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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 Apr 17. 2023

부모님이 내게 물려주신 것

  공무원이셨던 아빠, 가정주부였던 엄마, 두분이 알뜰 살뜰 애써 키운 세자매. 공무원 외벌이로 세자녀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일이었는지 일을 하고 돈을 벌게 되고 나서야 알았다. 특별히 화목하지도, 특별히 사이가 나쁘지도 않은 그런 가족. 애쓰고 버티다 지쳤을 어느 시기엔 부모님의 이혼 위기가 여러번 있었고, 또 다른 시기엔 내게 찾아온 늦은 사춘기에 부모님이 내게 못해준 것, 상처준 것만으로 감정이 가득차 독한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방문을 닫고 울던 시절들도 있었고 내 부모의 모난 부분이 준 상처에 아파하던 시절들도 있었다.


  그 시간들을 다 지나 해외에서 1년 가까이 살면서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는 지금, 어느때보다 부모님이 내게 물려주신 것에 감사한다.   


  나와 동생이 어렸을 때부터 우린 주말마다 근처 공원과 산에 갔다. 차가 없었기에 멀리 다닌적은 많지 않고 일요일이면 도시락을 싸서 돗자리를 챙겨 뒷산이나 공원에 갔다. 적당히 걸어 적당한 장소에 도착하면 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고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김밥을 먹는 날도, 제육볶음을 먹는 날도 있었다. 어린시절 뛰어놀았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사진속의 나는 비교적 얌전한 아이였어서 아마 엄마 아빠 옆에 앉아 음식을 먹고 낮잠을 잤을 것 같다. 평일엔 일과 회식으로 밤 12시가 넘어서야 돌아올 수 있었던 아빠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기였다. 아빠가 지방으로 발령이 나서 주말부부를 하던 몇년 동안에도 주말엔 언제나처럼 공원 아니면 산에 갔다. 내가 고등학생이고 동생이 중학생이고, 막내가 초등학생일 때도. 고3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갔다. 매주가 아니라 한달에 한번으로 줄었던가. 그래도 도시락을 싸들고 근처에 나가 밖에서 먹는 밥은 당연한 가족의 시간이었고, 어떻게 싸웠든, 어떻게 서로를 미워했든, 날이 좋은 주말이 오면 당연한듯 점심 나절을 함께했다. 무언가 특별했나? 하면 또 그렇게까지 행복했거나 기뻤던 기억은 없다. 단지 내가 지방에서 일을 하고 결혼을 하고서도 두세달에 한번, 특히 벚꽃이 필때와 단풍이 예쁠 때는 단톡방에 이번주말에 산에 가자고 얘기를 하고 서울에 올라간다. 서울에 가서 엄마의 등산복과 등산화를 신고 함께 집을 나선다. 어쩔땐 주말에도 일하느라 바쁜 둘째가 함께 하기도 하고, 어쩔 땐 이제 갓 대학생이 되어 친구들과 노느라 바쁜 막내가 함께 하기도 한다. 그렇게 30년동안 갔던 산, 모습이 바뀌었지만 언제나 그곳에 있던 산을 쉬엄쉬엄 걸어 적당한 곳에 자리를 펴고 앉아 도시락을 먹는다. 막걸리도 한두잔 함께 마신다.  

 

  그 시간들 덕분에 봄이면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고, 그 시기가 지나면 벚꽃이 핀다는 걸 어릴때부터 알았다. 매미가 우는 여름도,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청량함도, 젖은 발로 바위 위에 오르면 발자국이 찍히고, 따끈하게 데워진 바위 위에 잠시 앉아있으면 옷도 발도 금새 마르다는 것도.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시기도, 울긋불긋 온통 주황빛인 시절의 산의 모습도, 더이상 밖에서 밥을 먹을 수 없는 계절이 오기 직전의 높다랗고 파란 하늘도 안다.


  친구도, 가족도 없는 밴쿠버에서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것은 도시락을 싸들고 나가 밴쿠버의 평화롭고 넓은 자연 속에 앉아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밴쿠버의 심심함과 무료함, 반년정도 비가 오는 날씨에 질려 싫어하기도 한다. 한국과 비교하면 화려한 놀거리가 없는 밴쿠버에서 나는 내가 밖에 앉아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시는 소박한 시간을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늘이 넓고, 넓은 하늘 아래엔 눈 쌓인 멋진 산이 어느 시선에나 걸리고, 연두빛 잔디가 펼쳐져 있는 밴쿠버의 평범한 풍경이 너무도 좋다. 키가 크고 두꺼운 나무들이 푸른 모습이 너무도 좋다. 샌드위치나 주먹밥 같은것을 만들고 커피를 내려 밖에 나가는 것. 그 평온한 풍경에 마음 속 깊이 행복하다.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그 시간을 좋아했다. 연애할 때도 김밥을 사들고 공원에 앉아있는 것을 좋아했고, 회사 동기들한테도 벚꽃시즌이나 단풍시즌이면 점심시간에 피크닉 가자고 졸라서 도시락을 주문하고 돗자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출근했다. 약간 어색해하는 동기들에게 좋지 않냐고 외치면서. 하지만 직장인이 되고 난 후엔 그럴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으니까 특별한 날이라서 좋은줄 알았다.


  하지만 주말에도 평일에도 만날 사람이 없고 오직 공부하고 과제만 하는 지금 내가 지루해 하지 않고 진심으로 이 곳에서의 느린 생활을 행복하다 느낄 수 있는 것은, 결국 이 시간들을 내 삶에 새겨준 부모님 덕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부모님은 차가 없어서, 어쩌면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이곳 저곳으로 여행다닐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는 부모님은 새순이 돋아나는 계절에 감탄하고, 흩날리는 꽃잎을 귀하게 여겼다. 오이와 쌈장, 쌈채소와 밥, 김밥을 맛있게 드셨다. 밥을 먹고 나면 누워 하늘과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셨다. 그리고 그 옆에서 나도 그랬다. 밖에서 먹는 김밥이 너무나 맛있고, 햇빛이 아른거리는 그늘이 좋았다. 시원한 온도와 바람이 좋았다.


  서로 너무 다르고, 자주 싸우고, 이해할 수 없다며 부딪히는 우리 가족은 세자매가 다 자라 성인이 되고서도 여전히 싸우지만 산에는 함께 간다. 나처럼 모두들 순수하게 그 시간이 좋기 때문이지 않을까. 서로 피곤하기 때문에 여행은 함께 갈 수 없어도 점심 나절을 함께할 순 있다. 내가 서울에 온다고 하면 기숙사에 있는 막내동생도 두시간 걸려 집에 와 함께 산에 갔다가 다시 돌아갔었다.


  이 시간이 부모님이 내게 물려주신 가장 큰 것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30년동안 변함 없이 반복되는 평범한듯 소중한 일상을 지속해주신 덕분에 나는 어디에 있든 밖에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돗자리만 있으면 행복하다 여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 이야기를 부모님께 꼭 전하고 싶다. 산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면서. 쑥스러워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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