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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 Jun 17. 2023

시간과 돈이 절약되는 작은집생활

선택과 집중이 쉬워진다

  각자의 취향과 취미가 확고하고, 즐거움을 만들어낼 물건을 꽤 갖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 반드시 필요한 물건 외에는 소유하지 않는 미니멀라이프는 맞지 않는 옷이다. 하지만 미니멀라이프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게 정확한 기쁨을 주는 물건들만을 소유하고 가볍게 살고 싶은 건 나의 오랜 마음이었다. 깔끔하게 정리 정돈을 하지 못하고, 청소도 즐기지 않기에 먼지 쌓인 물건들이나 아무렇게나 놓인 물건들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부지런하지도 않아서 기분만 나쁠 뿐이었다. 계절이 지날 때마다 옷을 세탁하고 말리고, 드라이 맡기고 수납하고 꺼내는 것이 귀찮고 싫었다. 그렇지만 딸 셋을 키운 엄마가 계절마다 하는 일이었기에 당연한 일인줄만 알았다.


  그런데 12평짜리 작은 집 생활을 한지 한달 째,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 쓰지 않아도 되는 돈이 많았다는 것을 느낀다. 캠핑 천국 밴쿠버에 왔으니 캠핑은 꼭 해야했기에 물건이 많아 12평 집에 둘이 사는 것이 불가능한 줄 알았으나 차근 차근 정리하고 비워냈다. 그리고 좋은 점도 많이 발견했다. 그런데 더 지내보니 작은 집에 사는 덕에 우리의 전반적인 삶의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게 느껴진다.


  먼저 식습관이 달라졌다. 남편은 요리를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날 잡아 멀리 있는 코스트코나 대형마트에 가면 면이나 소스, 고기를 잔뜩 샀고, 돌아와서 매 끼 신나게 요리를 하며 이삼일 연달아 과식을 하다가 둘이 먹기엔 너무 많아 상해서 버리거나 유통기한이 지나서 버렸다. 그런데 이 집은 냉장고가 내 키보다 작기 때문에 식재료를 그렇게 많이 살 수가 없다. 안들어가니까. 그 덕에 꼭 하고 싶은 요리가 있으면 집 근처 중형마트에 가서 한두끼 먹을 재료만 사와 요리해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그 다음 끼니는 샐러드나 샌드위치, 간장계란밥 정도로 가볍게 먹는다. 그 덕에 과식할 일이 잘 없고 요리한 음식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사실 대형마트에서 식재료를 사는것이 단위로 따지면 더 저렴하기에 적은 양의 식재료를 더 비싸게 사기가 망설여졌다. 그 덕분에 우리는 자주 과식을 하고 소화제를 먹고 살이 쪘다. 작은 냉장고가 우리를 '어쩔 수 없이' 작은 양의 식재료만 구입하게 만들어줬고 소화제를 먹지 않는 건강한 식습관을 만들어줬다. 

  또 나는 군것질을 좋아한다. 특히 단 것을 좋아해서 초콜렛, 초콜렛 바른 비스켓, 꿀, 아이스크림, 믹스커피 등을 갖고 있고 단것만 먹으면 질리니 감자칩도 대용량으로 사두고 잼도 여러 종류를 갖춰두었다. 그런데 남편은 군것질을 하지 않아서 혼자 먹다가 유통기한이 지나면 버리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군것질거리를 저장해 놓을 수납장과 냉장고가 부족해서 군것질거리를 마음껏 살 수가 없다. 그 덕에 작은 양의 제철 과일과 초콜렛 조금으로 당분에 대한 욕구를 채우고 있다. 이쪽이 훨씬 좋다는것은 옛날부터 알았지만 마트에서 보는 순간 먹고 싶은 것을 참을 수가 없었는데 이제 놓을 곳이 없어서 잘 참는다.


  소비습관도 바뀌고 있다. 이번에 거의 한달 간 미국여행을 하면서 거의 매일 기념품샵을 구경했다. 요세미티, 그랜드캐년, 옐로우스톤같이 큰 국립공원은 기념품샵의 크기도 어마어마하고 머그컵, 텀블러의 종류만 100개는 되는 것 같았다. 옷이며 가방, 인형, 장식품이 정말 많았고, 아름다운 대자연에 취한 사람들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너무 귀엽고 예쁜 기념품이 다 갖고 싶었지만, 기념품이란 결국 예쁜 쓰레기가 되는 것. 자취방에서 신혼집으로, 신혼집에서 캐나다로 이사를 하면서 먼지 쌓인 낡은 기념품들, 더 이상 내게 여행지에서의 설렘을 상기시키지 않는 기념품들은 버리기도 나눔하기도 애매해서 제일 골치 아픈 물건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사게 되는게 기념품인데 돌아가서 기념품을 진열할 곳이 없기 때문에 사지 않을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자석과 여행가방에 꼽을 핀을 기념품으로 고심해서 고르고, 바이슨 인형같은 것들은 소비 욕구를 참을 수 있었다.    


  마트에 가서도 각종 할인을 하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물건을 보면 그 물건 덕분에 내 생활이 더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카트에 담아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사게 되었었는데 이제는 계산 영수증의 금액이 예상 범위를 넘지 않는다. 


  선택과 집중도 더 쉬워졌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애매하게 가지고 있었던 옷들을 또 많이 비웠다. 그 덕에 방 한켠 벽장에 두 사람의 4계절 옷을 잘 수납했다. 이사를 거듭하면서 가진 옷을 1년 전에 비해 반 넘게 줄였는데 전혀 불편하거나 아쉽지 않다. 같은 옷만 입어서 지겹지는 않을까 했는데 진짜 좋아하는 옷만을 남겼더니 매일 기분 좋게 옷을 고른다. 이 사실을 이 작은 집 덕분에 깨달았다. 한국에 돌아가면 또 방 한칸을 당연하게 옷방으로 만들 줄 알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게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 방 한칸은 옷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 좋아하는 것으로 채울 수 있다. 나무결이 마음에 드는 원목책상을 두고 글을 쓰는 서재로 만들수도 있겠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 정리를 해야하는 수고로움도 없어졌다.


  이 집에서는 청소도 20분이면 끝난다. 화장실도 욕조 대신 샤워부스가 있고 건식으로 쓰다보니 깨끗하게 유지되서 청소 주기가 길어졌다. 주말이면 몇시간을 청소기 돌리고 막대걸레로 바닥 닦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계절별로 옷정리 하던, 좋아하지 않던 청소 시간이 이렇게나 줄어들 수 있는 것인지 몰랐다. 그때는 세탁기, 건조기, 식기세척기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공용세탁기를 쓰느라 밖에 나가야 되고 식기세척기도 없는데 집안일에 쓰는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


  정말이지, 스스로의 의지로 바꾸기는 어려웠을 요즈음의 생활이 마음에 든다. 물건을 사고 정리하고 버리는데 써왔던 수많은 돈과 시간이 온전히 내게 남아, 글도 쓰고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재밌는 걸 할 수 있게 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꼭 30평대에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면 많은 대출로 살아가야하는데,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아졌다. 억지로 무언가를 선택하는게 아니라 진정으로 우리의 삶에 잘 맞는 것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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