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수, 금 오후 1시...

화이트 칼라 이민자의 삶 - 슬기롭고 싶은 회사생활

지금 다니는 회사는 100% 재택근무다.

사실 배터리 소재 회사에서 전면 원격 근무는 흔치 않다. 하지만 AI 붐을 타고 모델링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면서, 회사도 이제는 슈퍼컴퓨터 없이도 모델링을 통해 제품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운 좋게도 그 흐름에 올라탈 수 있었다. AI가 등장하기 전까진, 내가 대학원 때 전공했던 분야로는 기업에서 일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이제는 내 전문성을 살려 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보통 프로그램 개발자들이 원격 근무를 선호하다 보니, 회사에서도 이례적으로 우리 팀에 원격 근무를 허용해 준 셈이다.

문제는…

처음 경험하는 재택근무는 모든 소통이 화상회의와 메시지로 이뤄졌다. 근무 시간은 자유롭게 보장되는 대신, 진행 상황을 확인하는 체크업이 주 3회 이상, 거의 매일 있다시피 했다.

첫 6개월은 업무를 익히는 시기였고, 시뮬레이션 프로젝트도 기획과 테스트 단계라 기본적인 소통만으로도 무리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입사 1년을 넘기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더 깊이 있는 토론이 이어지고, 실제 제품 개발에 필요한 계산 툴을 제작해야 하며, 지난 1년간 구축한 모델링 툴을 활용해 가시적인 결과를 내야 한다. 이때부터 매주 3번 진행되는 보고 회의가 점점 더 큰 벽처럼 다가왔다. 내 영어 실력이 부족한 탓이다.

뒤늦게 시작한 유학 덕분에 영어는 늘 부담이었다. 그래도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때는 눈빛이나 상황이 말 대신 도와주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화면 속 대화는 그 도움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부담이 두 배로 느껴진다. 그 압박은 결국 생각의 속도를 늦추고, 말까지 꼬이게 만든다.

요즘은 회의 중에 질문을 받으면, 질문의 핵심을 곧바로 이해하고 대답하기보다 순간적으로 모면하려는 답을 내뱉는다. 회의가 끝난 후에야 혹은 내 발언 기회가 넘어간 후에야 “아, 저 질문은 이런 뜻이었는데..." 하고 제대로 된 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

아…………

그래서 월·수·금 오후 1시 회의가 끝나면, 항상 마음이 무겁다.

일은 정말 좋은데, 정작 이런 기회가 내 손에서 미끄러질까 봐, 좋은 기회를 스스로 놓쳐버릴까 봐, 속상해진다.

이 난국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2년 차가 되면, 이 언어의 벽 앞에서도 조금은 더 여유로워질 수 있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Knoxville에서 가볼 만한 여행지 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