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남겨 두고,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으러 간다.
누구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지키며,
한 마리 양이 길을 찾아 돌아오기를 애태우며 기다린다.
시험으로 학생을 평가할 수밖에 없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성적으로 서열화 당한다.
게다가 유치원 때부터 불안을 조장하는,
서울대 나와도 취직하기 힘들다는
양극화 사회로 인해,
단군 이래 최고의 물질적 풍요라는데
학생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불안해서,
때로는 선을 넘나드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어린 양처럼
때때로 교실을 벗어나는 학생들이 있다.
담임은 이들을 어찌해야 하나?
담임의 관심과 사랑의 총량을 E
담임이 학교 밖에서 쓰는 관심과 사랑을 e
담임반 학생 총원을 N
담임반 불안이 큰 학생 수를 n
이라고 하면
편애를 악덕이라 생각하는 담임들은
로 N을 지도하다가
n 중에 한 명인 A가
방황하며 문제 행동을 하면
기꺼이
로 N+A를 지도한다.
그런데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이
대체로 해마다,
자꾸 또는 계속 나타나므로
담임의 심신은 지친다.
교직 경력이 쌓여도 담임 역할이 힘겹다.
지치지 않으려면
로 n을 지도하면 되는데
이렇게 하면
n을 편애하는 것 같고
(N-n)의 학생들이 불만을 품을 것 같아서
로 n을 지도하지 않는
담임들이 많다.
인정받아야 사랑받을 수 있는데
성적 때문에 인정받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누군가의 눈 밖에 나는,
무관심,
버림받는 것이 가장 두렵다.
인정받기는 글렀다고 체념할지라도
버림받는 것까지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A를 기다리지 않고 찾아 나서는 담임에게
(n-A)는 마음을 붙이고
A보다는 그래도 자신이 더 낫다고 느끼며
교실에 앉아서 자신의 아픔을 견뎌낸다.
담임이 지켜보지 않는 틈을 타서
교실을, 선을 넘지 않는다.
(N-n-A)는 담임의 ‘늘 돌봄’이 필요 없다.
나름의 주체성과 자율성이 있으므로
A로 인한 담임의 빈자리를 느끼며 불안해하지 않는다.
한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늘 돌봄’은
주체성을 억압하고 의존성을 키우는 부작용이 있다.
N을 ‘늘 돌봄’ 해야 자신의 마음이 편할 것만 같은 담임은
N보다 먼저,
자신의 불안을 돌보아야 한다.
A가 돌아오기를,
방황을 멈추기를,
더이상은 선을 넘나들지 않기를
애타게 기다리며,
(n-A) 중에 A같은 학생이 나올까 봐
걱정하며
(N-A)를 지키고 있는 담임을 보며
특히, (n-A)는 언젠가는 나도 A처럼
담임 눈 밖에 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밀려든다.
차라리, 담임 눈 밖으로 스스로 걸어나가는 것이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
는 (N-A)의 불안을 조장하므로
N에 대한 담임 자신의,
실망과 화의 원천인 기대 없는
관심과 사랑을 믿고
로 n을 지도하고,
때론
로 A를 지도하면
지치지 않고,
실망과 화를 멀리하고,
담임으로서의 보람과 자긍심을 얻을 수 있다.
물도 사랑도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예수가 길 잃은 어린 양을 찾듯이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듯이
도
도 편애가 아니다.
시의적절하게
부족함 없이 나누는 관심과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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