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집 -안희연
일상은 지루하고 비루하다.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의 하루는 어제와 다를 것도, 같을 것도 없다.
시인은 본질을 꿰뚫어 보는 이들이고, 진짜 시인의 시에는 그것이 아무리 아름다울지라도 그 속에 어둠 한 조각은 꼭 들어가 있기 마련이므로, 산문집에는 얼마나 큰 덩어리들이 들어 있을까, 그의 단어는 얼만큼의 무게를 짊어지고 우리의 살아감과 죽어감을 관조할까. 이런 생각들을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라, 몇 페이지 읽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되려 몽글몽글해지고 은근하게 데워지기 까지 한다. 생소한 단어들은 시인의 손에서 꽃이 되고, 빛이 되고, 부드러운 마음이 되었다. 글의 온기가 마음의 서늘한 자리마다 들어와 위로를 건네고, 어제와 같지도 다르지도 않은 삶에 날카롭게 질문을 한다.
'당신이 먼저 거기에 있기에 당신의 눈 속에 담길 수 있는 나, 당신을 통해서 존재하는 나',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시인은, 글만큼 실제로도 민들레 같고 따스한 사람일까, 궁금하다.
나를 보기 위해 거울이 아니라 타인을 들여다 보아야 하는 사람은, 자신의 좋은 점도 그들에게서 볼 수 있음을 깨닫는 동시에, 가장 싫은 점 또한 그들 안에서 발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비난하던 손가락이 실은 나를 가리켰다는 것도.
거울 속의 나는 물리적인 빛이 반사되어 겉모양의 나를 보여주지만, 타인이라고 하는 거울은 나의 본질을 반사시켜서 속에 든 진짜 나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휘도는 내가 좋아하는 이에게서 나의 장점을, 내가 싫어하는 이에게서 나의 단점을 발견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며 겸손을 알려준다.
'모든 존재 안에 고여 있는, 이 모든 고유하고 절대적인 슬픔들을 다 어쩌면 좋지.' 라고 말하는 시인의 시선이 따뜻했고 '나를 흔들고 부수는 과정을 거치더라도 존재의 얼굴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의지를 응원하고 싶었다.
이 책은 눈물을 흘린 적이 있지만 미워하는 마음은 남겨두지 않고 싶은 이의 글, 부당하고 억울하게 빼앗긴 적이 있지만 원망하고 분노로 자신을 태우고 싶지는 않은 이의 글이다. 여성적이고, 관조적이고, 소박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영혼이 물처럼 스며들어 내 영혼의 바로 앞까지 와 닿는다.
시인은 단어라는 소재를 가볍게 풀어낼 뿐이었는데, 어느새 내 안의 내게 성큼 다가와 말을 거는 것이다.
'이것이 깊은 곳의 작은 나야. 그래, 네 안의 작은 이는 안녕하니?'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