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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희 Jan 25. 2021

3화. 사람이 욕심부리다 사라졌네

내 어린 시절이 그리웠나 보다.

눈(雪)이 춤을 추며 내려온다.

몇 년 만에 별 꽃처럼 흩날리는 눈(雪)이니 귀한 몸 되었다.

덩달아 나이 잊은 호들갑은 흥을 돋웠다.

얼쑤 '우와!~ 눈(雪)이다' 추임새를 넣는다.

눈(雪)이 답하느라

발 붙일 땅으로 소리 없이 내려앉는다.


누구를 만나러 왔을까?

무엇을 찾으러 왔을까?

내 딴에 이유를 달아본다.

아침부터 별 다른 일 없이 로봇처럼 하루를 소화내고 지루하던 차 '옳다구나' 반가움에

발을 멈추어 서서는 눈송이를 따라 땅으로 내려앉는 것을 지켜본다.


눈(雪)은 땅으로 앉자마자 어디로 바삐 갔는지 보이지 않아, 나는 어리둥절하다.

찾느니, 아쉬움 두고 바로 눈(眼)을 들어 마주친 눈송이 고개가 방아 찧도록 부지런 떨어도 귀엽기만 하다.

반갑다. 신난다. 읊조리는 응원가에 하얀 세상으로 대가를 치른다.

그 덕에 내 눈(眼)은 회색빛 보도블록을 눈(雪)으로 뒤덮이는 내내 따라 내려앉았다.


얼마나 그랬을까.


길 한가운데 서서 눈(雪) 따라 고개 방아 찧는 내 모습이 알아차려지자 피식 웃는다. 

지나는 누군가 보고 정신 이상한 사람이라 두지 않으려 발걸음을 떼었다. 한 걸음씩 옮기면서도 걸음 눈(眼) 높이에 눈(雪)을 땅으로 내려 보내며, 내 마음에 묵은 때 쓱쓱 쓸어내렸는 모양이다.

환한 거울이 나타나 물끄러미 바라보다 따라 내려가니 어릴 적 뛰어놀았던 모습이 나를 불러들인다.


곱슬머리 여자 아이가 보인다. 양갈래로 묶어 밤송이머리 딸랑 거리는 나다. 장갑도 안 낀 맨 손으로 눈(雪)을 한 움큼 쥐어 뭉쳐본다. 크게 만들려 오른손으로 눈(雪)을 집어 붙여본다. 손을 호호 불며 바닥에 놓고 오른발로 밀어 굴려본다. 뭉쳐지지 않고 부서지니 뭐가 생각 난 듯 입이 귀에 닿아 몸을 휙 돌려 재빠르게 집안으로 들어간다. 연탄재 한 개 들고 나오는 뒤를 남동생 2명이 따라 나온다. 가져온 연탄재를 눈(雪) 위로 떼굴 떼구루루 굴리니 연탄재는 어디 가고 육각의 눈덩이 되었다. 굴리는 게 신이 났는지 요리조리 자꾸 굴린다. 다리 쪼그리고 영차영차 굴린다. 어느새 내 무릎 높이보다 커져 힘이 부치는 모양이다. 멈춘다. 남동생들은 내 뒤를 따르며 나도 해보자 한다. 동생과 함께 굴린다. 친구도 나타나 굴린다. 허리춤에 온 큰 눈덩이에 깔깔대고 웃는다.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어 눈을 비비니 감쪽 같이 사라졌다. 눈을 꿈쩍꿈쩍하여봐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에 추억을 불러들였다. 내가 자란 초등학교 때는 날씨가 영하 10도 전후여서 장갑을 끼고도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발이 꽁꽁 얼어 동동 굴렸다. 눈(雪)은 녹지도 않았는데 또 오고, 발목 위로 눈(雪)이 쌓이고, 장화 신듯 눈(雪)을 쓰윽 밟아 걸었다. 한 번씩 내릴 때마다 눈(雪)은 내가 보는 세상 모두를 소복이 하얀 유리가루를 뿌려 놓아 별처럼 반짝거려 눈(眼)이 부셨다. 외딴집 주변 밭은 한 겨울에는 농사를 쉬고 있어 넓은 눈(雪) 밭이 되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때 발자국을 내는 것을 좋아했다. 저녁에 내리는 눈(雪)을 보고 잔 날은 발자국을 먼저 내고 싶어 자다 깨다 하였다. 놀라 후다닥 일어나면 아침이었다. 눈(雪) 덕에 밖은 환하여 튀어나가 내 발자국을 내고 나면 기분이 하늘을 업고 날았다. 뒤돌아보며 내 발 크기가 이만하구나 스스로 대견해하며 좋아했다. 엄마 아빠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넣어보고 우와 엄청 크다 했다. 애개개 내 발이 작아 보였다. 밥 많이 먹고 얼른 어른 되고 싶었다.


한 겨울은 자고 일어나면 눈(雪)도 왔지만, 슬레이트 지붕 처마 밑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고드름 칼싸움은 단단할 것 같은 것이 힘 없이 뚝 끊어져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다. 제대로 부딪치면 쨍그렁 소리로 기분이 맑아지게 하는 청량제가 되었다. 가장 굵고 긴 고드름을  차지해야 유리했다. 고드름이 언 땅에 부딪치면 속이 시원해졌다. 박살이 나는 것을 보고 싶어 고드름 때리기를 했다(이런 놀이를 통해 아동기의 공격성이 분출되는 촉매자 역할을 한 것 아닌가 싶다).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이 없어질 때까지 막대기로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달리며 쳐내면 이를 보고 있던  동생들은 폴짝폴짝 뛰어 박수도 치고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키가 닿지 않은 동생을 안아 올려 깨뜨려 보게 하면 힘이 약해 음계가 되어 맑은 음을 내니 자꾸 두드리며 신나 했다.


