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의 초단편 감성 SF

행성어 서점 -김초엽

by 어제만난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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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를 보면 책이 크게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라고 할 수 있는 '서로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안의 챕터들은 이야기가 모두 단절되어 있다.

공통적으로 각 이야기의 배경에는 소통하는 우주, 공존하는 우주관이 엿보인다. 전쟁과 갈등, 음모와 배신 같은 음침한 것들 대신, 우주인들이 언어의 문제를 해결했을 뿐 아니라, 환경이나 가치관의 차이도 극복한 뒤의 일상이 등장한다.

그것으로 충분히 힐링이 되는 소설이다. 물론 한편으로는 너무 꿈같은 설정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삼체와 같이 결국 하나만 남을 때까지 죽고 죽이는 서바이벌식 우주관보다는 오히려 현실적이다. 다만, 초단편 소설로 분량이 적은 각각의 이야기가 연결되지 않다 보니, 어딘가 부족한 전채요리를 먹는 듯한 아쉬움이 있었다.


반면 2부인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 안의 이야기들은 미묘하게 이어져 있어서, 독자에 따라 이 모든 이야기들이 시간 배열을 뒤섞어 놓은 동일 세계관 안의 다른 이야기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내게는 그런 상상의 빈틈을 작가가 일부러 내 준 듯 느껴졌다.

이야기의 시작은 우주 탐험을 떠난 과학자들이 외계 생물을 지구에 들여오는 것이다. 사람들이 코코라고 부르는 그 생물을 너나없이 사랑하게 되면서 코코의 번식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어느 순간 이 생명체는 지구 곳곳에 퍼져 호수 위에 균사체처럼 지능을 가진 군집체가 된다. 군집체를 형성한 이 우주 생명체들은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힘이 강해지고, 결국 인간 종은 정신붕괴로 대거 사망한다.

이후 몇몇 지역에서 생존한 인간들이 모여 살아가는데, 과학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클론을 생산해서 장기 교체를 하며 장수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산속의 어떤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자신의 몸에 자라는 버섯을 요리해 먹으면서 정신 붕괴를 피해 생존해가기도 한다.

과학이 발달한 구역의 지배자들은 통제적이고 비수용적인 집단으로, 이들과 대립한 다른 집단이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클론 공장에서 탈출해서 늪지의 균사체들을 먹으며 생존한 한 소년이 그 레지스탕스에 합류했다는 소식이 소설 뒷부분에 등장하면서 이 세계의 커다란 그림이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빈자리를 상상으로 메꾸면서 각 단편단편을 읽어나갔다.


우주, 미래, 과학, 상상을 소재로 삼기는 했지만, 이야기는 관계, 삶의 의미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들을 던지기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짧은 것과 관계없이 전체적인 소설의 깊이가 부족한 것이 다소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김초엽의 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더 좋았던 것 같다.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30p


하필 미각만은 인간에게서 가장 극적으로 발전했다는 거죠. 그건 인간에게만 날숨 경로가 있기 때문인데, 음식을 삼켰을 때 입안에서 목의 뒷부분을 지나 코 안쪽으로 들어오는 냄새는 오직 인간만이 인식할 수 있대요. 동물들은 킁킁거려서 냄새를 맡을 수는 있지만 입안의 음식에서 향미를 느낄 수는 없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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