄마와 함께 다녔던 부곡 온천에 들러 목욕 재계를 한 다음
(부곡 온천은 한때 부곡 화와이라는 워터파크로 명성이 높았다. 지금도 온천물이 기가막히게 좋은 곳이다)
고향 마산에 있는 공원묘원(지금은 창원공원묘원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진동이었다)에 있는 엄마를 만나러 가는 1박2일 일정이지만 엄마 돌아가신 지 30년이 훌쩍 넘은 어느 해에 우리는 통영 여행을 끼워 넣어 2박3일 일정을 만들었다.
그날은 비가 많이 왔었다. 그래도 우리 세 자매는 꿀빵도 사 먹고, 충무김밥도 사 먹고, 숙소에서 소주 한 잔에도 그렇게 흥겨울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우리 세 자매보다 더 어린 나이가 되어 버린 엄마가 참으로 보고 싶어 눈물을 찔끔 흘리기도 했었다.
그 여행 이후 나는 시 「세 자매」를 써서 자매 모임에서 제법 진지하게 낭독했었는데 우리 세 자매는 즐거웠고 행복했고 서글펐다가 마지막에는 엄마가 무지하게 보고 싶었던, 그래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되기도 했는데 그후 우리는 자매 모임이 있을 때면 세 자매만의 문학의 밤을 진행하기도 했었다.
세 자매
이노나
늦은 봄날이었어요
비가 많이 왔어요
길가에는 꽃이 피다 말았죠
엄마를 보러 가는 길이었어요
엄마라고 발음하면 왜 배가 고플까요
우리는 우산을 쓴 채 시장을 다니며
김밥을 먹었고 꿀빵도 샀어요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는
짙어지는 산그늘보다 무거웠어요
이제 엄마보다 늙어버린 세 자매가
서로의 마음을 채워요
건강하게 오래 살자 같이 행복하자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모두 서로의 마음을 채우며 건강하게 행복하게 오래 사시길~
그러기 전에 나부터 행복해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