얇거나 작은 고드름은 눈(雪) 위가 순식간에 나만의 공책이 되는 것을 협조했다. 끝이 뾰족한 고드름으로 눈(雪) 길을 낸 글씨는 미로가 되어 이상한 나라를 데려가 마음이 활짝 열리니 신기했다.  동그랗게 원을 그려 눈, 코, 입 얼굴을 그리며 누가 누가 잘 그리나 했다. 눈사람 만들어 머리에 뿔로 꽂아 주거나 귀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눈 사람은 얼음 뿔을 달고 꽁꽁 언 채로 며칠을 그 자리에 있었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나의 수호신으로 있으며 말동무가 되기도 했다. 눈(雪)이 또 내리면 녹아내려 찌그러져 못난이 갈아치운다고 서 있던 눈사람을 발로 차고 삽과 부지깽이로 깨고 금방 내린 눈(雪)으로 다시 만들어 놓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놀이는 나를 키웠다.


어른이 되어서 눈(雪)이 내리는 것을 보면 어린아이로 나를 불러들였다. 어릴 적처럼 눈(雪) 밟는 사각사각 소리를 들으며 뒤돌아 발자국이 찍힌 것을 본다. 내 발자국에 가슴이 따뜻해져 지쳤던 하루의 마음이 녹아내려 기운이 생기었다. 내 아이들도 자라면 나처럼 지금을 불러들이겠지, 무엇을 불러들일까? 지금은 눈(雪)이 많이 내리지 않으니, 눈(雪)이 내리는 날이 아닌 다른 것들이겠지.  흔히 추억을 먹고사는 것이 사람이라 했던가? 그 누구라도 추억이 한 인간의 역사로 되는구나 싶다.


그 역사를 만드는 어릴 적 놀이가 내게는 힘이 들 때마다 떠 올라 마음을 데우는 명약이 되었다. 6,70 년대 놀이란 길가에 돌이 밥그릇이 되었고 풀이 반찬이 되었다. 밭 한 귀퉁이에서 퍼온 황토색 흙가루가 쌀이었다. 가끔은 붉은빛 기왓장 조각을 돌로 빻아 고춧가루라며 들풀로 김치를 담았다. 종이상자가 방바닥이 되고 바람이 벽이 된 방안. 차려진 밥상에 친구와 나는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었다. 동생들은 자식이 되어 소꿉놀이를 했다. 평소에 엄마 아빠가 '여보 다녀왔소', '시장하시죠 밥 차려 올게요'를 흉내 내며 놀았다. 아버지처럼 굵은 목소리를 내어 '밥 먹을 때는 조용히 해야 하는 거다' 정말 부모가 된 것처럼 의젓하게 말했다.


어릴 적 놀이는 자연 그 자체가 놀이터였다. 밭고랑을 뛰어다니고 농작물 뒤에 숨어 찾아다니는 숨바꼭질에 짚더미는 그 안에 숨기 딱 좋았다. 배고프면 집 주변에 있는 참외, 오이, 무서리(훔쳐 먹는 장난- 6,70 년대 아이들이 하는 것에 어른들은 모른 척해주셨다)를 해서 요기를 했다. 밭에서 뽑아 흙만 털어 옷에 쓱쓱 문질러 그 자리에서 먹었던 달고 향긋한 맛이 지금의 입맛을 부른다. 씻지 않고 먹어도 우린 멀쩡하게 건강했던 시절이 그립다.


6,70 년대 자연을 벗 삼아 놀았던 아이들은 지금 한국 사회를 이끄는 주역들이 되었다. 경제성장이라는 목표 하에 산업화를 끌어내다 보니 자연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인간의 욕심으로 자연을 벗 삼을 공간이 강은 덮어지고 산은 파헤쳐지고 나무는 뽑혀서 건물들이 들어섰다. 넓은 들판은 아파트로 시야가 잘리고 뿌연 매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자연의 에너지를 몸으로 받을 흙바닥은 시멘트 바닥으로 덮어 사라져 가고 있다.


아이들이 값없이 뛰어 놀, 놀이문화가 없다. 아니다 첨단적인 게임, 인위적인 문화가 탄생했다. 머리만 키우고 있는 셈이다. 지금의 아이들에게 인간이 편리를 추구하느라 자연의 이치를 몸으로 경험하는 기회는 사라졌다.


몸이 건강하면 마음이 건강하고 마음이 건강하면 몸이 건강하다. 순환에 이치이며 자연의 이치와 맞물린다.


- 자연과 더불어 살 때 면역력이 상승하며 사람의 인체는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자연치유력이 있다 -

(조병식 자연치유 의원 원장)

자연이 사라지는 것의 아쉬움을 우린 확실히 겪고 있다. 우리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바로 2020년부터 코로나 19로 우린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자고 호소하지만 실은 자발적 홀로 살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금의 바이러스 전쟁의 현실에서 내가 경험한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역사로 남았다. 지금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자연 그대로의 환경을 남기지 못한 장본인이 된 것이 매우 마음 아프다. 그리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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