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로서의 직장 장벽 -Bamboo Ceiling

화이트칼라 이민자의 삶 - 직장생활

여러 크고 작은 직장을 옮겨 다니다 보면, 좋은 점이 하나 있다. 다양한 팀과 다양한 리더십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이가 들며 직장 생활의 경험이 쌓일수록, 현실에서의 ‘진짜 나의 역량’이 조금씩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그 다름을 인식했을 때는 거부감과 괴로움, 착잡함, 그리고 슬픔이 뒤섞인 감정들이 밀려 왔었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30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나는 나 자신을 꽤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있었다. 그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마치 실제 역량인 것처럼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다 그 이상과 현실이 어긋날 때면 학교나, 교수님, 팀장, 회사 구조를 탓했고, 이직이라는 방식으로 그 불만을 표현하곤 했다.

그런데 인생의 몇 번의 파고를 넘으면서, 나는 외부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선을 갖게 되었고, 인고의 과정 끝에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팀이 앞으로 성장할 팀인지, 해체될 팀인지, 혹은 점점 도태될 팀인지… 감이 오기 시작했고, 그 팀의 향방은 결국 그 팀을 이끄는 리더십의 힘에 달려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처음에는 그 차이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민자라서”, “아시아계라서” 리더십 포지션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Bamboo Ceiling이라 불리는 보이지 않는 벽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 벽의 일부는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쌓아 올린 것이기도 하다는 걸.

‘나는 리더가 되기 어렵다’는 전제를 깔고 스스로의 한계를 정해버렸던 순간들, 내 역량을 냉정하게 보지 못하고 이상적인 모습에 도취되어 나와 맞지 않는 프로젝트를 억지로 끌고 갔던 순간들, 문화적 다름과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대화의 순간들… 그 모든 것들이 내가 만든 또 다른 형태의 벽이었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본다. 리더십의 기회는 생각보다 더 넓게 열려 있고, 그 기회를 붙잡을 수 있는지는 결국 내가 어떤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달려 있다. 이민자로서의 장벽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벽을 뚫기 위해서는 외부와 싸우는 것만큼 내 안의 벽을 허무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좋은 회사일수록, 발전 가능성이 있는 회사일수록 모두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을.
물론 자신이 만든 벽보다 더 단단한, 회사가 오래 쌓아온 천장이 존재할 수도 있다. ‘사내 정치’나 ‘인맥’으로 리더십이 만들어지는 회사들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는 그런 리더십 구조는 결국 회사를 갉아먹고, 그렇지 않은 회사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런 ‘외부의 천장’은 내가 스스로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우선 내가 만든 벽부터 허무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래야 언젠가 온전한 회사를 만났을 때, 진짜 기회가 내 앞에 올 수 있으니까...


하지만, 오늘도 내가 두텁게 쌓아 올린 천장만을 올려다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내일도 변함없이 오늘 미팅도 무사하기만을 바라며 컴퓨터를 켜겠지만... 내가 만든 천장임을 알기에 불평보단 앞으로 집중해야 할 것들에 집중하려 한다.


이 글이 바로 52번째 글이다.
1년, 52주....

1년 전,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돌고 있는 듯한 내 모습이 답답해서, 내가 했던 잘못된 선택들을 되짚기 위해 시작했던 글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그 선택들을 탓하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다짐하게 만드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더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비록 적은 숫자라도, 이 글들이 누군가에게는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데에, 혹은 후회스러운 선택들로 속상해하는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로가 되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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