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칼라 이민자의 삶
HR의 스크리닝 인터뷰부터 실무자 면접까지 몇 단계를 거치면, 마지막으로 on-site 인터뷰 일정이 잡힌다.
보통은 한 시간 정도 발표 자료를 준비해 발표한 뒤, 관련 팀들과 30분 간격으로 릴레이 면접이 이어진다.
미리 과제를 주고 발표시키는 경우도 있고, 점심 식사까지 포함해 오후 내내 일정이 계속되기도 한다.
처음엔 이 on-site 면접이 가장 부담스러웠다.
낯선 장소에 가서 하루 종일 시험을 치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한 번은 on-site 없이 오퍼를 준다는 말에 기다리던 면접을 취소하고
오퍼를 덜컥 받아버린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결정이 레드라잇이었다.
on-site까지 진행됐다는 건, 회사 측에서도 채용 의사가 꽤 높다는 뜻이다.
실제로 사람을 만나보고 나면 오퍼 수락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마지막 확인과 설득의 단계이기도 하다.
또, 비행 편 예약부터 호텔 숙박, 교통비 처리 방식까지
on-site 일정을 어떻게 안내하고 지원해 주는지는
그 회사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힌트가 되기도 한다.
이런 디테일을 통해 조직문화나 복지 기준, 대응 방식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서 'on-site 없이 오퍼 드릴게요'라는 말이
그럴싸해 보여도 주의가 필요한 신호일 수 있다.
정리해고 이후 구직 기간이 길어지며 불안감이 커질 무렵,
한 회사로부터 LinkedIn을 통해 연락이 왔다.
면접은 일주일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on-site 인터뷰 없이 바로 채용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on-site가 없는 이유는
_"어 차피 오실 건데, 회사 비용을 아끼면 좋지 않겠냐"_는 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설명이었지만,
그땐 아무것도 확정된 게 없던 시기였기에,
그럴듯한 말에 기대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결과는 금방 드러났다.
출근 첫날, 그 결정이 얼마나 경솔했는지 바로 알게 됐다.
오퍼에 사인하고 받은 계약서 안에는,
지금 돌이켜보면 분명 이상한 조항들이 있었다.
3년 미만 근무 시 이주비용 환수
퇴사 시, 내 자리를 대체할 인력을 구하는 데 드는 비용까지 청구 가능
처음엔 이상하다고 느껴 물어봤지만, 인사팀의 대답은
"그냥 있는 조항이에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였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고 싶다.
계약서에 적힌 문장은 그냥 쓰여 있는 게 아니다.
필요한 순간이 오면, 그 문장은 근거가 된다.
그리고, 정상적인 회사는 퇴사자에게 채용비용을 청구하지 않는다.
이후로 나는 어떤 면접이든,
on-site를 단순한 형식으로 보지 않게 됐다.
직접 회사를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는 이 기회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걸 말해주고 있다.
그 회사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어떤 기준을 갖고 있는지
on-site 하루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어리석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시기엔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더 멀고 험한 길을 돌아가야 했던 것 같다.
미국의 직장 문화가 자유롭고,
개인의 생각과 삶을 존중해 준다는 기대를 안고
한국에서 부푼 마음으로 건너오는 사회 초년생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좋은 직장도 많다.
하지만 여기도 결국 사람이 모인 곳이고,
그만큼 그렇지 못한 환경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직장은 누구에게나, 언제든 마주칠 수 있다.
그래서 바란다.
내가 지나온 돌부리 같은 순간들을,
누군가는 조금이라도 덜 밟고 지나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