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칼라 이민자의 삶
회사에서 제공하는 Professional Development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ML 관련 분야 워크숍에 2박 3일 일정으로 참석했다.
오랜만에 참석한 워크숍이었기에, 국가 연구소와 기업들이 진행하는 최신 연구 동향과 연구 환경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인상적이었던 건, 대부분의 발표 시작 멘트가 비슷했다.
“올해 DOE 예산이 많이 삭감됐지만, 다행히 이 연구는 펀딩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NSF 예산 상황을 보면 이 연구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함께 연구할 기회를 찾기보다는, 과연 올해 연구가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뤘다.
나는 회사 소속으로 참석했기에, 오히려 국가 연구소 쪽에서는 연구비 삭감으로 펀딩이 끊긴 포닥(postdoc)이나 졸업을 앞둔 대학원생들이 우리 쪽에서 자리가 있는지 묻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한국 대기업이 운영하던 미국 내 연구소가 최근 통째로 문을 닫으면서, 이직을 준비 중이라는 연구원도 있었다.
참... 아직도 살얼음 위에 서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1~2년 전 나도 일자리를 계속 찾아다니며 ‘나만 살얼음을 걷고 있다’고 느꼈던 반면, 지금은 ‘모두가 같은 얼음 위를 걷고 있다’는 인상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다시금, 미국에서는 이직의 자유가 보장된 만큼, 동시에 회사 정책에 따라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는 현실을 체감하게 됐다.
워크숍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회사 CEO로부터 전체 공지 이메일이 도착했다.
평소엔 일요일 저녁마다 주간 업데이트 메일이 오곤 했는데, 이번엔 목요일 오후에 온 메일이었고, 내용은 꽤 무거웠다.
예상대로, 회사에도 정리해고의 파도가 밀려왔다.
전체 인원의 10%에 해당하는 임원 감축, 그에 따른 조직 통폐합과 팀 재배치가 단행되었다.
다행히 우리 팀은 작년에 신설된 팀이라 온전히 보전되었고, 이번 기회에 CTO 직속 부서로 편입되었다.
그 후 남은 사람들을 위한 공식 미팅이 열렸다.
임원 감축의 배경 설명과 함께, 남은 직원들이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많은 직원들이 감정적으로 힘들어했다.
떠난 동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남아 있는 내가 괜찮다고 느껴도 되는 건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특히 젊은 직원들은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쉽게 내보낼 수 있냐”는 날 선 질문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동안 한 번도 이런 일을 겪지 않고 잘 버텨왔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이미 한 차례의 정리해고 이후, 2차 정리해고에서 소속 팀 자체가 사라지는 경험을 했던 나로서는 다소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다음 파고에서도 무사할 수 있을까?’, ‘그때까지 업황이 버텨줄까?’
감정에 휘둘리기보단,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나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리는 데 집중하게 되었다.
(경험이라는 게 무섭긴 하다.)
그리고, 다시 무섭게 ‘일상’으로 돌아갔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모든 직원들이 조금 더 치열하게, 더 집중해서 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일한다는 건, 늘 가능성과 불안 사이를 오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사람들은 묵묵히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만 3년, 이제 4년 차에 접어든 지금,
처음엔 늦게 시작된 커리어 탓에 ‘내가 불안정해서 살얼음을 걷고 있다’는 자책이 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잠시 안도하고 있는 나 역시, 그리고 내 주변의 모두 역시 여전히 그 얼음 위를 걷고 있다는 것을.
다만, 각자의 방식으로 조용히,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을 뿐이다.
이제 다시,
나만의 균형을 찾아야 할 때다.
좀 더 잘 견딜 수 있는 무기를 갖추고, 다음 파고를 준비해야 한다.
오늘도 하루를 무사히 버텨낸 나에게 감사하며,
오늘 하루도 어제보다 조금 더 성장한 하루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