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껴안는 문장들,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 정미경

by 어제만난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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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생에서 조차 겉도는 상처받은 인물들이 여러 소설에서 겹쳐 등장한다. 그들의 아픔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면서도 독자에게만큼은 내리 꽂히게 만드는 글의 섬세하고 날카로움이 너무 좋았다. 작가의 영혼이란 건 정말 타고나는 게 아닐까. 나는 평생을 고민해도 이런 문장들을 만들어 낼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어떤 구절들은 나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며 나를 일깨웠고, 어떤 구절들은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다른 세계의 아픔을 보여주었는데, 신기하게도 방금 전까지 몰랐던 그 세계의 아픔이 몇 줄의 글만으로 내 영혼에 스미듯 배어들었다. 그러나 그 슬픔 속에는 어떤 따스함이 한 겹 감싸인 채 독자를 살포시 여며준다.


한강의 소설이 노벨 문학상을 탔을 때, 누군가 정미경이 좀 더 오래 살았고 그녀의 문체를 번역할 수 있는 뛰어난 번역가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했다.

책을 덮으며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한강만큼 처절하지 않지만, 단편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깊이가 느껴지는 소설이 이 한 권에도 여럿 있었다. 보통은 줄거리 스포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편이지만,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만 알 수 있기에 발췌만 남긴다.


아쉽게도 이 책은 현재 절판이라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다. (심지어 도서관에도 잘 없다.)

내가 구입한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는 정말로 발칸의 장미 그 작품 한 편만 수록되어 있었다. 사실 나는 무화과나무 아래를 포함해서 다른 단편들이 더 마음에 들었는데......








[무화과나무 아래.]




사람의 눈빛엔 영혼의 빛깔이 내비치는가.

누가 알랴.

손에 총을 든 자의 눈엔 슬픔이 없을 줄 알았다.


일회성의 생에 대한 지독한 탐욕으로 가득 찬 얼굴들.


가공하지 않은 현실을 필름에 담는 일이 내 천직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리얼리즘을 내 몸도 영혼도 견뎌내지 못했다.



발병한 이후에, 개인의 삶의 지도를 그려가는 것은 영혼이라는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몸이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한 인간의 현실적 삶의 주도권을 쥔 것은 형이하학일 뿐이라는 것을. - 30


제 삶은 안정적이길 원하면서 타인의 삶은 충격적이길 바라는 속물들의 수요에 대한 공급이니까. 전쟁을 원하는 자들은 저 땅에서 너무 먼 곳에 있고 전쟁을 원하지 않은 자들만이 부서져가는 풍경, 내가 찍은 건 그것이다. -45



[무언가]


떨쳐내지 못할 헛것들을 붙들고 산다는 점에선 k와 내가 다를 게 없으니 내 인생만 유난히 팍팍한 것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보는 것도 이 순간이다.


엄마, 사는 게 왜 이리 지루해? 조잡한 픽션이 없이는 한순간도 견딜 수 없으니.



[모래폭풍]


그 문자 메시지를 열어볼 때면, 내가 현상액 속에 담겨 천천히, 조금씩 선명하게 드러나는 필름처럼 느껴졌다. 그가 날 알기 전에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희미하게 겨우 사람들 틈을 흐르는 납작한 그림자 같았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



동호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고 다음 해 딸을 낳았을 땐 내 행복의 밑그림이 완성된 줄 알았다. 그 위에 오색 크레파스를 칠하고 금박을 올려 벽에 걸어놓을 일만 남은 줄 알았다.



딴 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금실로 짠 카펫을 깔아주었는데 왜?


평생 등에서 내려놓을 수 없는, 돌덩이로 가득한 배낭 같은 저 자식을 어찌해야 하나.




미애


모성애는 환상이 필요 없는 사랑이다. 나는 정재에게 엄마였을까. 환상이 없기에 모성애는 영원할 수 있다. 나는, 남편은, 우리의 환상을 여린 그 잔등에 얹고 또 얹었다. 내가 상대방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를 모니터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다르게 살 수 있을까.


다른 가족들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사랑이라 착각하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네게 걸었던 희망이 좌절되면서 실망하고 공격하고 상처를 주며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정화


"왜 나만 그래? 나만큼만 하라고 그래. 왜 엄마아빠는 물어보지도 않고 우릴 만들어놓고 끔찍하게 사랑을 쏟아붓다가는 어느 날 갑자기 아득한 꼭대기 위로 우릴 밀어대는 거야? 왜? 왜?"


"나라도 때려. 오빤, 시간도 중력도 없는 곳으로 달아나버렸는데, 나라도 때려야지, 엄마. 난, 어떻게든 여기서 견뎌보려고 이러는 거야. 달아나기보다 견디는 게 어려워...... 우리 어릴 때 엄마아빠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사랑했잖아. 그래놓고는, 그렇게 길들여놓고는, 어느 날 갑자기 탁월하고 맹목적인 어떤 괴물로 변신하기를 기대하기 시작했어. 오빠는, 나는, 그 사랑이 끔찍하다, 엄마."




[검은 숲에서]




몸 안에 생긴 종양은 환자의 생을 위협하지만 피부 겉에 덕지덕지 돋아난 종양은 그 주인을 건강한 사회인들로부터 소외시킨다. 영화가 어찌해 줄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치유할 수 없는 불행이라는 바이러스를 분무하는 전염병환자로 보이기는 싫었다.


진짜 고통과 슬픔은 아직 여자를 점령하지 못했다. 삶이 자신을 얼마나 조롱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 여자는 소리 내어 울지도, 한마디의 하소연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버림받는다는 건 그가 던진 칼에 심장을 찔려 죽는 것과 같다. 어쩌면 진짜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그건, 피를 흘리면서도 웃고 또 무언가를 먹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소리를 내어 울 때, 사람은 슬픔, 그것을 위해 우는 것이 아니다. 내 귀에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우는 것이다. 말로는 할 수 없는 위로가 있다. 자신을 달랠 수 있는 건 자신 뿐일 때, 그럴 때 제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며 오래오래 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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