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만든 눈사람

화이트 칼라 이민자의 삶 - 삶에서 얻는 이런저런 생각...

말이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미국 거의 전역을 강타한 한파는 결국 온화한 겨울 기후를 가진 테네시까지 폭설을 몰고 왔다.

처음 강추위와 폭설 예보가 나오자 학교는 일찌감치 휴교를 선언했다. 그동안 서부에서 따뜻한 중남부까지 이동하며 살아왔기에 눈 구경을 거의 못 해봤던 아이는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렇게 맞이한 첫날.
강한 한파와 폭설 예보와 달리 눈은 찔끔 왔다.

“역시 테네시네.”

예상보다 적은 눈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는 눈싸움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아침부터 분주했다. 나는 원격으로 일해야 했기에 휴무가 아니었다. 눈썰매를 타며 놀고 있는 동네 아이들에게 말을 붙여보라며 아이의 등을 떠밀었다.

아이는 두 시간을 놀다 억울함이 가득한 얼굴로 울음을 꾹 참고 들어왔고, 결국 집 안에서 감정을 터뜨렸다.

눈썰매를 타본 적도, 가지고 있지도 않았던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기회를 얻기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눈은 점점 녹아갔고, 결국 눈썰매도 타보지 못하고 원하던 눈싸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돌아왔다. 나를 보자마자 대성통곡을 했다.

괜히 등을 떠민 것이 미안해 아이에게 말했다.

“눈 한 번 더 오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어볼래?”

그런데… 며칠 뒤 정말 눈이 산더미처럼 왔다.
더욱이 토요일 아침이었다.

나이 든 남편과 나는 오랜만에, 아이는 인생 처음으로 제대로 된 눈싸움을 했다.

아이는 소복이 쌓인 눈을 보며 해맑게 말했다.

“내가 너무 많이 빌었나?”

한참을 눈싸움을 하다 문득 눈사람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어릴 때부터 눈이 오면 혼자 묵묵히 눈사람을 만들곤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커지는 눈덩이가 신기했고, 크게 완성된 눈사람을 보면 묘한 뿌듯함이 밀려왔었다.

이번에는 아이에게 그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눈싸움을 멈추고 혼자 눈덩이를 굴리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커지면 아이에게 인내의 결과와 성취감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마흔에 만드는 눈사람은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눈뭉치가 스스로 굴러 커지기까지의 과정이 어쩐지 인생 같았다. 잘 뭉쳐지는 듯하다가도 그대로인 크기를 보면 내 통장 잔고가 떠오르고, 힘들어서 포기하자니 내 인생을 그저 그런 사이즈로 남겨두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괜히 오기가 생겼다.

그렇게 눈사람에 집착하는 사이, 아이와 남편은 더 이상 눈싸움을 해주지 않는 나를 뒤로한 채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혼자 눈사람과 씨름한 지 한 시간이 지났다.
예전 감각이 돌아왔는지 눈덩이는 점점 커졌다.
기쁜 마음에 아이를 불렀지만, 이미 흥미를 잃은 지 오래였다.

마음이 복잡했다.

더 크게 만들고 싶은 마음.
내 체력의 한계.
아이에게 성취를 느끼게 해주고 싶은 욕심.

결국 아이에게 몇 번 굴리게 하고 눈사람을 꾸미게 했다.

비록 내가 만들고 싶었던 크기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나의 작은 눈사람이 완성되었다.

완성된 모습을 보니 예전과는 다르게, 괜히 내 인생의 크기도 저만한 건 아닐까 하는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그래도 눈사람의 시작은 내가 했지만, ‘우리가 만들었다’는 기억을 아이에게 남긴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다만… 눈사람을 완성하자마자 아이는 그 눈을 뭉쳐 다시 나에게 눈싸움을 걸어왔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 아이는 아직 눈사람을 완성하는 인내보다,
그저 눈 속에서 실컷 뛰어노는 시간이 더 중요한 아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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