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이지 않은 사랑의 보편적 이야기

대도시의 사랑법 - 박상영

by 어제만난사람


가독성이 좋아서 단숨에 읽혔다.

두세 시간 만에 완독 할 수 있을 만큼 문장은 매끄럽고 군더더기가 없다.


작가의 문체는 여성적이고도 남성적인 양면성이 느껴졌고, 동성애자들의 삶과 사랑이 ‘웃프게’ 그려지면서도 결코 가볍게 소비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아, 그래도 살만해.”라고 말하며 버텨내는 낙천주의의 질감이 글 속에 깔려 있었는데, 나에게는 그런 태도가 낯설어서인지 웃으면서도 자꾸 가슴이 아팠다.


주인공인 나는 굳세고 씩씩하나 외롭다. 누군가에게 특별히 기대는 것이 아니나, 벽에라도 털어놓고 싶을 만큼 고독한 상태다. 동성애자가 아닌 이성애자라도 편견 없이 그의 입장이 되어 보면 그 외로움이 더 사무칠 것이라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담배를 피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사람들을 볼 때면, '비흡연자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가? 왜 그게 이유가 되지? 그냥 중독자가 되었다고 말하면 담배에 진 것 같은 건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외로워서 연인이건 의지할 수 있는 친구를 늘 찾는 사람을 볼 때면 '둘이 된다고 해소가 되는 게 아니잖아. 잠시 착각하고 잊는 거지. 누구나 자기라는 감옥에서 평생 독방신세라는 걸 이별할 때마다 깨달을 텐데도 계속 함께일 사람을 찾는 걸 보면 그것도 중독 같은 면이 있나 보네.' 하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은 사랑에 연연하는 여자애 같은 면이 있는 반면, 충분히 냉정한 면모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소설에서 사랑은 단순히 아름다운 것으로 포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이라는 단어가 진부하게 쓰이는 것에 대한 반발,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이 던져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동성애라는 구체적 경험 속에서만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확장된다.


내가 읽은 『대도시의 사랑법』은 성소수자의 삶을 그린 특수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외로움과 열망, 그리고 사랑에 대한 질문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가볍게 읽히지만 괜찮은 책이었다.


* 스피노자는 가난해서 안정적인 일을 했다기보다는 자기 철학대로 살기 위해 일상의 업무를 놓지 않았지 않을까 싶은데. 그가 경제적으로 넉넉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교수 자리를 제안한 후원도 거절했고, 친교도 제한적이었고, 유명에 대해 연연하지 않았거든. 그는 신념대로 산 셈이라고.





그가 나에게 (어떤 의미에서든)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단지 벽에 대고서라도 무슨 얘기든 털어놓고 싶을 만큼 외로운 사람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그런 외로운 마음의 온도를, 냄새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때의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스피노자는 폐병에 걸려서 죽었어요. 가난해서, 렌즈 깎는 일을 하다 폐에 유리가루가 들어가서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은 저도 그래서 안정적인 일을 하는 거예요. 예술이, 신념이 인간을 망치는 걸 너무 많이 봐왔으니까.


왜 나이 든 꼰대들은 자기보다 어린 사람만 만나면 자기가 아는 사람의 이름을 백 명쯤 불러대고, 자신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어젠다를 천 개쯤 대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는 걸까. 알아서 뭐 하게. 알면 뭐가 달라져. 비슷한 것을 알고 있고, 비슷한 생각을 하면 나이 차이가 줄어들기라도 해? 다른 생각을 하면 어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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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되었을 때 허리와 목이 안 좋아져 아직까지도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자세히 들어보니 네 번 도합 72시간 정도 구치소에 머물렀는데, 고문을 당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장판이 깔린 옥사에서 누워 있다 나온 거였다. 그것만으로 만성질환을 얻었다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은가. 그저 좋지 않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어 생긴 병이 아닐까 싶기는 했지만 그 생각을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의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 요즘도 누군가 자꾸만 저를 감시하는 거 같아서 불안해요.


형이 과거에 학생회장이었는지, 뭐 얼마나 대단한 운동을 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지금은 그냥 하루 종일 방구석에 처박혀서 저자 욕이나 하며 맞춤법을 고치는 별 볼 일 없는 남자잖아요.


나는 그녀의 집요한 필사가 구도자의 고행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본의 아니게 일어난 불행에 대해 울고불고 난리를 치고 머리를 쥐어뜯고 소리를 지르는 대신 모나미 볼펜으로 공책에 꾹꾹 성경을 눌러 쓰는 방식을 택한 것이겠지. 마취조차 거부했던 엄마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삶의 방편이었기에 그녀의 필사는 일종의 호흡처럼 느껴졌다.

들숨에 한 글자, 날숨에 한 글자.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지난 시간 동안 앓았던 열망과 닮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상에 대한 열망? 대상에 사로잡혀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에 대한 열망?

그래, 한없이 나 자신에 대한 열망.

예수를 사랑하고 누구보다 열렬히 삶에 투신하는 자신에 대한 열망. 어쩌면 한때 내가 그를 향해 가졌던 마음, 그 사로잡힘, 단 한순간도 벗어날 수 없었던 그 에너지도 종교에 가까운 것일지 모르겠다. 새까만 영역에 온몸을 던져버리는 종류의 사랑. 그것을 수십 년간 반복할 수도 있는 것인가. 그것은 어떤 형태의 삶인가.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 것인가. 158


한동안은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말을 하는 게 싫었다. 특히 동성애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들은 그게 누구건 무슨 내용이건 이유 없이 패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다 똑같은 사랑이다, 아름다운 사랑이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뿐이다......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가. 169


나는 지평선 너머로 뜨기 시작한 해를 보며, 막 시작한 아침과 아주 늦은 밤이 꼭 맞닿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때때로 그는 내게 있어서 사랑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내게 규호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규호의 실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사랑의 존재와 실체에 대해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껏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 몇 번이고 나에게 있어서 규호가, 우리의 관계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둘만의 특별한 어떤 것이었다고, 그러니까 순도 백 퍼센트의 진짜라고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 내 소설 속 가상의 규호는 몇 번이고 죽고 다치며 온전한 사랑의 방식으로 남아 있지만 현실의 규호는 숨을 쉬며 자꾸만 자신의 삶을 걸어 나간다. 그 간극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는 모든 것들을 견디기가 힘들어진다. (...) 공허하고 의미 없는 낱말들이 다 흩어져 오직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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