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맑고 햇빛이 부드러워보여 밖에 나왔다. 밴쿠버의 겨울은 거의 6개월 동안 내내 비가 온다고 해서 레인쿠버라고 하지만 올 겨울은 비가 그렇게 많이 오지는 않았다. 종종 하늘이 개는 날이 있었고, 눈과 비가 너무 오지 않아 스키장에 눈이 없어 자꾸만 스키장이 문을 닫았다. 우리 나라는 한껏 추웠다가 한껏 더웠다가 하며 이상기후를 보이는데 여기는 내내 내리던 비가 줄고 없던 폭설이 내렸다가 기온이 갑자기 올라 다 녹으며 변한 날씨를 보였다. 지구와 날씨를 걱정하며 지난 주에도 내내 몸이 아팠다가 간만에 좋은 날이기에 나왔다.
3월이어서 그런가, 말 그대로 봄 같았다. 3도 정도로 공기는 찼지만 햇살이 따뜻해서 걷는 동안 몸이 데워졌다. 파란 하늘에 잔디는 연두빛으로 빛났다. 회색빛의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찰나를 느끼는 건 즐거운 일이다. 드디어 봄이 오는구나 하고 설레기 때문이다. 걷다보니 벚나무에 꽃망울이 다글다글 달린 것이 눈에 띄었다. 여기는 3월 말~4월 중순이 벚꽃 시즌이다. 그런데 벌써 꽃망울이 이렇게나 맺히다니, 단단하게 여문 꽃망울을 보니 2주 정도 후면 꽃이 필 것 같다. 한참을 나무 아래 서서 꽃망울을 구경했다. 한국에 비하면 화려한 놀거리가 없고 찾아다닐만한 맛집도 별로 없는 밴쿠버에서 심심하게 지내서 그런가, 그저 나무에 꽃이 피어날 준비를 하는 모습을 꼼꼼히 구경하는 기분이 좋았다. 한국에서 늘 자극적인 배달 음식을 먹다가 밴쿠버에 와 내내 집밥을 먹으며 입맛이 미니멀해진 것처럼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도 섬세해졌나보다. 기분이 좋아져 꽃망울 사진을 찍어와 그렸다.
날씨 좋은 주말의 캠퍼스는 활기찼다. 광장에서 한국어로 된 노래가 들려와 가까이 가보니 박수 짝짝짝!! 하는 가사에 맞춰 한무리의 대학생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뮤직 비디오처럼 그 모습을 촬영하는 학생도 있었다. 30대 중반이라 아이돌에서 멀어진지 오래인데 신나는 K팝에 맞춰 깔깔 웃으며 춤을 추고 있는 외국 학생들을 보니 미소가 지어져 무슨 노래인지 찾아봤다. 세븐틴의 박수 라는 곡이었다. K팝이 정말 대단해졌구나 싶었다. 춤추는 학생들을 구경하다가 발길을 옮겼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 아기 유아차를 밀며 한 손으로는 강아지를 위해 공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족과 개와 함께 걷고 뛰는 삶, 밴쿠버에서 가장 자주 보는 삶이다. 아름답다. 여유로운 행복의 모습을 바라보며 햇빛이 나무 그림자를 만드는 건물 사진을 찍었다. 봄의 모습을 그리려고.
밤의 캠퍼스에서는 해리포터에서 나오는 스포츠인 퀴디치를 하는 학생들을 봤다. 빗자루 대신 막대기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잡고 달리며 한 손으로는 공을 골대에 던져 넣는 학생들을 보니 너무 덕후스러워서 귀여웠다. 해리포터 퀴디치라니! 좋아하는걸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유쾌하다.
한 낮의 캠퍼스에는 인조잔디에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음식을 먹거나 누워 햇빛을 쬐고 있었다. 날이 포근해지니까 다들 여기저기 앉고 누워 햇빛을 받는다. 언제나 운동하는 밴쿠버 사람들, 아무데나 편히 눕는 밴쿠버 사람들도 봄이 와서 좀 더 생기있어 보였다.
봄의 기쁨을 느끼며 그림을 그리는 한 주도 좋았다. 내 그림은 조금쯤 나아졌고, 그리는 동안 편안하고 뿌듯하다. 산책을 하면 그림에 담고 싶은 풍경을 찍는다. 이제 그림을 그리는동안 내 그림이 별로여서 싫은 기분은 줄었다. 그리다보면 나아진다는걸 깨달았으니까즐거움을 골라 그린다. 이제 봄이 왔으니 곧 손 시렵지 않게 밖에서도 그림을 그릴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