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칼라 이민자의 삶 - 슬기로운 직장생활
나는 1985년생이다. MZ세대의 초입에 속해 있어, 한편으로는 MZ세대의 특징을 갖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전 세대의 관성과 비슷한 결정을 내리곤 한다.
최근 유튜브와 뉴스 기사를 통해 한국 시사 프로그램에서 다룬 MZ세대의 이직 문화와 해외 취업 관련 방송을 접했다. 내 개인적인 느낌일 수도 있지만, 기사와 방송 속 MZ세대는 대체로 연봉, 워라밸, 회사 복지에 따라 직장을 쉽게 옮기는 세대, 즉 이전 세대가 강조하던 ‘애사심’과 ‘참을성’이 부족한 세대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더 나은 워라밸을 찾아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의 사례—예컨대 미국 간호사의 삶, 일본 IT기업 취업자의 만족스러운 경험—를 소개하며, 한국의 열악한 직장 문화, 특히 신입 간호사의 ‘태움’ 같은 사례와 대비시키곤 했다. 결국 “한국은 과중한 업무를 줄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메시지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그런 방송을 보면서 나는 늘 “뭔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도 한국의 ‘태움’ 같은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기업문화가 있고, 심지어 비자를 빌미로 과중한 ‘봉사’ 수준의 업무를 부과하는 회사도 많다. 미국이라고, 선진국이라고 해서 항상 양질의 일자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은 공휴일이 더 많고, 점심이나 간식 같은 기본적인 복지가 제공되는 경우가 많으며, 하루아침에 해고되는 일도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 기사 속 해외 취업은 늘 “좋은 문화가 자리 잡은 곳”으로만 묘사된다.
실제로 시부모님이 미국에 와 계실 때도 “다시 한국으로 이직할 생각은 없냐”라는 권유를 자주 들었다. 그럴 때마다 해외 취업이 단순히 ‘좋은 워라밸’을 좇아 떠나는 것처럼만 비치는 현실이 아쉽게 느껴졌다.
사실 나는 두 번이나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역행을 시도했다. 대학원 졸업 후 Korean Research Fellowship 프로그램을 통해 정착을 시도했고, 코로나 시기에는 한국 대기업 취업을 통해 다시 자리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마주한 반응은 의외였다. 해외에서 화려하게 스카우트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발적으로 귀국하려는 사람을 “패배자” 혹은 “실패한 이민자”로 보는 시선이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취업 면접이나 연봉·처우 협상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또한 한국에서의 이직은 업무 경험의 확장이나 커리어 변화의 맥락보다는 “배신자, 낙오자, 혹은 능력자”라는 단순한 프레임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스카우트가 아닌 이상, 면접에서 이직 사유를 묻는 질문은 결국 이전 회사를 비난하거나, 자기 탓을 하게 만드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반면 좋은 기업일수록 그런 질문보다는 “어떤 조직문화를 원하는지, 어떤 팀 환경에서 성장하고 싶은지”를 묻는다. 이는 내가 한국과 미국에서 경험하며 배운, 좋은 회사를 고르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정부 출연 연구소에 도전했고, 대기업 취업 과정을 거쳤으며, 미국에서는 대학원 연구실, 소기업, 중견기업 등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이런 과정을 지나온 내 경험으로 보자면, 나의 이직 선택은 결코 단순히 ‘워라밸이 좋은 삶’이나 ‘더 나은 커리어 기회’를 좇은 결과가 아니다.
대학원을 포함해 총 다섯 번의 이직과 한국·미국에서 수많은 면접을 거치며 내가 얻은 결론은 단순하다.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어떤 기업 환경을 선호하는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고 싶은지에 대한 꾸준한 고민이 나의 이직을 결정지었다는 것. 그리고 그 고민 속에서 연봉이나 워라밸은 결코 최우선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다만, 이렇게 이직을 통해 성장의 선순환을 경험했던 나의 사례도 한국에서는 조금 달랐다.
특히 정부출연 연구소를 비롯한 한국의 고용 구조 속에서는 제도적 한계, 이방인 배척 문화, 그리고 경력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다음 글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벽에 부딪혔는지, 왜 한국에서의 이직은 선순환으로 이어지기 어려웠는지를 이야기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