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칼라 이민자의 삶 - 직장생활
아마도 내가 미국 이민을 결심할 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미국 직장 문화에 대한 막연한 기대’였던 것 같다.
왠지 미국 직장에서는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의견을 평등하게 나누며, 퇴근 후에는 개인의 시간을 온전히 보장받을 것만 같았다. 회식도, 눈치도, 상명하복도 없는—그런 자유롭고 합리적인 환경 말이다.
이런 분위기가 학위를 마치고 한국이 아닌 미국에 남으려 했던 내 결정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미국에서의 구직 활동과 직장 생활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겉으로는 고용 지표가 좋아 보이지만, 실제 구직 시장은 한국 못지않게 치열하고 때로는 더 냉정하다.
최근 들어 유난히 지인들과 직장 이야기를 자주 나누게 되었다. 이직을 준비하는 친구도, 회사와의 갈등 끝에 퇴사한 지인도, 동료와의 인간관계로 고민하는 사람들도 모두 “이상적인 직장”과는 거리가 있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생각하게 되었다.
“도대체 미국 직장이 뭐가 그렇게 달라서, 우리는, 나는 이민까지 결심했을까?”
결국 한국이나 미국이나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다. 문화가 달라 방식이 다를 수는 있어도, 갈등의 본질은 비슷하다. 직장 내 긴장감과 충돌은 어느 나라, 어느 직종에서나 생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각각의 장단점이 존재하고, 그 장단점이 자신의 성향에 얼마나 잘 맞느냐에 따라 선호가 달라질 뿐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스트레스는 형태만 다를 뿐, 언젠가는 또 다른 ‘탈출’을 꿈꾸게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우선적으로 미국 직장에 기대했던 건,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상명하복 없이 자유롭게 토의하는 문화였다. 한국 드라마나 다큐에서 보이는 한국의 억압적이고 희생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세상일 거라 믿었다. 반면 미국은 영화, 드라마, 구글이나 메타 같은 기업의 다큐를 통해 자유로운 복장, 수평적인 토론 문화, 효율적인 회의 분위기만 보여줬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아마도 나는 내가 믿고 싶은 모습만 골라서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실제 미국 직장은 한국 못지않게 경쟁이 치열하다. 연봉이 높을수록 회사는 그만큼의 ‘헌신’을 당연하게 요구한다. 단지 한국처럼 이런 문제점들에 사회가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불만이 묻히기 쉽고, 결과가 곧 기준이 되는 자본주의 논리가 더 강하게 작동한다. 일을 잘 못하면 가차 없이 짐을 싸야 하고, 회사는 언제든 더 나은 인력을 찾는다.
물론, 미국의 많은 회사들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일수록 좋은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시장가에 맞는 보상을 제공한다. 하지만 업무 환경이나 자유로운 의견 교환 문화는 회사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결국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하는 부분이라는 걸 깨달았다.
팀 안에서 내가 어떤 경계를 세우고, 어떤 방식으로 의견을 표현하느냐에 따라 발언권이 달라진다. 언젠가부터 나는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나 애매한 상황에서는 주저하지 않고 질문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게 일의 효율을 높여주기도 했고, 상사나 동료들과의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의견을 전달하고 토론의 분위기도 스스로 만들어갔다.
하지만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느낀 또 하나의 현실은, 시니어 엔지니어로 자리를 굳히는 건 가능하지만 그 위로 올라가는 건 또 다른 이야기라는 점이다. 매니저나 디렉터급으로 성장하려고 할 때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 개인의 경계를 확실히 세우고 나의 영역을 지킬수록 그 벽은 더 견고해지는 느낌이다.
다음 글에서는 이른바 **‘Bamboo Ceiling’**이라 불리는 이민자로서의 장벽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이야기해보려 한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그리고 어떤 산업이든, 사람을 매니징 하는 위치로 올라갈수록 다른 문화를 가진 이민자에게는 또 다른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