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였구나

기나긴 하루 -박완서

by 어제만난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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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세고 씩씩한 기운. 사물을 겁내지 않는 기개.'

용기의 사전적 정의다.

용기라는 단어가 주는 긍정적 이미지와 달리, 사전의 정의엔 선악과 같은 가치는 없었다.


어떤 작가의 책 속에서 냉소적으로 묘사된 인물이 작가의 오랜 친구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고 해보자. 함께 웃으며 나눈 소소한 이야기들이, 소설 속에서 세태에 찌든 속물적 인물의 대사로 쓰여 있는 걸 발견한 친구는 배신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물론 작가도 친구가 속상해할 것을 예상해서 살짝 비틀기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의 당사자가 그걸 모르긴 어려울 것도 안다. 출간 이후 벗을 잃을지언정, 다른 한편에서는 예술의 꽃을 피워내는 작가의 행위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글은, 작가 자신의 영혼의 거름망을 거치고서야 태어날 수 있다. 그래서 설령 소설 속의 이야기들이 실제로 경험한 일이 아니었다 해도, 작가의 마음속에 한 번 담가졌다가 빠져나와야 하니 결국 자기를 발가벗겨 내는 작업이 글쓰기인 것이다. 타인의 삶을 재단해서 묘사할 수 있는 존재.

작가는 펜 하나로,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왔지만 얄밉던 친구의 모습을 최대한 꼴불견으로 묘사해 낼 수 있고, 곁눈질하며 마음속으로만 탐내 본 남의 남자와의 잠자리를 대담하게 그려낼 수도 있다.



한 달 새에 박완서의 소설을 3권이나 읽었다. 두 권은 밀리의 서재에서 오디오 북으로 들으며 읽었고, 이 책은 구입하여 읽었다. 친근한 언니의 오래 묵은 일기장을 보는 것 같이,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향수를 일깨우는 소박한 문장이 나를 빨아들였다.


소설은 재미있고 생생했다. 인간 군상의 추잡한 면을 툭 건드리는 듯 유쾌하게 묘사하면서도 송곳처럼 찌르는 날카로운 문장이 즐겁다. 이 힘의 원천은 그녀가 일상에서 겪고, 듣고, 느낀 것들이며, 그렇기에 종종 소설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질 정도다.


하지만 자신과 너무 가까운 것들을 소재로 다루다 보니 오히려 솔직하게 묘사한 사건들 (주로 그녀의 주변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과 애매하고 위선적으로 묘사된 사건들 (주로 그녀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이 확연히 구분이 된다. 또한 내가 입시를 위해 한국 현대 단편소설집들을 읽을 때 느꼈던 '자기 연민'의 문장들을 소설에서 자주 발견했다.


박완서의 소설은 암울하거나 무기력하게 늘어지지 않는다. 인물들에 대한 시선에도 온기를 느낄 수 있으며 본인과 동일시되는 인물들은 강인한 내면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문득문득 이야기의 한 구석에서 비겁을 정당화하려는 순간들을 느꼈고, 그녀가 현실에서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소설 속의 인물로 치환하는 순간을 목격한 것만 같았다.


글은 후루룩 읽혔으나, 작가의 이미지 또한 점점 뚜렷해졌다. 그녀는 정말로 용감한 사람이었다. 선악으로 규정될 수 없는 용기고, 누군가 상처받을 수도 있는 용기지만, 분명 그것은 사전적 정의로 용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용감함을 내가 가지지 못해서인지, 책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다, 아니 걸쩍지근했다.


글이 되기도, 말이 되기도 불편한 묘한 감정이다. 하지만 언젠가 비슷한 일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상대가 너무 미웠는데 그 사람이 나한테 뭘 딱히 잘못한 것도 없었다. 사실 나만 그 사람을 싫어한 것도 아니었고, 상당히 특이한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감정을 납득하기가 힘들어, 이유를 찾느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수치심이 마음 깊은 곳에서 미움을 열심히 부채질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드러내기를 몹시 꺼려하는 나의 어두운 면, 부끄러운 부분을 그가 아무렇지 않은 듯 드러내고 있어서, 그것이 너무 싫었던 것이다.


소설을 쓰려고 한 적이 있다. 소설이라는 가면으로 가려서 얼마든지 쓸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결국은 써지지 않았다. 내 내면을 보고 혐오감을 느낄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니 아무리 포장하더라도 이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다. 소설은 진짜가 아니다. 하지만 소설 속에는 작가의 진짜 마음이 있다. 숨겨놓아도 보이는 진짜 그의 영혼의 조각이. 그것을 내 보일 수 있는 것, 누군가 나를 혐오스러워해도 괜찮은 것,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쓸 용기가 있는 사람, 박완서는 그럴 수 있었기에 작가가 된 것이다.


재주가 없어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할 때는 마음이 불편한 적이 없었는데, 재주만 없는 게 아니라 미움받을 용기도 없다니, 정말로 인생의 패배자가 된 것만 같다. 평생 남의 눈치만 보고, 남들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나, 그런 게 두려워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나도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괜찮은 글에는 작가가 한 움큼씩 묻어난다. 어떤 글에서는 그의 선의가, 어떤 글에서는 악의가, 또 다른 글에서는 유머나 지성, 자기 합리화, 이상과 꿈, 허영과 오만이...... 작가의 다양한 내면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성이 되어, 혹은 우주를 뒤덮은 파도가 되어 독자를 덮친다. 나는 언어의 폭포 아래에서 쏟아져 내리는 그녀의 용기를 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내게 와서 꽂혀서 나를 쓰러뜨렸다. 내 감정은, 질투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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