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두 얼굴 : 죽음을 버리면 삶도 버리게 된다.

머나먼 바닷가 - 어슐러 K. 르귄

by 어제만난사람




《어스시》 3권 『머나먼 바닷가』는 중년이 된 게드가 왕자 아렌과 함께 떠나는 여정이다. 이 모험은 1,2권과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 욕망과 자아, 존재와 행위 사이의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아름답고 정직한, 고요한 물과 같은 강건한 내면을 지닌 왕자 아렌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이상 징후를 로크의 대현자에게 알리기 위해 방문한다. 게드는 이것이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직감하고 바다를 건너 그 원인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그는 이 여정에 아렌을 동행시키는데, 그가 어둠의 목소리에 유혹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렌의 내면에 잠재된 왕의 자질을 믿는다. 이전까지의 게드가 언제나 홀로 자신의 그림자와 싸워야 했던 것과 달리, 이 여정은 믿음과 전수, 그리고 동행의 의미를 짙게 띤다.


그들이 마주하는 세계는, 죽음을 두려워한 이들이 결국 삶마저도 포기하고야 마든 음울한 풍경으로 가득하다. 노래가 사라지고, 마법을 잃고, 건강한 생기를 잃고, 사람들은 눈앞의 탐욕만을 쫒는다. 르 귄은 죽음을 회피하려는 욕망이 결국 삶 자체를 잃어버리는 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죽음이 있기에 삶은 더욱 선명해진다.


게드와 아렌이 마주한 최종 악인 속대는 죽음을 부정하고 생을 연장하려 한 자다. 그는 이미 사람이 아니라, 균형을 무너뜨리는 악 그 자체로 변모한 존재이며, 게드는 그와 싸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마법을 소진한다.


이 결말은 통상적인 판타지의 승리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용을 타고 돌아온 게드는 승리했지만, 모든 힘을 잃었다. 그는 마법을 버렸고, 이제 존재만으로도 위대한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이러한 결말은 삶과 행위 사이의 균형, 자아와 역할 사이의 균형과 세대의 자연스러운 교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르 귄은 게드의 입을 빌려 말한다.

“과거를 부정하는 것은 미래를 부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운명을 만들지 못한다. 받아들이든가 거부할 뿐이지.”


게드는 속대를 몰아냈지만, 그 대가는 크다. 죽음과 삶 사이의 문을 닫기 위해 자기 자신을 거의 다 바쳐야 했다. 그 선택의 고요함은 아렌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소년은 결국 대륙 전체의 진짜 왕이 된다. 게드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이제 세계는 다음 세대에게 맡겨지고, 그는 물러난다.






"악(惡)이란 무엇일까요."

"우리 인간들이 짜 내는 거미줄." - 22


"과거를 부정하는 것은 미래를 부정하는 거야. 인간은 자기 운명을 만들지 못해. 받아들이든가 거부할 뿐이지." -48



"아렌,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 섣부르게 택하지 말도록 해라. 어렸을 때 나는 존재하는 삶과 행위하는 삶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단다. 그러곤 송어가 파리를 물듯 덥석 행위의 삶을 택했지. 그러나 사람이 한 일 하나하나, 그 한 동작 한 동작이 그 사람을 그 행위에 묶고 그로 인해 빚어진 결과에 묶어 버린다. 그리하여 계속 또 행동하도록 만드는 거다. 그러면 지금 같은, 행동과 행동 사이의 빈틈에 다다르기란 정말로 어려워지지. 행동을 멈추고 그저 존재할 시간 자신이 대체 누굴까를 궁금해할 기회를 가질 수 없는 거다." -58



"삶의 욕망이라고요? 하지만 살고 싶어 하는 건 잘못이 아니잖아요?"


"잘못이 아니지. 하지만 우리가 삶을 지배하는 힘을 갈망하면, 끝없는 부와 철석같은 안전과 죽지 않는 생명 같은 것을 얻으려 한다면 그때는 소망이 탐욕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지식이 그러한 탐욕과 합쳐지면 그땐 악이 생겨나지."



"하나의 행위라는 것이 ,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돌멩이 하나를 집어서 던지면 맞거나 빗나가거나 하고 그걸로 끝이 나는 그런 게 아니란 걸 말이다. 돌을 들어 올리면 땅은 가벼워진다. 돌을 쥔 손은 더 무거워지지. 모든 행위마다에 전체의 균형이 달려 있어. 우리는 균형을 지키는 법을 배워야만 해. 지성을 갖고 있기에 우리는 무지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선택을 할 수 있는 이상 책임감 없이 행동해선 안돼."


"다시 우리 모두에게 군림할 왕이 있게 된다면, 난 그에게 이렇게 말할 거다. '왕이시여, 하지 마십시오. 그 일이 정의롭거나 찬양받을 만하거나 고귀한 일이기 때문이라면, 하지 마십시오.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라면, 하지 마십시오. 오직 당신이 해야 하는 일만을 하고, 다른 방법으로는 할 수 없는 일만을 하십시오.'" -108~109




"죽은 이들의 조언은 산 자들에게 이득이 못 되지"


"그렇다면, 그 일은 악한 건가요?"


"악이라기보다 오해라고 불러야겠지, 삶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죽음과 삶은 한 가지야. 이 내 손의 양면, 손바닥과 손등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손바닥과 손등은 같지 않지. 그 둘은 서로 떨어질 수 없고, 섞일 수도 없다." --119


동정 없는 사랑은 단련되지 않은 사랑이고, 따라서 온전한 사랑이 아니며, 오래가지 못한다. - 137


"소플리는 죽음을 찾지 않았다. 그는 죽음에서, 그리고 삶에서 벗어날 길을 찾았지. 그는 안전을 추구했어. 공포를 끝내 버리려고 했지. 죽음의 공포를 말이다." 193


"불멸하는 건 없단다. 하지만 오직 우리에게만 우리가 틀림없이 죽으리라는 것을 아는 지식이 주어졌다. 그건 굉장한 선물이지. 자아라는 선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반드시 잃게 될 줄 아는 것만을, 우리가 기꺼이 잃어버릴 것만을 가지니까...... 자아는 변하고 사라지지. 바다의 물결 하나인 셈이야. 하나의 물결을 보존하려고 온 바다를 잔잔하게 하고 조류를 얼어붙게 만들겠느냐? 너 자신을 보존하자고? " 194


삶을 부정함으로써 죽음을 부정하여 영원히 살고자 하는 마음


"우리들 마음속에 있다. 배반자인 자아지. '난 살고 싶어, 내가 살 수만 있다면 세 상따윈 불타 버리라지!' 하고 외치는 자아란다. 사과에 든 벌레처럼 어둠 속에 숨어 있지.?-214


불멸의 욕망을 달성하면 "그릇된 왕이 다스리고, 인간의 기예들은 잊히고, 노래군들은 목소리를 잃고, 눈은 먼다. 바로 이 그림자, 이 전염병, 위가 낫게 하려 하는 이 염증이 되는 거다. 죽음이 없는 삶이란 무엇이겠느냐? 변화 없는 삶, 영영 지속되는, 끝없는 삶이란? 그게 죽음이 아니고 뭐겠느냐, 환생 없는 죽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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