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을 삼키며, 어른이 되어간다

고들빼기김치

by 꿈꾸는 식탁

살면서 누군가에게 심하게 괴롭힘을 당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적어도 마지막 직장 생활의 2년을 빼고는 말이다.


그 2년은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아니 어쩌면 잊고 싶은 시간이었다.


그녀는 이미 악명이 자자한 사람이었다.

그녀 밑을 거쳐 간 매니저들은 하나같이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했다.

회사 블라인드 게시판에 올라오는 험담의 절반은 그녀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그녀를 두고 '살아 있는 전설'이라며 조롱 섞인 농담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전설과 내가 직접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녀에게는 특이한 능력이 하나 있었다.

바로 임원급 상사들을 놀라울 정도로 잘 챙기고, 아부하는 기술.

업무 지식이나 실무 능력은 부족했지만, 윗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그녀는 그 능력 하나로 회사에서 거침없이, 때로는 단히 유리하게 살아갔다.


설마 그런 그녀가 나의 직속 상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인생은 예고 없이 잔인한 농담을 건네곤 한다.

그렇게, 그토록 피하고 싶던 사람이 내 바로 위에 앉게 되었다.

그 후의 시간은 말 그대로 ‘쓴맛’이었다.

업무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사람이었다.

불합리한 말들, 모순된 지시,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

그 모든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매일같이 삼켜야 했다.

쓴 것을 삼키고 또 삼키며, 그저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다 내 몸에서 이상 신호가 나타났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유방암 3기.


눈앞이 캄캄했다.


물론 암의 원인이 하나만은 아니겠지만, 극심한 스트레스를 빼놓고 설명할 수는 없었다.

항암 치료를 받으며 몸이 아프고, 머리카락이 빠져도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오히려 행복하게 느껴질 만큼, 나는 이미 지쳐 있었던 것이다.

무너지는 몸을 붙잡으며, 나는 나를 놓는 연습을 했다.

꼭 쥐고 있던 것들, 애써 참아내던 감정들.

그 모든 걸 조금씩 내려놓으며, 내 안의 소중한 무언가를 다시 발견해 갔다.


그러던 작년 겨울,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문득 그녀를 용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서란, 결국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말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 순간이었다.

카카오톡으로 조심스레 메시지를 보냈다.

“정말 미웠어요.”

짧은 고백이었지만, 그 말속에는 모든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녀에게서 긴 답장이 돌아왔다.

뜻밖에도, 너무나 따뜻하고 진심이 담긴 글이었다.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오랫동안 눌러왔던 감정의 생채기들이, 마치 눈 녹듯 사르르 사라졌다.


그날 이후, ‘쓴맛’이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고들빼기김치가 떠올랐다.

어릴 적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맛이었다.

입에 넣으면 퍼지는 진한 쓴맛. 억지로 넘기기 바빴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상하게 그 맛이 그리워진다.

씁쓸한 풍미 속에 담긴 깊은 맛.

그 맛은,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되는 어른의 맛이었다.


고들빼기는 단지 쓴 채소가 아니다.

입맛을 돋우고, 면역력을 높이며, 간 건강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쓴맛이지만, 몸에 좋은 것.

몸에도, 마음에도 이로운 것.

마치 인생에서 겪는 어떤 고통과도 같다.


“쓰면 삼키고, 달면 뱉어라.”


인생은 늘 달기만 하지 않다.

때로는 아주 쓰디쓴 순간들을 꿋꿋이 삼켜야만 한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지나야 다음 계절로 나아갈 수 있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시간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고들빼기 같은 인생의 쓴맛이, 결국 나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되었다.

그것이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의 또 다른 이름 아닐까.


고들빼기김치

고들빼기김치 만드는 법


1. 고들빼기는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은 후, 물과 소금을 10:1 비율로 섞은 소금물에 하루 동안 담가 쓴맛을 우려낸다.

쓴맛을 조금 더 부드럽게 하고 싶다면, 중간에 물을 두세 번 갈아주며 하루 정도 더 담가두는 것도 좋다.



2. 배 또는 사과, 마늘, 생강, 불린 마른 고추, 멸치액젓, 새우젓을 함께 넣고 곱게 갈아 양념 베이스를 만든다.



3. 미리 끓여 식힌 찹쌀풀에 양념 베이스와 고춧가루를 넣어 색과 맛을 더한 뒤, 고들빼기를 넣는다.

진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단맛은 조청을 더해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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