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칼라 이민자의 삶 - 슬기로운 직장생활
나는 두 번, 해외에서 한국으로의 ‘역행 취업’을 시도한 적이 있다.
첫 번째는 미국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포닥을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긴 유학생활 끝에 한국이 그리웠고, 배터리 연구만큼은 한국이 앞서 있다고 믿었기에 자발적으로 귀국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 경험은 “긍정적인 도전”이라기보다는 “신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나는 ‘해외 박사 유치 예산 활용 방안’을 주제로 열린 회의에 자문위원으로 초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학부·석사·박사 과정을 한 번도 밟지 않은 경우, 교수진의 적극적인 ‘끌어주기’ 없이는 정착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표면적으로는 ‘블라인드 채용’을 내세웠지만, 면접장 분위기만 봐도 누가 어디 출신인지 이미 다 드러나 있었다. 실제로 최종 인성 면접에서 한 지원자가 “지난번 입사 예정이었는데 사정이 생겨 이번에 다시 왔다. 꼭 같이 일하고 싶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음을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미국도 추천과 소개가 인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방식은 다르다. 미국에서는 지원자가 적극적으로 추천인을 찾고, 공개적으로 추천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일단 최종 면접에 들어가면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다. 한국에서 내가 받은 인상과는 달랐다.
포닥을 이어가던 중, 출산 직전에 정출연 연구소에서 내 전공 공고가 떠 지원했다. 서류전형에는 합격했지만, 면접 일정은 조정이 불가능했고 화상 면접도 허용되지 않았다. 결국 출산 후 2주 만에 서울에서 대전까지 내려가 힘겹게 면접을 봐야 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도 또다시 내정 발언을 직접 들으면서, 한국에서 연구직을 이어가려는 마음은 완전히 접을 수밖에 없었다.
약 3년 뒤, “기업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한국 대기업 공채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하지만 과정은 여전히 녹록치 않았다. 자발적으로 지원했음에도 인사팀은 나를 “다른 시도를 하다 실패한 뒤 늦게 취업한 사람” 정도로 바라봤고, 협상 과정에서는 일종의 ‘바겐세일’ 취급을 받는 기분이 강했다.
입사 후 느낀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료의 이직은 두 갈래로만 해석됐다. 교수가 되면 ‘능력자’로 칭송받았지만, 타 회사로 옮기면 ‘배신자’로 여겨졌다. 정작 그 사람이 어떤 이유로, 어떤 성장을 위해 이직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반면 미국에서는 누군가 이직을 하면 “왜 옮겼는지, 어떤 프로젝트와 전문성을 위해 움직였는지”를 먼저 궁금해 한다. 이직은 곧 성장을 위한 기회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조직에서 배우고 전문성을 확장하는 과정 자체가 커리어 개발로 이어진다.
결국 내가 두 번의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은 단순하다. 이직은 단순히 MZ세대의 참을성 부족이나 편안함을 찾는 ‘도망’이 아니다. 성장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때로는 자발적이 아닌, 비자발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개인의 이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뀔 때 비로소 더 건강한 조직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