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걷어낸 제인 에어,

여름 -이디스 워튼

by 어제만난사람


53493843803.20250312091907.jpg




19세기말~20세기 초 여성들의 삶과 사랑을 그린 이야기는 『제인 에어』, 『키다리 아저씨』, 『오만과 편견』처럼 낭만적인 작품도 있지만, 냉정한 21세기의 독자에겐 이디스 워튼의 작품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 산’에서 태어나 노스도머 마을의 로열 변호사 집에 입양되어 자란 채리티는 세상 물정은 모르지만 자존심 강한 아가씨였다. 그녀는 마을 유지 해쳐드 씨를 방문한 청년 하니와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임신에 이른다. 그러나 하니는 이미 도회지의 애나벨 발치와 약혼한 사이였고, 돌아오면 청혼하겠다는 말만 남긴 채 채리티를 떠나서는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채리티에게 남은 선택지는, 오래전부터 그녀에게 구애해 온 로열 변호사와의 결혼뿐이었다.


입양했다고는 하나, 그간 딸처럼 키워온 채리티에게 청혼하는 로열은 처음엔 영화 브림스톤에 나왔던 목사를 연상시켰다. 나이차만 해도 최소 25살은 날 건데? 그러나 임신까지 시켜놓고 나 몰라라 하는 하니에 비하면 나중엔 이 아저씨가 순애보 같이 여겨질 정도다.


불과 30~4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때로 ‘가문의 명예’라는 이름 아래 희생되었고, 성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와의 결혼을 강요당하는 일이 버젓이 용인되며, 처녀성을 잃는 것이 그녀의 인생을 포기하는 것보다 더 비참할 수 있을 만큼 중요시되곤 했다.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도 그러한 가치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여성의 성이나 욕망은 감옥에 갇혀 나올 수 없는 죄수와 같이 숨겨지거나 죄악으로 여겨졌다.

'너희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 보려무나, 그러면 남자는 임신을 시키고는 멀리 달아나 버릴걸. 비참해지는 사람은 너뿐이란 말이야.'라는 여자들의 경고는 사실이기도 했다.

욕망을 해방시켜도 남자들이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었던 시대에 여자들은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에게라도 시집가지 않으면 평생 낙인이 찍혀 제대로 살 수도 없었던 것이다. 채리티가 20살, 어쩌면 30살은 자기보다 많은 로열과 결혼할 수밖에 없는 것은 비극이 아니라, 그렇게라도 살 수 있어서 다행인 상황인 게 당시의 현실이다.


성평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다행스럽게도 한국도 미국도 많은 변화를 일궈냈다. 오히려 오늘날은 역차별에 대한 분노가 젠더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면서 이 문제는 좀 더 복잡해지고 있다. 정치인이나 언론이 이를 차별/역차별로 단순하게 문제를 정리하면, 메시지는 간단하고 자극적이어서 대중에게 쉽게 전달된다. 그러나 현실은 소설과는 달리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구분할 수가 없다. 개인의 사건으로 보면 그것이 구분될 수 있을지 몰라도, 여성과 남성 중 어느 한쪽의 성이 명백하게 가해자이거나 피해자이기는 불가능하다.


여성은 출산과 양육으로 인해 노동시장에서 경력 단절을 겪는 반면, 남성은 여전히 생계 책임을 지라는 사회적 요구와 동시에 육아에도 적극 참여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이처럼 양쪽 모두 구조적 제약을 경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쉽게 “여성이 불리하다” 혹은 “남성이 역차별받는다”라는 식으로 단순화된다.


성폭력 문제 또한 이분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피해자의 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은 사실이지만, 오늘날에는 남성 피해자도 심심찮게 존재하며 사회적 낙인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동시에 일부 여성의 무고 사례는 피의자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고, 피해자 중심 접근과 피의자 인권 보장이 충돌하는 난제가 발생한다. 결국 사회는 성폭력 구조를 줄이는 것과 무고 방지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트랜스젠더의 권리와 스포츠 참가 문제 역시 단순 대립 구도로는 부족하다. 트랜스 여성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생물학적 차이로 인해 공정성이 무너진다는 주장이 맞서지만, 종목별 특성, 국제 규정, 실제 참가 비율 등을 고려하면 정답은 단순하지 않다. 특권을 누리고자 성전환을 악용하는 트랜스젠더가 있을 수도 있기에 권리 보장과 공정성, 제도 설계가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적 사안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쟁점화에서는 이런 복잡성이 너무 자주 단순화된다. 예컨대 여성가족부는 청소년·가족·성폭력 피해자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을 다루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성 전용 부처’처럼 프레이밍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부처의 실책이 여러 차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는 정책의 다면적 성격을 삭제하고, 유권자에게 자극적인 “여성 편향 대 남성 역차별” 구도로 제시된다. 이 과정에서 갈등은 해결되기보다 오히려 재생산된다.


채리티의 선택은 당시에는 생존을 위해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가장 나은 것이었다. 최고의 선택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중에서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선의 것을 고른 것이다. 성평등이 진전될수록 갈등은 단순화되기보다 복잡해질 수밖에 없지만, 그중에서 가능한 최선의 방안을 계속 찾아내며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다 보면 언젠가는 최고의 선택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갈등을 단순화하는 언어가 아니라, 복잡성을 감당하며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태도야말로 지금 우리가 가져야 할 용기다.




그녀는 휴가를 맞이한 것처럼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괜히 집으로 돌아가 뻔히 주머니 속에 집어넣은 걸 알면서도 열쇠를 찾는 척할 때 찾아오는 그런 마음이 되었다. 8


로열 부인이 사망한 후에 그녀를 기숙학교에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로열 씨는 그 이야기를 제안한 해쳐드 씨와 오랫동안 상담한 후, 그녀가 추천한 학교를 방문하기 위해 스타크필드로 향했다. 다음 날 그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돌아왔다. 채러티가 지금까지 본 중에 최악의 낯빛이었다. 22


예측할 수 없는 일들로 인해 이 젊은이들은 언젠가 이 작은 마을과 오래된 농장으로 영원히 돌아오게 될지도 모릅니다. 신사 여러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봐주세요. 우리 중 몇몇은 다른 곳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고향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곳에서 실패했다고 해서 그것이 이곳에서 실패할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곳보다 큰 곳에서 겪은 경험이 설사 실패로 돌아갔더라도, 우리는 노스도머를 더 큰 곳으로 만들기 위해 서로를 도와야 합니다. 설사 여러분의 의지에 반해서 돌아온다고 해도, 쓰라린 운명의 장난이나 신의 섭리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163


만약 그녀가 앞날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두 사람의 격차가 너무 깊고, 그 격차를 가로지른 그들이 가진 열정의 다리가 무지개처럼 실체가 없는 거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앞을 내다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정신이 없을 만큼 하루하루가 너무 풍요로웠다. 178


그녀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맞서 싸우는 것이 쓸데없다고 느껴졌다. 그녀는 지금까지 순응하는 법을 전혀 몰랐다. 오로지 깨뜨리고 찢고 파괴할 뿐이었다. 앨리와 있었던 장면을 떠올리면 스스로의 유치한 야만성이 부끄럽기만 했다. 그녀는 알 수 없는 힘에 자신이 너무 부당하게 대항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184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지식보다 지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