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의 숲을 넘어

콘택트 1, 2 - 칼 세이건

by 어제만난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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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존재는 어떤 생각을 할까? 외계인을 떠올리면 우리를 아득히 뛰어넘는 과학기술을 가진 존재가 먼저 떠오른다.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인이건, 지구인에게 우호적인 외계인이건, 최소한 과학 기술만큼은 인간의 것을 앞서있어야 하니까. 그러나 그들의 특징이라든지, 생활, 정서, 성격에 대해서 상상하는 건, 그보다는 훨씬 까다롭다.


생명체인 그들은 개체로 특징을 지닐까, 아니면 집단정신을 이루고 있을까? 자기 별에서의 생활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우주여행의 자본이나 기술은 어떤 방식으로 모았을까? 그들도 동족끼리 다투거나 죽일까? 영토를 두고 전쟁을 할까? 소설은 그 어떤 것이든 만들어 낼 수 있지만, 개연성의 범위를 넘어설 수는 없다. 따라서 있음 직한 이야기를 쓰려고 고민을 하면 할수록 이 작업은 본 적 없는 색깔을 보려고 애쓰거나, 냄새로 수백 명의 친척들을 구분해 내는 일에 가까워진다.



1980년대, 인류는 냉전의 긴장 속에서 핵전쟁의 그림자 아래 살아가고 있었다. 이 시기에 칼 세이건은 소설 『콘택트』를 통해 외계 문명과의 조우라는 거대한 상상력을 펼쳤다. 그러나 이 소설이 진정으로 겨냥한 것은 외계인이 아니라, 우리 자신, 즉 인류 문명의 방향성이다.


소설 후반, 외계 문명은 엘리에게 말한다.

“공격적인 문명은 거의 대부분 자멸했다. 그것이 그들의 본성이니 달리 어쩔 도리가 없다.”


이 구절은 칼 세이건이 생물학과 천문학, 문명사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품고 있던 확신이 반영된 철학일 것이다. 문명이 고도화될수록 자기 억제와 평화를 선택하지 않으면, 결국 그 문명은 스스로를 파괴한다.

이는 류츠신의 『삼체』 시리즈와 상반된 생각이다. 삼체의 중심 사상인 "암흑의 숲 가설"은 우주를 극단적 불신의 공간으로 규정하면서 누구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 살아남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계관은 철저히 생존 본능에 충실한 문명 간의 정글을 상상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토록 공격적인 생존 전략이 문명의 고도화와 양립할 수 있는가?

만약 모든 문명이 암흑의 숲 전략을 따른다면, 그 문명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내부의 자기 파괴적 압력으로 먼저 무너질 가능성이 더 크다.



기술과 지능이 높아질수록, 그것을 통제하고 공존의 윤리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진보는 자멸로 이어진다. 우주 어딘가에서 오래 살아남은 문명이 있다면, 적어도 파괴와 정복욕에 휩싸인 종족의 것은 아닐 것이다.


『콘택트』에서 외계 문명은 단 5명을 불러, 증거도 남기지 않고, 진실만을 체험하게 한 뒤 떠난다. 그들의 방식은 문명의 성숙을 시험하는 가장 평화로운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인류는 외계탐사 계획이 실패했다고 공표했고 대다수 인류의 일상은 바뀐 것이 없게 되었다. 무려 외계인을 만났음에도 말이다.

간섭을 최소화하려 했다지만, 멸망을 향해 진화 중인 인류를 위해 도움을 주기로 한 것 치고는 너무 영향력이 미미한 결말이다. 그렇게 지혜로운 외계인들이 멸망을 앞둔 미개한 지구의 5명의 체험자들이 미래를 바꿀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다고 말하는 건 설정 붕괴다. 작가의 상상력의 한계로 그렇게 결론을 냈다고 생각된다.


낭만적 SF 소설로 읽기는 했으나 80년대 소설 특유의 전개 과정이나 문체가 다소 답답하고 지루했고, 외계인을 만났다고 주장하며 책을 펴내거나 방송을 하는 미국인만 수 백 명은 족히 넘을 것 같은데, 주인공 일행들이 그런 인간들과 같은 취급을 당할 현실의 장면이 상상이 돼서 엔딩에서 너무 김 빠져 버림. 칼 세이건은 본 적 없는 색깔을 그리는 능력은 없는 걸로.






종교학자는 종교가 하늘에서 내려온 순수한 정신이라고 주장하는 즐거운 역할을 맡는다. 역사학자의 과제는 좀 더 우울하다. 그는 종교가 땅에 내려와 나약하고 열등한 생명체들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부패와 오류에 물들었음을 발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 에드워드 기번, 로마 제국 흥망사



회의주의란 지적인 사람의 순결이다.


회의주의를 너무 빨리 포기하거나 먼저 도착한 사람에게 내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조지 산타야나, 회의주의와 동물적 신념




'만약 나치가 전 세계를 정복하고 우주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면 거기 개입하지 않으실 건가요?'


'그런 일이 얼마나 드물게 일어나는지 알면 놀랄 게다. 공격적인 문명은 결국 자멸의 길을 걷는 법이다. 거의 대부분이 그렇단다. 그것이 그들의 본성이니 달리 어쩔 도리가 없다. 이런 경우 우리는 그냥 그 존재를 내버려 두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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