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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 Feb 21. 2023

청춘의 빛나는 순간을 엿보다

졸업 전 마지막 경기를 치룬 대학배구팀 선수들을 보며

  지난 11월 살면서 처음으로 배구 경기를 봤다. 규칙도 모르는 채로 직관한 경기는 생각보다 즐거워서 매주 금,토마다 있는 대학 간 경기를 시간 날 때마다 가서 봤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배구에 빠져들어 무척 재밌다는 배구 만화 '하이큐'를 11월 내내 독파했다. 애니매이션도 다 보고 만화책도 다 봤다. 팀 스포츠를 하는 고등학생들의 순수한 열정과 단순함, 평범한 사람들의 반짝임이 너무나 감동적이여서, 스포츠가 이리도 감동적인데 나는 그동안 왜이리 스포츠에 무관심했을까 싶기도 했다. (월드컵이나 지난 김연경 배구팀의 경기도 보지 않았던 정도이다)


  그 후 기말고사 기간이 되서 대학팀 배구 시즌이 멈췄다. 캐나다 대학들은 스포츠 팀이 너무나 다양하고 일상적이면서 특별히 체대생이 없다. 각자의 전공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 매주 금요일, 토요일마다 캐나다 전역으로 원정을 가기도 하고 홈에서 손님을 맞이하기도 하면서 경기를 한다. 주 2회 경기에 훈련까지 생각하면 공부를 언제하나 싶기도 했는데 그래도 기말고사 2주 전부터는 경기가 없다니 그 기간동안 벼락치기를 하겠구나 싶었다. 특히 한 선수는 특출난 윙스파이커인데 나랑 똑같이 경영학부생이었다. 저렇게 배구를 잘하는데, 저렇게 시원한 스파이크를 열몇개를 날려 승리를 이끄는데 이 어려운 공부까지 하고있다니 정말이지 신기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올해 1월 다시 시즌이 시작되었다. 우리 학교 배구팀 인스타를 팔로우해두고 경기 소식을 챙겨보고 있는데, 이번 경기는 특별히 Senior Night라고 했다. 2월에 졸업을 앞둔 선수 세명이 마지막으로 경기를 하는 날이다. 배구 규칙도 모르던 내가 몇번 직관하러 갔다고 벌써 내적 친분이 쌓이고 팬심도 조금 생긴 잘하는 선수 두명이 곧 졸업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급작스런 일정이지만 배구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가 진행되는데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들이 평소보다 훨씬 더 감정적인 상태라는 것을. 서브를 실수해도 늘 박수치며 다독이고, 실패를 위로하고 성공을 기뻐하며 경기하던 학생들이었는데 이번엔 실수를 하면 망연자실하며 슬퍼하는게 티가 났다. 회심의 스파이크를 쳤는데 블로킹에 막히자 얼굴을 감싸며 주저앉기도 하고. 상대방의 서브 턴엔 소리도 내며 방해도 했다. 낯선 모습이었다. 서브가 성공하거나 공격이 성공하면 미친듯이 기뻐했다. 양 팔을 위로 뻗고 소리를 지르고 방방 뛰어서 코치가 계속 워~워~ 했다. 너무 난리가 나서 나중엔 코치님도 진정시키기를 포기한 듯 했고, 선수들은 윙크를 날려대며 기뻐했다. 나 또한 덩달아 무척 흥분했고, 응원하는 관객들도 평소보다 함성이 컸다.


  그렇게 5매치 경기에서 2번을 내리 이기고, 3번째 경기 중 24점을 따서 매치포인트가 되었다. 1점만 나면 승리하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경기가 멈추고 졸업을 앞둔 선수들과 신입생들이 교체를 했다. 졸업예정 3명이 신입생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얼굴이 상기된 쭈뼛 쭈뼛한 모습의 1학년들이 코트에 들어섰다. 코트 밖으로 나온 졸업생들은 한명 한명과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진한 포옹을 했다. 경기가 진행중인 상황에, 마지막 매치 포인트에 지난 4년 또는 5년간 열정적으로 몸담았던 팀을 떠나 인사를 하는 것, 새로운 팀을 만들어갈 선수들을 들여보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 팀을 안지 두달밖에 안되었는데도 그 마음이 무슨 마음인지 알 것만 같았다. 1점을 더 내고 승리로 경기가 끝났고, 선수들은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꽃다발과 포옹을 받으며 기뻐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동생들이 그들의 마지막 경기를 응원하고 지켜보러 함께 앉아있었다. 가족들도 모두 아는 것이다. 그들에게 배구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그 모습을 옆에서 조용히 바라보다 경기장을 나왔다.  


  20대 초반, 빛나는 청춘의 시기에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배구에 쏟아 부은 이들. 그들은 프로 배구 선수가 아니기에 대학을 졸업하면 각자의 일을 이어간다. 고등학생 때도 대학생 때도 배구팀에서 함께 배구를 했던 이 선수들은 사회에 나가면 이 시절처럼 배구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후배들의 경기를 보러 오기도 하고, 사회인 배구팀 선수로 뛰기도 하겠지만, 이 시기처럼 온 마음을 쏟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도 지난 20대에 밴드 활동을 하면서 매일 합주실에 모여 연주하던 시간들, 공연 직전엔 만사 제쳐두고 연습에 몰두하고, 공연 전날 새벽 합주실에서 나와 맑은 밤공기에 산뜻한 기분으로 동그랗게 모여 화이팅을 외치던 순간, 무대에 오르면 못할까봐 걱정되던 마음은 다 사라지고 즐겁다가 정신 차리니 공연이 끝나 있던 감각 같은 것을 안다. 잘했던 못했던 함께 한 사람들과 얼싸안고 그저 기뻐하던 마음을 안다. 그렇게 마지막 공연을 한 후에는, 종종 그 시절이 그리워 합주실에서도 만나고, 직장인 밴드 공연 준비를 하기도 했지만 결국 흐지부지 했던 시간을 지나왔다. 10년도 더 된 기억인데도 생생하고, 자주 그 시기를 추억하며 미소 짓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더욱 애틋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어린 시절의 내가 그런 시간을 가졌다는게 기특하다. 수십년이 흘러서도 흐뭇하게 돌아볼 시절인걸 알기 때문이다.  


  이제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는 어린 선수들의 울고 웃는 표정을 보며 지난 날의 나를 떠올렸다.


  인생에서 특히나 반짝이는 시간, 그 시간을 마무리 하고 떠나야 할 때 너무도 아쉽고 슬프지만, 그렇게 마음을 다해 아쉬워할 무언가를 가졌다는게 얼마나 행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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