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칼라 이민자의 삶 - 40세 성장통 치료일기
지금 한 달째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오전 시간이 계속 흘러가버린다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아이와 남편을 학교로, 회사로 보내고 나면 7시다. 머리로는 안다. 이 시간을 잘 써야 한다는 것을. 오롯이 혼자만의 하루가 시작되는 이 시간을 가장 밀도 있게 써야 한다는 것을.
그런데 문제는 너무 이른 아침에는 이성이 아니라 본능이 먼저 깨어난다는 것이다.
성장통을 지나 지금은 나의 관성과 싸우는 시기인데, 나는 매번 그 싸움에서 본능에게 지고 있다.
“조금만 더 자고 가뿐하게 시작하는 게 더 효율적이야.”
어느덧 그럴듯한 논리까지 덧붙이며 침대로 향한다. 그리고 1~2시간의 꿀잠. 느지막이 일어나 책상에 앉지만, 핸드폰을 열고 아이 일정을 확인하고 기사를 읽다 보면 어느새 오전은 사라져 있다.
점심 즈음이 되어서야 이성이 작동한다. 뒤늦게 몰입 모드로 일을 붙잡고 점심시간을 아껴가며 따라잡는다. 그러다 아이가 돌아오고 남편이 돌아오고, 끝내지 못한 업무의 압박을 안은 채 저녁을 준비한다.
그러다 보면 빈속에서 울렁거림이 올라오고, ‘아, 또 하루가 이렇게 흘러갔구나. 왜 이렇게 하루하루가 힘들지…’ 하는 적신호가 켜진다.
저녁을 먹고 운동을 하며 다시 다짐한다. 내일은 다를 거라고. 다시는 오전을 흘려보내지 않겠다고.
하지만 지친 몸으로 잠자리에 들면 마무리되지 않은 하루에 대한 찜찜함이 남는다. 뒤척이다 잠들고, 다시 같은 아침이 반복된다.
이렇게 계속 지는 날들이 쌓이니 생각은 점점 자조적으로 흐른다.
‘역시 성공은 쉬운 게 아니야. 사람의 본성을 바꾸는 건 어려워. 관성에 지면 안 되는데…’
그러다 문득 이런 의심까지 도달한다.
‘내가 오늘 조금 더 열심히 산다고 정말 바뀌는 게 있을까?’
성장통을 인지하고 삶의 우울을 벗어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단기적인 목표가 있었다. 루틴을 만들고, 감정을 안정시키고, 무너진 나를 다시 세우는 것. 그때는 ‘회복’이라는 비교적 선명한 목적지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성장’을 목표로 삼았다. 성장은 단기간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주지 않기에, 장기 전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의 의지는 매일 아침 관성과 본능 앞에 무너진다.
이제 내가 사는 곳에도 봄이 왔다. 아침은 더 이상 어둡지도 춥지도 않다. 계절은 분명 바뀌고 있는데 나는 왜 아직도 7시의 침대를 이기지 못할까. 이성의 스위치를 조금 더 빨리 켜기 위해 나는 무엇을 바꿔야 할까.
2월이 가기 전, 나는 오전을 되찾으려 한다.
첫 번째 전투는 7시의 침대를 이기는 것, 그리고 나의 이성을 최대한 빨리 깨우는 것이다.
어느 심리학 이론에서는 인간 안에 두 개의 자아가 공존한다고 말한다.
빠르고 즉각적인 쾌락을 좇는 본능적 자아, 그리고 느리지만 방향을 계산하는 이성적 자아.
본능은 편안함을 지키려 하고, 이성은 나를 성장시키려 한다.
지금까지의 나는 아침마다 본능에게 주도권을 넘겼다. 편안함을 선택했고, 오후가 되면 뒤늦게 깨어난 이성이 나를 꾸짖으며 채찍질했다.
2월이 가기 전에,
나는 단 한 번이라도 이 전투에서 이성적 자아가 만족할 만한 승리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아침의 첫 선택을 바꾸는 것.
본능의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생산적인 하루를 먼저 시작하는 것.
그것이 지금 나의 단기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