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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 May 06. 2023

강아지 구경

인사해도 될까요?

  기말고사와 이사로 4월이 바빴다. 정리도 슬슬 끝나서 즐거운 무언가를 하고싶어 생각해보니 신나게 뛰노는 강아지들의 몸짓과 표정을 제일 보고싶었다. 겨우내 30분정도 걸어서 가장 가까운 오프리쉬(목줄을 매지 않아도 되는 곳) 해변에 다다르면 오직 기쁨만 있는 양놀고 있는 강아지들을 보는게 내겐 아주 큰 즐거움이었다. 그 장소를 알게된 덕분에 5달동안 비가 오는 회색빛 밴쿠버의 겨울을 잘 날 수 있었다.


  들뜬 마음으로 피크닉매트를 챙겨 오프리쉬 해변으로 향했다. 어느새 봄이 완연해서 초록빛 잔디와 버드나무의 눈부신 연두가 가득했고, 풀밭엔 노랑 민들레와 작고 흰 데이지가 한창이었다. 지난번 왔을때만 해도 나무는 헐벗은 모습이었는데 눈깜빡할 새 봄이 왔다.


  강아지들이 쌩쌩 달리는 잔디 한가운데에서 비켜난 곳에 피크닉매트를 펼쳤을 무렵 전문 강아지산책인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남편과 나는 '전문가'들이라고 칭하는데, 오후 2시 정도면 적게는 섯마리 많게는 열마리까지의 강아지를 홀로 거느린 사람들이 이곳에 온다. 특히 대형견을 많이 키우는 밴쿠버에서는 하루에 3시간 정도는 산책을 해야하는 반려견의 활동을 위해 아침 저녁으로는 직접 산책을 하고, 오후엔 강아지산책인에게 맡긴다. 우연히 이곳에서 그들이 모이는 것을 보고 언제부턴간 일부러 시간을 맞춰서 강아지구경을 나온다. 이 날엔 피크닉매트에 앉아있는 우리에게 신난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달려와 안기고 갔다. 너무나 귀엽다.


  보통 이시간대의 강아지들은 전문산책인의 차에서 우루루 내린다. 즐거움으로 잔뜩 흥분한 강아지들은 너른 잔디밭을 겅중겅중, 깡총깡총, 쏜살같이 달린다. 그러다가 다른 산책인의 다른 그룹의 개들이 나타나면 서로 정신없이 냄새를 맡고, 뛰고, 구르며 논다. 해맑게 웃는 얼굴로 달리고 있는 빠른 모습을 보면 내 마음의 어려움도 청량하게 사라진다. 걱정과 고민은 댕댕이의 표정에 한번 씻기고, 그들의 달리기에 날아간다. 한바탕 흥분이 지나면 산책인들은 간식을 들고 해변으로 향한다. 그러면 또다시 우루루 강아지들이 바닷가로 가서 물에 풍덩 풍덩 뛰어든다. 일터에서 서로를 매일 만나는 산책인들은 서로 인사를 하고 나뭇가지나 공을 멀리 멀리 던져준다. 그러면 강아지들은 또 풍덩 풍덩 수영해서 나뭇가지를 물고 돌아온다. 너무나 사랑스럽다.


  이 시간에 나는 그저 하얀 모래밭 한귀퉁이에 서있거나, 통나무 위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본다. 캐나다는 반려견 문화가 오래되어 개가 아기일때부터 교육을 잘 시키기도 하고, 한사람이 여러마리의 강아지를 통제하면서 산책해야하는 전문 산책의 특성 상 주인이 생각할 때 문제가 일어날 일이 없는 강아지만 맡기기 때문에 대체로 내게 관심이 없다. 그저 자기들끼리 뛰놀뿐이다. 간혹 운이 좋으면 통나무 근처까지 냄새를 맡으러 온 강아지들이 내 손에 킁킁거리다가 쓰다듬어 주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그러면 길을 걷다 네잎클로버라도 발견한 것 같은 마음이 되어 강아지를 쓰다듬고 엉덩이도 토닥토닥 해준다. 한순간 아주 아주 행복해진다.


  강아지를 키워본적이 없는 나는 몇달 간 강아지를 구경하면서 강아지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견종별 특징을 조금쯤 알게되었다. 앞발을 바닥에 바짝 붙이고 엉덩이를 높이 들며 꼬리를 살랑 살랑 흔드는 '놀자', 가지런히 앉아 얼굴을 높이 들고 월 한번 짖는 '던져줘', 나를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슬그머니 와서 내 손을 킁킁거린후 다리 곁에 빠짝 서서 엉덩이를 붙이면 '토닥토닥해줘', 토닥토닥의 손길이 맘에 드는지 앞에 착 앉으면 '더 쓰다듬어줘' 같은 것들. 내게 다가와주는 강아지들은 주로 골든리트리버나 래브라도 리트리버, 커다란 푸들, 바셋하운드이고, 셰퍼드나 진돗개와 닮은 늠름한 개들과 영민하게 움직이는 보더콜리, 시바는 관심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을 좋아하는 견종이 앞에 보이면 일부러 그쪽으로 걷기도 한다.


  산책로를 걷다보면 내게 오고싶은 티가 나는 강아지가 있는데, 그런 경우 자신의 개가 무척 Friendly (사교적인 개에게 쓰는 그들의 표현)하고, 예쁨받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하트 나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내게  주인이 먼저 인사를 한다. 그러면 강아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를 칭찬하고 인사를 해도 되냐고 묻는다. (Can I say hi?) 얼마든지요. 라고 대답을 들으면 그때 손 냄새를 맡게 한후 몸을 낮춰 목 주변을 긁어준다. 눈높이가 맞춰지고, 강아지들은 화사하게 웃는다. 내가 강아지를 쓰다듬는 동안 주인은 무척 뿌듯하고 기쁜 표정으로 강아지를 칭찬한다. (Good girl~ Good boy~~) 특히나 사람을 좋아하는 강아지를 만나면 나는 일상적인 산책 중 특별한 순간을 마음에 새긴다. 그 순간이 투명하게 기쁘기 때문에, 매일 산책을 나가고싶어진다.


  강아지를 특별하게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일부러 오프리쉬 공원과 해변에 찾아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수십마리의 강아지들이 마음껏 뛰노는 풍경은 밴쿠버에서는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오래 오래 그리워할 평화롭고 아름다운 장면이라는 것을 안다. 날이 좋은 날 가만히 앉아 누릴 수 있는, 행복감을 느끼는데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이 순간들을 자주 누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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