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한 앎
줄기차게 떨어져 내리는 폭포와 같은, 현대사회에 넘쳐나는 앎은 마치 미약한 수원처럼, 문자로 변신하여 흘러나온 앎에서 시작하였다. 다만 오랫동안 지배자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문자로 쓴 앎을 독점하였다. 사람들 사이에 신분이나 계급과 같은 높은 벽이 세워졌고, 피지배자는 이 벽을 깨지 못한 채 온갖 억압과 착취를 견뎌야 했다. 벽에 갇혀 있었던 앎이 세차게 흐르도록 만든 건 현대문명이었다. 이 문명은 앎에 기존에 없던 혁신적 요소를 도입하여 앎을 획기적으로 추동했다. 그 결과 앎은 폭발적으로 흘러넘쳤고, 드디어 사람들은 강력하면서 거대한 앎을 헤엄쳤다. 앎에 몇 번 없었던 변신이 현대문명에서 연달아 일어났던 것이다.
첫 번째 혁신은 구텐베르크의 활자 인쇄술이었다. 이것을 빼놓고 앎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앎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다. 무엇보다 활자 인쇄술은 누구나 책을 볼 수 있는 시대를 열어젖혔다. 이 기술이 등장하기 전까지 유럽에서 만들어진 책은 모두 필사본이었다. 그만큼 생산하는데 많은 정성과 시간이 들어가기에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었고, 돈 많은 귀족이나 수도원 정도만 보유할 수 있었다.
활자 인쇄술은 귀중품이었던 책을 누구나 손쉽게 구해볼 수 있는 일상품으로 바꿔버렸다. 책을 생산하는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자, 유럽 지식인에 의해 수많은 앎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왔다. 만약 이 기술이 없었다면, 현대문명의 핵심적인 사고방식인 과학혁명이나 계몽주의가 가능했을까 의문이 들 지경이다.
다음으로 전기가 나왔다. 이때부터 앎은 전혀 겪어보지 못했던 속도로 날아다녔고, 사람들은 앎을 빛으로 경험하기 시작했다. 앎이 전기로 변신한 것에 발맞춰 각종 미디어가 지구 곳곳을 빈틈없이 채워나갔다. 전신, 전화기, 무전, 라디오, 텔레비전 등과 같이 종류를 막론하고 마구 늘어났다. 아마 지구 레벨에서 인공위성이 전방위적인 매체 확산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할 것이다.
전기 덕분에 현대사회에선 지식뿐 아니라 정보나 데이터가 전 세계를 24시간 활보한다. 특히 점토판이나 책이 지녔던 제약이 사라져, 과거엔 앎으로 기능하기 어려웠던 소리나 영상이 앎을 이루는 중추로 떠올랐다. 이런 앎이 활보하는 매체 가운데 인터넷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면 이 기술은 지식, 정보 그리고 데이터 사이에 공고했던 위계를 완전히 흔들어놨기 때문이다. 즉 앎의 형태가 혁신적으로 변하자, 그동안 앎을 이루던 구조가 완전히 뒤 바뀌어 버렸다.
사람의 직관이나 논리에 의거한 지식은 오랫동안 정보나 데이터에 비해 우위를 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어떤 문명도 정보나 데이터를 수집할 방법론뿐 아니라, 이것을 빠르게 주고받을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복잡스러운 현실을 설명하는 데 철학이나 종교가 사람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은 디지털 네트워크 서비스인 인터넷이 등장하자 돌변했다. 흩어져 있던 지식이나 정보 그리고 데이터가 네트워크에 체계적으로 축적되었고, 무엇보다 인터넷에 접속한 누구라도 접근하여 활용할 여건이 마련되었다.
그러자 직관이나 논리에 의거한 지식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고, 정보나 데이터에 근거한 지식이 득세하였다. 이제 대학이 가설을 설정이나 실험을 조작 그리고 논문 심사할 때, 또 기업이 제품 개발이나 생산 조정 그리고 마케팅을 수행할 땐 정보나 데이터에 근거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워졌다. 물론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직관이나 논리가 중요성을 잃진 않았지만, 조만간 거의 모든 판단이 정보나 데이터 자체 혹은 이에 근거한 지식으로만 이루어지는 세상이 도래할지 모른다. 그런 미래를 예언하듯 인공지능이 세상을 강타했다.
21세기 현대사회에서 가장 각광받는 기술 중 하나인 인공지능은 네트워크에 축적된 앎 덕분에 나올 수 있었다. 이는 20세기에 있었던 두 차례 ‘인공지능 겨울’이 증명한다. 이 사건이 남긴 교훈은, 스스로 ‘학습’ 하지 못하는 알고리즘은 결국 사람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모든 역경을 딛고 개발된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은, 인터넷에 널린 방대한 앎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제야 비로소 인공지능은 ‘사람처럼’ 학습하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바둑과 같은 특정 분야에선 이미 사람을 뛰어넘었고, 점점 활용 범위를 넓혀가는 중이다. 이 같은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챗GPT’다. 2022년 11월 첫 출시한 챗GPT가 IBM의 딥블루나 딥마인드의 알파고와 확실히 달랐던 건, 사람만 가능하다 으레 믿어왔던 언어를 쓰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챗GPT의 핵심은 서비스의 이름인 GPT에 들어 있다. 생성형 사전학습 트랜스포머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의 줄임말인 이 단어에서, 생성형은 입력값의 의도를 추론하여 결괏값을 출력하는 걸 뜻하고, 사전 학습은 추론할 때 사용하는 솜씨 조합 skill set을 미리 학습했다는 의미며, 트랜스포머는 구글에서 2017년에 공개한 거대언어모델 LLM을 지칭한다.(16)
GPT는 기본적으로 사전 학습된 매개변수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출력값이 좌우되기에, 더욱 많은 데이터를 학습시킬수록 추론 능력이 향상된다. GPT-3는 약 1750억 개의 매개변수를 학습했고, GPT-4의 정확한 매개변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런데 챗GPT가 학습한 모든 데이터는 인터넷에서 구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만한 양의 데이터가 있을 만한 곳은 인터넷 이외에 달리 없다. 그러므로 챗GPT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약 54억 명(23년 기준)의 사람들이 키웠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은 수시로 지식과 정보 그리고 데이터를 인터넷으로 주고받는 중이고, 수많은 자극과 반응은 고스란히 네트워크에 남는다. 이와 관련하여 마셜 맥루언은 다음과 같은 예언 비슷한 것을 남겼다. “(…) 전기 기술 시대에 접어들고 1세기가 지난 오늘날, 우리는 공간과 시간을 제거하며 중추신경 조직 자체를 전 지구적 규모로 확장해 왔다. 매우 급속하게 인간 확장의 최종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 국면이란 바로 인간 의식을 기술적으로 모사하는 단계인데 이렇게 되면 인식이라는 창조적 과정도 인간 사회 전체에 집합적, 집단적으로 확장될 것이다. (…)”(17)
비록 맥루언은 인터넷을 직접 경험하진 못했지만, 그가 예언한 덕분에 우리는 현대사회가 기술적으로 신경계를 확장했다는 걸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즉 이 세상은 54억 명이 뉴런세포로 기능하는 거대한 뇌가 된 것이다.
16. 《생성 AI 혁명》, 강정수 외 지음, 더퀘스트, 2023, 21-24쪽.
17. 마셜 맥루언, 《미디어의 이해》, 김성기 옮김, 민음사, 2007, 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