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퇴사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알려준 것들
영하 10도가 넘는 추위가 2주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신가요?
아쉽게도 제 위장은 퇴사 스트레스와 겹친 강추위로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백수가 되면 매일같이 비싼 원두를 맘껏 내려 마시겠다는 포부는 고이 접어두고 집에서는 디카페인 커피도 삼가고 있어요.
파나마 게이샤도 브루어스 컵 시연용 블렌드도 유일하게 아이스로 시켜 먹던 전국구 얼죽아파의 자긍심도 잠시 접어두었습니다. 위산과다 X 강추위 재난 콜라보는 기세로 이겨낼 수가 없더라고요.
☕그리고 이런 재난 상황이 닥쳐오고서야 다시금 소중함을 깨달은 커피가 있습니다. 바로 양손에 폭 감싸이는 머그잔에 담긴 따뜻한 아메리카노예요.
요즈음 집에선 커피를 마시지 않지만 밖에서 햇빛을 쬐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날에는 카페에서 산미가 없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킵니다. 브루잉 커피를 내리는 시간의 1/5 정도면 뚝딱 나오기 때문에 프레그런스 타임을 기대할 수도 없고 아로마는 구수함 그 자체이죠ㅎㅎ
때문에 센서리 잔이 있는 카페여도 아메리카노는 보통 머그컵에 내어줍니다. 입에 익지도 않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킨 덕분에 몇 년 만에 머그컵에 커피를 받은 것이죠.
지난주엔 로우키에서 “클라시코 블렌드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요”라고 주문했다가 급하게 “아니요, 따뜻한 아메리카노예요.”라고 정정했지 뭐예요…
2~3년 전 세상에 취미가 스페셜티 커피밖에 없던 시절엔 왜 이렇게 스페셜티 대중화가 느릴까 고민하곤 했어요.
저가 커피 시장이 축소되면 스페셜티가 더 빠르게 대중화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 적도 있는데 머리가 식은 지금 생각해 보니 산미 없는 아아 시장과 제가 좋아하는 스페셜티 커피 시장은 전혀 다른 마켓이었어요.
특히 2025년에는 커피 사피엔스나 바나프레소 같은 테이크아웃 커피 브랜드에서도 게이샤 G1 그레이드나 산미가 있는 블렌드를 리즈너블 한 가격에 판매하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스페셜티의 대중화는 저가 브랜드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체화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역시 크게 번지는 물결은 그 위에 올라타야지 물결을 가를 수는 없더라고요.
결과적으로 이번 달은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커피는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고통’이란 단어에 모든 사람의 아픔을 담아낼 수 없듯이 ‘커피’라는 음료도 모두에게 다른 스펙트럼의 위로가 되겠지요. 제가 ‘퇴사’라는 두 음절의 결과에 담긴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 산미 없는 아메리카노에 위안을 얻게 된 것처럼요.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고통도 추위도 견디다 보면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지금보다는 따뜻한 2월이 오면 저는 또다시 “따뜻한 아메리카노”라는 메뉴를 입에 담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때도 따뜻한 머그잔에 담긴 커피가 나를 위로해 줬다는 기억은 남겠지요.
다시 한번 인사드립니다. 여러분 안녕하신지요?
조금 춥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한랭전선이 결국은 지나가듯이 곧 지나갈 테니 얼음이 녹는 날씨에 다시 만나요!
2026년 1월의 은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