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호처럼 운동해볼까

다이나믹한 듯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삶의 가치

by 오이야멈춰

오랜만에 머리를 잘랐다.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를 단골 미용실 원장님은 노련하게 다듬어주었다.

나처럼 짧은 머리를 자를 땐 머리를 하나의 원으로 보고 결을 맞춰 동그랗게 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커트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게 만든 건 나였다.

지난 달 급한 마음에 15년 만에 처음으로 낯선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다가 포뇨가 되어 도와달라며 나타났으니까.

그만큼 바쁘고 고단한 날을 보냈다며 멋쩍게 웃어보였지만, 두 달 가까이 방치된 내 머리는 정말 엉망이었다.

원장님 손에 머리를 맡기니 몇 주째 낫지 않는 감기에 시달리다 오래된 주치의를 찾아간 사람처럼 '이제 좋아질 일만 남았다'는 희망이 움텄다.

저 가위가 내 스타일을 돌려줄거야.


요즘 샤워할 때마다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진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어린 아이 머리 하나 정도 될만큼은 빠진다.

15년 동안 매달 내 머리를 잘라온 원장님이 내 탈모를 못 알아볼 리 없었고,

나도 예전처럼 그냥 서글하게 웃고만 넘어갈 정도가 아니라는 생각을 요근래 진지하게 하고 있었던 터라

25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탈모 샴푸와 에센스를 샀다.

"내가 나에게 이 정도도 못 해줘?"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나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맛있는 것도 먹이고 싶고, 좋은 침대에 깨끗하고 좋은 냄새 나는 침대에서 재워주고 싶고, 좋아하는 소설을 원없이 읽게 해주고 싶고, 몇 년 간 손에서 놓은 테니스도 다시 치게 해주고 싶고, 아침마다 달리고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고 싶고. 그런 것들을 계속 떠올렸다.


소파에 앉아서 리모콘을 돌리는데 불꽃남자 민호가 나왔다.

불꽃같은 눈빛을 하고 운동 선수와 같은 삶으로 하루에 운동만 세 탕을 뛰는 모습을 보는데

내 가슴이 뛰었다.

한 번쯤 저런 시간을 보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운동선수처럼 내 육체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면서 현재에만 집중하는 삶.

달리기, 수영, 사이클, 웨이트

종목을 오가니 다이나믹한 듯 보이지만

매일매일 규칙적이고 일정한 스케줄과 강도로 움직이는 안정적인 삶.

어떤 서스펜스나 사건 사고 없이 건강한 육체, 단순한 마음과 사고로 목표점을 통과해냄으로써 느끼는 보람과 성취감.


냉난방되는 안락한 사무실에서 책상에 앉아 일하는데도

숨이 가빠지거나 가슴과 머리가 동시에 벅차오를 때가 있는데.

가끔은 이럴 거면 정말로 몸을 써서 땀 흘리고 체력도 기르면서 숨차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

그럴 때 불꽃같은 눈빛을 하고서

모든 걸 팍! 하고 박차고 나온 다음에

운동을 와다다다 하면서 땀흘리고, 샤워하고, 밥 먹고, 한 숨 자고, 운동하고, 땀흘리고, 샤워하고, 밥 먹고, 티비보고 잠드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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