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계절 - N.K. 제미신
휴고상 3년 연속 수상!이라는 화려한 문구에 혹해 읽었으나, 막상 펼쳐보니 《다섯 번째 계절》은 1권으로 완결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총 3권을 읽어야 하나의 서사가 닫히는 구조라, 단권으로는 뜬금없이 끊긴 듯한 인상을 준다.
설정 자체는 독창적이다. “다섯 번째 계절”이라 불리는 기후 재난이 주기적으로 덮쳐오는 세계, 땅을 다루는 강력한 능력을 지녔음에도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오로진이라는 존재.
하지만 내 기준에서 이 소설은 SF라고 보기도, 전통적 판타지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
게다가 1권만 해도 6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에다 다마야, 시에나이트, 에쑨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며 진행되어 다시점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라면 몰입이 자꾸 끊기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캐릭터는 개성적이지만, 쓰리섬, 양성애, 영아 살해 등 자극적인 소재들이 등장한다.
이런 부분에 거부감이 없더라도,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오로진이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머무는 설정 자체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특히 수호자를 피해 숨어살아야 하는 시에나이트가 화산 분출을 진정시키는 장면은 정말 납득하기가 어렵다. 이미 알리아는 멸망했고 수년간 불타고 있었으며, 기다리면 언젠가는 가라앉을 것이다. 시에나이트는 아이를 둔 어머니이자 섬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이성적으로라면 동료들과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힘 사용을 피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녀는 죄책감 그게 뭐 얼마나 대단했다고 섬을 보자마자 힘을 발휘해, 결국 수호자들을 섬으로 불러들이고 공동체 전체를 파멸로 몰아넣는다. 공포영화에서 이미 죽음이 예정된 인물이 굳이 살인마가 있는 장소로 향하는 클리셰처럼, 이 사건도 작가가 의도적으로 비극을 끌어오기 위해 개연성을 희생한 순간으로 보인다.
제미신은 오로진을 통해 차별받는 소수자, 특히 흑인의 은유를 그려내려 한 듯하다. 흑인 독자에게는 “능력과 잠재력이 충분하지만 제도적으로 억압받아 힘을 펼치지 못한다”는 자기 경험의 반영처럼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흑인-백인 대립이 아닌 제3의 시선으로 볼 때 이 설정이 오히려 역차별 논리를 내포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가장 강력한데도 차별받는다”는 메시지는 곧 “흑인은 본래 더 강력하다”는 의미로 비틀어질 수 있고, 그렇다면 다른 소수자들―아시아인, 남미인―은 자동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는 소수자 간 갈등을 촉발할 수도 있는 위험한 은유다.
그리고 현실의 역사 속에서 가장 억압받았던 집단은 언제나 힘이 없는 집단이었다. 오로진처럼 “세상을 뒤흔들 수 있는 존재가 오히려 억눌린다”는 설정은 사회 비판적 은유가 될 수는 있어도, 다른 소수자의 경험을 배제하고 새로운 차별의 상상력을 열어버린다. 결과적으로 작품의 의도와 달리, 차별의 구조를 드러내는 방식이 또 다른 차별과 모순을 만들어낸 셈이다.
작가의 정치적 메시지에 공감하는 독자라면 “통렬한 은유”로 읽히겠지만, 나는 지나친 설정과 주인공으로 모든 인물이나 힘. 사건이 집중되는 서사로 인해 공감하기 어려웠다.
설정과 세계관은 독특했으나, 2권과 3권을 이어 읽고 싶은 동기는 크게 생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