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각 Jun 04. 2024

아마도 캐나다에서의 마지막 여행, 토피노 #1

대자연 토피노에서의 태교 여행 첫날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2년 전 캐나다에 와서 처음으로 브런치를 시작하고 살면서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라는 칭호를 받았다. 1~2년에 한번 해외 여행을 하고, 몇달에 한 번 편안한 여행을 하던 내가 캐나다에 와서는 캐나다 곳곳으로, 미국으로 온갖 여행을 했으니까. 에어비앤비 앱에는 머물렀던 숙소 호스트들의 후기가 쌓이고, 브런치 공간에는 여행기가 차곡 차곡 쌓였다. 머리가 하얗게 변해도 문득 생각나면 꺼내어 매만질 그런 시간들 말이다.


  올해 초 캐나다 국립공원 캠핑장 예약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전 세계 서퍼인들이 꿈에 그린다는 캐나다 토피노의 그린 포인트 캠핑장(green point campground)을 운 좋게 잡을 수 있었다. 5월 말이면 날이 좋아질테고 학교 일정도 다 끝났을테니 캐나다의 하와이로 알려진 토피노에서 캠핑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아기가 찾아온 것을 알게 되고 임신 초중기를 지나며 누워 지내다가 10분씩 20분씩 걸으며 체력을 회복할 때 바라는 것은 이 여행 하나였다. 아마도 캐나다에서의 마지막 여행이자 마지막 캠핑일 토피노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다행히 몇 주간 움직이며 하루 6000보 정도 걸을 체력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여행 날짜의 일기 예보엔 밤마다 비가 많이 온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임신 중기의 몸으로 춥고 비오는 숲 속 텐트에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곧 귀국도 해야되는데 무리하면 안 될 것 같아 누군가 취소 자리를 기쁜 마음으로 잡길 바라며 캠핑장을 취소하고 에어비앤비 숙소를 잡았다. 마음 내려놓기에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다. 그래도 건강하게 여행을 갈 수 있는 것에 감사할 일이다.


  밴쿠버에서 페리를 타고 2시간 걸려 밴쿠버 아일랜드의 나나이모에 도착해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쿰스의 '지붕 위 염소'를 구경하고 30분 거리에 있는 맥켈란 주립공원에서 800년 된 나무를 보는 것이 첫날 일정이었다. 무리 하지 않으려고 페리에서 내려 3시간 거리에 있는 토피노로 바로 들어가지 않도록 일정을 짜면서도 너무 심심하려나 싶었는데 잘 한 결정이었다. 깨끗하게 맑은 날 페리의 커다란 창 밖으로 보이는 너른 바다와 하늘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바다멍을 하고, 온갖 식료품과 구경 거리가 있는 귀여운 마켓을 구경하고 그 마켓 지붕에서 풀을 뜯고 있는 염소를 봤다. 마켓에서 갓 구운 치즈식빵을 사고 아주 신선해보이는 사과와 천도복숭아, 딸기를 샀다. 며칠 간 이 과일들로 아침 식사를 할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났다. 마치 그리스의 어떤 건물을 연상케 하는 베이지색 건물의 아이스크림가게에서 달달한 아이스크림콘도 사 나무 아래에서 먹었다. 달다-. 여행의 맛이다.


  기분 좋게 작은 시골 장터를 구경한 마음으로 다시 차를 타고 맥켈란 주립공원에 갔다. 도로가에 주립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어 차를 주차하고 트레일에 들어섰다. 왕복 30분도 걷지 않는데 800년 된 나무를 볼 수 있다는 이 숲에 들어서자마자 빽빽한 키 큰 나무들에 둘러 쌓여 고요하게 단절될 수 있었다. 캐나다를 사랑하는 이유다. 너무도 쉽게 대자연을 만날 수 있는 것. 숲내음 흙내음을 맡으며 천천히 걸으며 두 명이 그러안아도 다 안기지 않을 나무들에 감탄했다. 오래된 나무결만 바라봐도 행복한 게, 나무가 너무 많은 캐나다에서 2년을 살 수 있었던 게 정말이지 행운 같다. 그렇게 만난 800년을 오롯이 살아온 나무 앞에서 숨을 크게 쉬고 고개를 들어 끝이 보이지 않는 나무의 우듬지를 가늠해보았다. 신기하게도 배를 쓰다듬게 되기도 했다. 이렇게 좋은 것을 보며 아기를 생각하게 되다니, 엄마가 되는 마음이 낯설고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렇게 왔던 길을 되짚어 나오는데 행복감 위로 피로감이 고개를 들었다. 이제 5000보 남짓 걸었는데 임산부의 체력이란 이런걸까? 이 근처에 숙소를 잡아두길 정말 잘했다 스스로를 칭찬하며 느릿 느릿 걸어나와 저녁을 포장하러 근처 초밥집으로 향했다.


  평점이 높은 초밥집에서 메뉴를 보며 내 몫으로 회가 들어 있지 않은 롤을 골랐다. 그런데 이름이나 재료가 직관적이지 않아서 "드래곤 롤이면 회가 있는건가? 없는건가? 아보카도만 있으면 좋겠는데"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의자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한국말로 말을 걸었다. 그는 날생선이 들어있지 않은 롤을 추천해줬고, 우리는 한국분이냐며 감사 인사를 하고 음식을 주문했다. 할아버지는 30년 전 밴쿠버로 이민 온 사람이었다. 그 옛날 어떻게 이민을 결심하셨냐 하니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랬다고 하셨다. 요리사였던 그 분은 호기롭게 이민을 와서 밴쿠버에서 장사를 하시다가 밴쿠버 섬으로 이사와 20년째 초밥집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셨다.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도 이민을 결심하는 건 어려운 일인데 인터넷도 정보도 없던 시절 이민 하는 용기는 어떤 마음일까? 가늠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모양이 있고,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캐나다에 사는 2년 동안 많이 봤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며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너무도 힘들다면 어떤 다른 방법을 찾는 것도 이제는 막막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게 내 마음 한 켠을 단단하게 한다.


  그렇게 포장한 저녁을 가지고 예약해둔 에어비앤비로 찾아갔다. 작은 도시인 포트 알버니의 주택가에 있는 단독 주택이었다. 잔디가 깔린 마당에는 미끄럼틀과 트램폴린이 있고 공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 설명에는 어린 아이 둘과 함께 한적한 이 곳 마을에서 살고 있다고 써있었는데 아늑하고 평온한 집의 모습이었다. 문을 열어준 남자와 인사를 하고 지하의 거실 겸 주방과 방이 있는 숙소로 들어가 짐을 풀고 저녁을 먹었다.


  20년 째 같은 자리에서 운영하고 있는 식당의 초밥은 아주 맛있었고, 숙소는 아늑하고 깨끗했다. 800년 된 나무가 있는 숲은 울창했고 맑은 날의 시골 장터는 활기차고 즐거웠다. 낯선 곳에서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즐거움을 얻는 것은 여행의 보장된 맛. 이민해서 삶을 일구는 사람을 만나고 어린 아이들과 화목한 생활을 꾸려가는 가족의 집에 머물러 보는 것은 새로운 자극을 얻을 수 있는 외국 여행의 묘미이다. 임신을 하고서는 첫 여행인데 내 눈에 어린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이 더욱 잘 보인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내 세상이 이만큼 넓어지는구나 싶기도 했다. 앞으로 나는 지금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삶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겠지? 두근 두근한 기분을 가볍게 느끼면서 내일 토피노로 들어가 보게 될 바다를 기대하며 편히 쉰 여행 첫 날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