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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 Aug 09. 2023

캐나다 과일 산지에서 여름 캠핑을

켈로나 오카나간 노스 캠프그라운드(okanagan north)

  복숭아, 살구, 체리, 자두, 블루베리. 햇빛에 빛나는 탐스러운 색깔들. 내겐 행복의 장면이다.


   작년 여름 캐나다 밴쿠버에 도착해 무척 좋았던 것 중 하나는 과일이 무척 싱싱하고 저렴하다는 것이었다. 과일을 너무 좋아해서 과수원집 아들과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엄마는 과수원에 시집가진 않았지만 딸 셋의 태몽을 모두 과일로 꾸시고는, 자식들을 모두 과일의 맛을 잘 아는 아이들로 키웠다. 그런데 자취하며 알게 된 과일은 언제나 비쌌고, 신선하고 맛있는 과일은 더 비쌌다.


  그런 내게 보통 원룸 월세가 250만원이 넘고, 서브웨이의 반쪽짜리 샌드위치 단품만 먹어도 만원을 내야 하는 생활비 비싼 밴쿠버에서 과일이 한국보다 저렴하다는 것은 아주 큰 기쁨이었다. 무엇보다, 여름 내내 밴쿠버에는 팜 마켓(농산물 직거래 시장)이 주기적으로 열리기에 유통 과정 없이 농장에서 바로 온 과일과 채소들을 구할 수 있다. 마트에서 산 과일 채소와 농장에서 갓 수확한 과일 채소의 차이를 나는 처음 깨닫게 되었다. 왜 도시 농부들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주말에 텃밭을 가꾸며 수확하는 기쁨이 크다고 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왜이렇게 과일이 맛도 가격도 괜찮은가 했더니 캐나다 과일의 20%를 밴쿠버가 속해 있는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서 생산하며, 밴쿠버에서 차로 4시간 거리에 있는 오카나간 지역이 건조하고 햇빛이 충분해서 과일 산지로 유명하다. 최근 이효리가 방송 '캐나다 체크인'에서 서핑을 하고 와이너리의 레스토랑을 갔던 켈로나(Kelowna)라는 도시가 오카나간 지역의 대표적인 곳이다. 날씨 덕에 질 좋은 포도가 나서 좋은 와이너리가 많은 와인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름 캠핑장을 4달 전 오픈 시간에 맞춰 미리 예약하면서 이 지역에 오래 머물고 싶어 오카나간 캠핑장을 3박 4일 잡아두었다. 예약할 때는 와이너리 시음도 하고, 레스토랑도 가고, 크고 아름다운 오카나간 호수에서 물놀이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3박 4일간의 캠핑을 완벽한 여름 휴가로 만들어준 것은 과일이었다.


  4시간을 달려오자 곳곳에 과일 직판장(fruit stand) 표지판이 보였다. 과일 직판장에는 농장에서 갓 따온 과일들이 수북이 쌓여 있고 직접 과일을 골라 담아 무게로 살 수 있었다. 체리나 복숭아 같은 제철 과일 아이스크림이나 스무디도 팔았다. 달콤하고 상큼한 과일향에 무척 신이 난 나는 캠핑장에 들어가기 전 오카나간 지역에서 유명한 레이니어 체리, 살구, 복숭아를 골랐다. 매일 이것 저것 골라 사먹고 싶어서 조금씩 집었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3만원은 했을 과일이 만원도 안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과일을 씻어 그늘막 텐트 아래 앉아 먹는 맛. 반짝이는 여름의 맛. 그 덕에 3박 4일의 캠핑 일정은 이러했다. 원래는 캠핑장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라면을 끓여 먹는데 이번엔 눈뜨자 마자 과일을 씻고 커피를 내렸다. 23~24도 정도의 부드러운 공기를 느끼며 보통의 체리보다 단 맛이 더 강한 레이니어 체리, 보드라운 살구, 달콤 상큼한 복숭아를 먹었다. 체리의 껍질은 노랑, 빨강, 주황이 섞여 예뻤고 달았다. 살구의 식감이 이렇게 극세사 이불처럼 부들부들한지 몰랐다. 복숭아는 노란 속살에 부드럽고 꿀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한국의 황도 복숭아처럼 보였는데 과일 직판장에는 붉은 천국(red heaven)이라 써있었다. 가히 천국의 과일 같은 맛이었다. 과일이 달아 모카포트로 내린 블랙 커피와 잘 어울렸다.


