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하)- 움베르토 에코
사랑으로 시작해서 미움이 되는 것들 중에는 연애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종교나 정치도 만만찮다. '내게 속한 것'이 되어 있을 때는 사랑하고, '나와 다른 것' 이 되면 미워지는 것이 인간의 마음인지라 편 가르고 싸우기는 이만한 일이 없다.
신실한 믿음, 선, 청빈, 회개하고 뉘우치는 것, 겸손과 겸허함을 지니는 것. 이 얼마나 좋은 일이고 아름다운 단어인가. 그러나 교황파와 황제파, 혹은 같은 파이면서도 소형제파와 돌치노파 처럼 교리 해석의 작은 차이로 나뉘어 갈등을 반목한다. 이들은 아름답고 좋은 단어들은 내 것이요, 이단,악마 숭배, 악덕, 교만, 죄인과 같은 단어는 너희의 것이라 한다.
양쪽의 주장을 들어보면, 청빈에 관해 이쪽이 하는 말이 옳기는 하나 범주의 적용에 있어서 너무 엄격하여 숨을 쉴 수가 없고, 융통성에 있어 저쪽이 하는 말이 옳기는 하나 그 융통성은 종교의 본뜻을 살리는 데 쓰이지 않고, 권력과 안일을 합리화하며 청빈에서 멀어져 가는 구실이 된다
수도원에서 살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교황 사절단과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수도원에서 가진 회합은 음모와 계략, 편가르기의 절정으로 막을 내린다.
움베르트 에코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수도사인 윌리엄의 입장에서 교황파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교황파와 거리를 두고 있는 다른 교파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호의적이지는 않다. 신의 이름을 빌린 공포로 타인을 조종하는 호르헤나 고집스런 우베르티노, 교황과 다를 바 없이 물욕 충만한 수도원장, 동성애를 일삼거나 자기의 앎을 높이기 위한 지식을 위한 지식에만 집착하는 수도사들, 가난한 마을 처녀를 꾀어 통정하는, 사실상 범부보다 나을 게 없는 살바토레나 레미지오는 중세 기독교에서만 살고 있는 인물이 아니라, 현재 어느 교회나 어느 정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 군상은 아닐까.
윌리엄은 주인공 아드소에게 어떤 진술이나 이야기가 도덕적, 비유적, 우화적 진실을 드러낼 경우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상징적으로는 옳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극도의 청빈을 추구하는 소형제회 수도파의 우베르티노는 1323년 교황 요한22세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되어 베네닉트 수도회에 은거 중이다. 이곳의 수도원장은 자기 손에 낀 반지들을 겸양의 거울, 혹은 자비, 신앙, 순교 등을 나타낸다며 자랑한다. 자기 안에 있어야 할 요소를 반지로 끼고 자랑하는 수도 원장의 탐욕과 어리석음은, 결국 신앙이 본질을 잃고 외형만 남았을 때 어떤 허위가 드러나는지를 잘 보여준다. 윌리엄이 말했듯 진실은 반드시 사실과 일치하지 않아도 상징 속에 깃들 수 있지만, 이 수도원 사람들은 그 상징조차 껍데기처럼 소비하며 권력과 자기 만족을 위해 남용한다. 그래서 《장미의 이름》 속 수도원은 신을 향한 경건의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두려움, 그리고 끝없는 편 가르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으로 그려진다.
결국 에코가 보여주는 것은 중세라는 시대극이 아니라, 지금 우리 곁에서도 반복되는 인간사의 그림자다. 교황과 수도사, 이단과 정통의 갈등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 오늘날의 정치와 종교, 이념 대립 속에서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에코는 책과 지식의 의미를 잊지 말라고 말한다. 책은 믿음의 대상을 넘어 끊임없는 탐구와 의심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며, 지식은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삶을 개선하는 힘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식 역시 수도원장의 반지나 호르헤의 설교처럼 허영과 과시의 장식품으로 전락할 뿐이다.
그렇다면 장서관이란, 수세기에 걸쳐 서책끼리의 음울한 속삭임이 계속되는 곳, 인간의 정신에 의해서는 정복되지 않는, 살아 있는 막강한 권력자, 만든자, 옮겨 쓴 자가 죽어도 고스란히 살아남은 무한한 비밀의 보고인 셈이었다. -377
서책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새로운 탐구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삼는 것이 옳다. 서책을 대할 때는 서책이 하는 말을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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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6년 교환22세가 '거울에 대하여' 라는 책을 썼는데 '이름만 기독교인 사람들은 악마에게 제물을 바치고, 섬기고, 형상을 빚는다'라고 하며 악마 숭배를 탄핵한다.
내 사부님 로저 베이컨의 지식에 대한 갈망은 탐욕이 아니었다. 그분은 당신의 지식을 쓰시되, 하느님 백성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 쓰셨다. 따라서 그분은 지식 자체를 위한 지식은 구하지 않으셨다. -521
종교에 과몰입하면 공포든 신성이든 압도되어 미움과 증오가 커지는 걸까? 533 호르헤의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