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칼라 이민자의 삶
우리 아이의 소원, 그리고 이민자 부모의 고민
방학 때마다 한국을 다녀오곤 했기에, 아이는 늘 한국에 가면 재미있는 일들만 가득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그건 잠깐이라 그런 거야. 실제로 살게 되면 다를 수도 있어.” 라며 아이를 설득해 왔다.
그런데 이번 방학은 조금 달랐다.
시부모님께서 감사하게도 미국을 방문하셔서, 두 달 가까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
자연스럽게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나는 그 덕분에 평일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었으며, 아이와의 시간은 주로 퇴근 이후에야 겨우 가질 수 있었다.
이제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될 시점.
아이는 곧 할머니, 할아버지와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식하기 시작한 듯했다.
요즘 들어 부쩍, 예전처럼 장난스럽거나 떼쓰듯 말하지 않는다.
산책을 하다 손을 꼭 잡고, 조용히, 그리고 진지하게 말하곤 한다.
“엄마, 나 결심했어.
난 한국에서 살고 싶어.
언제쯤 나는 한국에 가서 살 수 있어?”
며칠 전, 아이가 너무 자주 “한국에서 살고 싶어요, 플리즈 플리즈”를 외치자
남편과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한국에서 살고 싶으면, 이번에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한국 가도 돼.
하지만 그러면 다시는 미국으로 돌아올 수 없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말해야 해.”
그 후로 아이는 더 이상 장난처럼 말하지 않았다.
이제는 진심을 담아, 진지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말에 나도 산책 중 조심스럽게 답했다.
“엄마는, 네가 스무 살이 되면 어디에서든 살 수 있도록 선택할 기회를 줄 거야.
지금 미국에서 살면 영어도 하고, 한국어도 잘하게 되니까
나중에 더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러자 아이는 되물었다.
“그럼 지금보다 13년이나 더 미국에서 살아야 해?
근데 지금도 미국에서 사는 게 힘들고, 영어도 어려워.
지금은 한국에서 사는 게 더 즐겁고, 가족들도 다 한국에 있는데…”
시부모님이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질수록,
아이는 다시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꺼낸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장난스럽게 말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엄마, 아빠를 설득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기회를 봐가며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가끔은 자다 울며, 할머니를 붙잡고 “자기도 데리고 가 달라” 고 말하기도 한다.
이제는 단지 “놀고 싶다”는 이유가 아니다.
아이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를 덧붙이며,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부모로서, 이민의 삶이 쉽지 않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선택이 아이의 성장 환경과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믿어왔다.
아이의 교육, 기회, 가능성... 모든 것을 고려한 선택이었다고.
그런데 요즘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이 삶이 아이를 위한 선택이었을까?
혹시 내가 원하는 삶을, 아이에게 투영해 왔던 건 아닐까?
내 욕심을 ‘아이를 위한 결정’이라며 포장해 왔던 건 아닐까?
마음이 먹먹해지는 순간이었다.
아이의 “진심의 소원”을 들으면서,
나는 다시, 나의 이민의 이유를 되짚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조용히, 내게 묻는다.
“나는 지금, 정말 누구를 위해 여기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