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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 May 12. 2023

한달여행 짐을 가방 하나에

캐리온백팩이면 충분한 미니멀 여행가방싸기

  이제 곧 미서부 로드트립을 떠난다. 종강하고 이사와 짐정리를 끝내서 홀가분한 채로 긴 여행을 떠날 수 있어 기쁘다. 이번 여행은 호텔과 에어비앤비, 캠핑장을 돌아가면서 머물도록 준비를 했다. 긴 시간 운전하며 이곳 저곳을 다니는 로드트립 자체가 처음이라 체력과 시간과 돈을 적절히 쓰고도 아끼기 위한 선택이다.


  여행이 다가오면서 가장 신경쓰이는 것은 짐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먹고 살기가 어려워지면서 미국 여행 중 자동차 유리를 깨고 물건을 가져가는 정도가 심해졌다 들었다. 대형마트며 호텔 주자창에서도 유리창이 깨지니 차에는 아무것도 두고 다니지 말라고 한다. 그러니 호텔에 들어갈 때 차에 있는 모든 짐을 들고 들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짐을 최대한 줄여야만 하는데 캠핑장에서 자려면 단 하루를 자려고 해도 기본적으로 텐트와 침낭, 매트, 추위를 막아줄 물주머니, 물을 끓이기 위한 버너, 냄비가 필요하다. (그냥 맨몸으로 자는 기안84같은 여행은 불가능하다ㅎ.ㅎ) 그래서 우리는 캠핑장에서 자고도 다음날 여행을 지속할 수 있을만큼 체력을 보존하는 짐을 챙기는 대신 일반적인 짐을 최소화시켜 보기로 했다.


  밴쿠버에 살며 방학이나 연휴에 부지런히 여행을 다닐 때 수하물로 인한 번거로움을 줄이고자 우리는 기내용 백팩만을 챙겨다니고 있었다. 4박 5일 오로라 여행을 위해 한겨울의 부피가 큰 옷을 챙겨도 기내용 백팩만으로도 가능했고, 짐을 부치고 찾는 시간이 절약되고 잃어버릴 걱정도 없고 저가항공을 이용할 때 추가되는 수하물 비용도 없어 만족스러웠다. 이번에도 각자의 짐을 백팩에 챙기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기존의 4박 5일짜리와는 달리 한달이기도 하고, 로드트립 중 모든 계절을 다 겪을 수 있어 짐을 챙기는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나파밸리나 LA는 20도 중반을 넘어 초여름정도의 날씨이다. 요세미티나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깊은 산이고, 오뉴월에도 간혹 눈이 온다. 가장 추울 곳에서 텐트에서 잔다. 사막인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이나 그랜드캐년은 30도를 넘는 한여름이다. 캐나다에 나와 살며 전과 달리 예민함을 잠시 잊고 무던하고 가볍게 여행다니고자 하지만, 기본적으로 약골이고 체력이 약한 나는 아프지 않고 여행할 준비가 필요했다.


  고민끝에 무엇이 내게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를 생각했다. 나는 여행 중 내가 들어간 사진을 찍는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진도 찍지 않고 대부분 국립공원의 트레일을 걸을 것이라 옷을 대폭 줄이기로 했다. 세탁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손빨래로도 잘 마르는 운동복 상의 3장, 바지 3장, 바람막이1장, 경량패딩1개, 운동복만 입고 예쁜 도시를 다니고싶지는 않아서 챙긴 청바지1개와 흰 셔츠 1장, 수영복 1장, 양말과 속옷 3개씩 챙기니 부피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히트텍1장과 비니를 추가했다. 날이 갑자기 추우면 히트텍에 운동복, 바람막이, 경량조끼, 경량패딩을 한꺼번에 입으면 된다. 세면도구는 폼클렌징, 여행용기에 담은 샴푸와 바디워시, 선크림, 칫솔, 치약, 립밤을 챙겼다. 화장은 안하니 찢어서 쓸 수 있는 종이세제, 스포츠타월과 여성용품, 상비약을 넣고도 가방이 여유가 있었다. 작은 블루투스스피커를 넣고 가방을 닫았다. 항상 지니고 다닐 숄더백에는 여권과 지갑, 보조배터리, 팔토시, 선글라스, 펜과 작은수첩, 경량조끼를 챙겼다.


  이렇게 쓰고보니 한달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다 챙겼는데 백팩과 숄더백으로 충분하다. (캠핑짐은 외로 한다.) 캐나다에 오기 전 여행을 다닐 땐 항상 큰 캐리어 하나를 끌고 다녔다. 키도 작고 힘은 약해 캐리어를 끌고 이리저리 다니는게 버거웠다. 하지만 여행을 다닐 때 캐리어 없이 백팩만 가지고 다닌다는 생각을 해본적도 없다. 옷들과 화장품, 신발이 캐리어를 꽉 채웠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걷고, 자연을 누리는 것이라는걸 깨닫고 사용하는 물건을 덜어내며 4박 5일, 5박 6일짜리 여행도 백팩만으로 충분하더니 한달짜리 여행도 이것으로 충분하다. 신기한 일이다.


  이렇게 꼭 필요한 물건들을 가지고 무겁지 않게 여행을 하다보면, 언젠간 더 적은 짐으로 가볍게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한참을 헤아려 물건을 챙기지만, 이번 한달여행을 하고나면 한걸음 더 나아가 알 수 있지 않을까. 여행중인 내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나를 힘들게 하는 것과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긴 여행을 마지고 돌아와 이곳에 무엇이라 글을 쓸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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