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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 Mar 13. 2024

그림을 대하는 나의 마음은

'어반스케치 잘하고 싶어서 쓰는 글' 연재를 마치며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온도. 딱 그 정도가 그림을 대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교과서 한 귀퉁이에 낙서하는 것을 좋아했고 가끔 예쁜 풍경이나 건물을 보면 그림에 옮기고 싶기도 했지만 한두달에 한 번 정도 동하는 마음. 그런 느슨한 마음으로 10년 넘게 간간히 그림을 그리다가 지금에 닿았다.


  밴쿠버에 한시적으로 살면서 다양한 활동을 해보고 싶어 용기내 참석했던 어반스케치 모임은 내 느슨한 마음에 불을 지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각자의 그림 도구를 챙겨와 각자에게 인상 깊은 장면을 그리는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다가 모이면 모두 제각각인 풍경을 담아왔다. 각자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 생동감 있는 사람들의 표정, 너른 하늘과 바다의 빛깔, 크고 섬세하게 그려진 꽃과 나뭇잎,  에너지가 느껴지는 사람들의 몸동작이 연필과 만년필, 수채물감과 색연필로 자유롭게 그려져 있었다. 그들의 스케치북을 구경하면서 지난 그림들도 넘겨보면 밴쿠버의 이모저모가 사랑스럽게 담겨있었다. 나도 그림 그리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들처럼.


  이내 내 그림의 미숙함과 예쁘지 않음에 어반스케치 모임에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그다지 즐겁지 않아졌다. 미지근한 온도로 그림을 그릴 땐 내 그림이 예쁘지 않다고 해서 싫을 게 없었다. 난 그냥 손을 움직이며 그림 그리는 시간이 좋을 뿐이고, 직업도 아니고, 노력도 쏟지 않으니까 내 그림이 훌륭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내 마음이 미지근하지 않아진게 문제였다. 어디서나 털썩 앉아 그림을 그리는 할머니가 되고 싶고, 그 때 내 스케치북에는 사랑스럽고 폭닥한 그림이 담겼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기자 소망은 욕심이 되고 비교와 자신감 부족으로 못난 모습이 되었다.


  못나진 소망을 깨끗하게 닦아내고자 '어반스케치 잘하고 싶어서 쓰는 글'을 연재했다. 10화를 연재하는게 쉽지는 않았다. 바쁘기도 했고, 아프기도 했고, 평소에는 거의 그리지 않던 사람과 건물을 잘 그리고 싶어서 공부도 하고 끙끙대며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10주를 보내고 나니 선명해진다. 그림은 그릴수록 는다. 더디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보다 나아진다. 단 10주만 조금 더 노력해도 할 수 있는게 많아진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다른 걱정이나 생각이 끼어들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대로 표현할 수 있고 어떤 스타일이 내 마음에 드는지는 아직 모른다. 흰 도화지 위에서 나는 자유롭다. 오직 나의 즐거움을 위해 그린다.

 

  정신 없이 바쁘고, 뒤쳐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생산적인 일을 하며 뭐든 이루어내려고 버텼던 오랜 시간들 속에서 그저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만 지속해온 취미가 있다는게 든든하다. 이제는 내가 그린 그림이 마음에 든다. 다른 사람들의 그림과 비교할 일 없이 그저 그림을 그리는 스스로가 좋다. 모든 할 일을 멈추고 좋아하는 풍경 앞에 멈추어서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지난 10주 간의 연재 끝에 되찾은 마음이다. 앞으로는 오래 오래 이 마음을 잃지 않고 그림을 그리며 쉼과 즐거움을 만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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