  오전 내내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과일을 한알씩 먹고 있다보면 점심 시간이 되었다. 평소였으면 짜장밥이나 라면, 제육볶음이나 전골같은 메뉴를 준비하는데 여기에서는 직판장에서 사온 신선한 잎채소와 갓 구운 빵, 복숭아 잼으로 가벼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와이너리 도시답게 마트에서 각종 치즈를 팔아서 올리브와 치즈를 곁들여 먹었다. 신선하고 산뜻했다. 자리를 정리하고 나면 30도를 넘어 더워져 차를 타고 캠핑장 밖으로 나가 또 과일 직판장에 갔다. 그날 저녁과 다음날 아침에 먹을 과일을 고르고 과일잼이나 샐러드 드레싱, 각종 과일과 채소를 구경했다. 제철의 과일과 채소는 빛이 나서 보고만 있어도 마음에 투명한 기쁨이 차올랐다. 과일 직판장은 대부분 직접 과일을 딸 수 있는 과수원을 끼고 있었는데, 과수원 앞에 놓인 벤치나 테이블에 앉아 햇빛에 빛나는 복숭아 나무나 체리 나무를 보면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어디에서나 과일 농장과 오카나간 호수가 보였다. 도시 전체가 아름다웠다.

  

  외출을 하고 돌아와서는 한두시간 호수에 튜브를 띄우고 물놀이를 했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밴쿠버에는 호수가 무척 많고, 사람들은 애기였을 때부터 호수에서 수영을 해서 다들 수영을 잘한다. 켈로나도 마찬가지였다. 두살정도 되는 아기도 호수에서 놀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호수에서 수영을 한다. 어떤 가족은 아이들보다  아빠가 더 신나보였다. 스노쿨 장비까지 끼고 신나게 수영을 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튜브를 안고 둥둥 떠있었다. 한국에서는 수영을 잘 못하고 물놀이도 좋아하지 않아 워터파크 한번 가본적이 없는 나는 1년 전 캐나다에 와서 호수 수영하는 사람들을 보고 겨울 내내 수영장에 다니며 헤드업 평영을 연습 했다. 나도 이런 대자연 속에서 수영을 하고 싶어서. 그 덕에 올 여름에는 나도 호수 수영을 할 수 있었다. 즐거웠다. 무엇보다 시원했다. 물놀이를 안좋아했던 나는 계곡이나 바다가 왜 피서지인지도 몰랐었다. 에어컨 켜둔 집이 제일 시원하다 생각했는데, 찬 물에 몸을 담그고 놀고 있으면 더위는 다른 세상일처럼 느껴졌다. 새로 알게되는 즐거움이 곳곳에 있었다.


  한낮의 온도가 낮아질 때쯤 호수에서 나와 샤워를 하고 캠핑장에 돌아와서는 저녁 준비를 했다. 평소에는 고기와 소세지를 잔뜩 구워먹는데 이번에는 산지에서의 과일과 옥수수를 더 먹고 싶어서 고기양을 줄였다. 내 몫으론 고기를 딱 180g만 사고 옥수수를 구웠다. 브리티시 콜롬비아주의 옥수수는 찰옥수수가 아니고 한창 한국에서 유행했던 초당옥수수였다. 겉모습으로는 구분이 안되는데 껍질을 까보고 알았다. 수분감이 많아 톡톡 터지는 옥수수를 그릴에 구우니 달달하고 맛있었다. 갓 수확한 제철의 과일과 채소가 이렇게나 맛이 있다니, 라면도 고기도 줄이고 대신 먹을만큼 좋았다. 이렇게 저녁을 먹으니 속이 편안하고 술을 덜 마셔서 밤 늦도록 불멍을 하며 책을 읽다가 별이 떠오르는 것을 즐겼다. 캠핑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과일 직판장에 들러 집에서 먹을 신선한 과일들을 샀다.

  

  이렇게 3박 4일을 보내며 단순하고 건강한 먹거리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제철 과일과 채소는 이렇게나 맛이 있으면서 속이 편안하다. 캠핑을 하면 자극적인 음식들을 주로 먹어서 몸이 붓고 찌뿌둥하기도 했는데 몸도 마음도 가뿐했다. 여름 과일은 보기만 해도 탐스러워서 가만히 앉아 천천히 먹을 뿐인 시간도 충만했다. 평소라면 초코렛이 들어간 비스켓이나 마시멜로우를 먹을텐데 그런게 생각도 나지 않을만큼 좋았다. 이번 여름 과일 산지에서의 깨달음을 시작으로 가지나 호박,토마토, 감자나 배추같은 채소들도 제철에 찾아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미각의 즐거움을 위해 자극적인 것들을 찾아왔으나 단순하고 섬세한 미각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조금쯤 알 것도 같다. 어쩌면 이번 캠핑을 계기로 내 몸에도, 지구에도 좋은 방향으로 먹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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