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하고 나눔 받는 것은 미니멀라이프를 실현하는 좋은 방법이다. 필요 없는 물건을 처분하기에도, 잠시 필요한 물건을 얻기에도 유용하다.
1년 전 출국 준비를 하며 집을 비울 때부터 중고거래어플을 적극 활용했다. 내가 더 이상 쓰지 않을 물건을 포장해서 택배로 부치는 것은 품이 많이 들지만 동네 기반 중고거래어플을 쓰면 대면하지 않고도 사람들이 물건을 가져갔다. 중고로 값을 받을 수 있는 물건은 값을 받았고 한참 올려두어도 주인이 생기지 않는 물건은 나눔으로 비웠다. 쓰레기봉투에 넣는 것보다야 품이 들지만, 이 물건이 쓰임을 다할 수 있도록 조금의 노력을 더했다.
외국에 나와서는 한국에서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눔하고 나눔 받는 생활을 하고 있다. 캐나다 밴쿠버는 1년 또는 2년 단기로 사는 외국인들이 많다. 유학으로도 자녀 교육을 위해서도 살기 좋은 도시라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산다. 그래서 사람들도 물건을 대할 때 잠시 필요할 때 쓰고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태도로 산다. 출국 준비를 하면서 접한 단어는 '테이크 오버'라는 개념이었는데, 밴쿠버를 떠나는 사람들이 밴쿠버로 들어오는 사람에게 가구와 살림살이 일체를 한꺼번에 넘기는 것이다. 주로 큰 가구와 가전의 적당한 중고 가격을 정한 후 주방 집기, 자잘한 생활용품을 함께 넘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것도 만만치 않으니 떠나는 사람에게도 들어오는 사람에게도 비용적으로, 시간적으로 서로에게 윈윈이다.
밴쿠버는 공산품의 물가가 비싸서 욕실용 실내화 하나만 해도 만오천원 정도 한다. 집이든 회사든 언제나 근처에 다이소가 있어 이천원 삼천원으로 자잘한 생활용품을 쉽게 샀던 나는 이제 어떤 것도 쉽게 사지 않는다. 대신 중고거래 플랫폼이나 이웃들에게 물건을 구한다. 언제나 떠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번엔 오래된 기내용 캐리어를 나눔 받았다. 기내용 백팩이 이미 있는데 너무 무거워서 이동할 때 지쳤다. 남편은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것보다 등에 메고 다니는 것이 효율적이라 했지만 그는 나보다 키 크고 힘이 세니 내 효용이 어떤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도 캐리어랑 백팩 중 뭐가 더 좋을지 모르겠어서 한번 써보고 비교해보고 싶어 사지 않고 받았다. 바퀴 두개 짜리 낡은 캐리어였지만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러 4시간 비행을 하는 여행을 할 때 백팩보다 편안해서 기내용 캐리어를 쓰기로 결심했다. 바퀴 두개 짜리는 네 개짜리 캐리어보다 끌고 다니는데 힘이 많이 들어서 네 개짜리 캐리어를 다시 구하기로 하고 이 캐리어는 나눔했다. 가족들이 잠깐 놀러오는데 한 번 쓸게 필요하다는 누군가가 잘 가져갔다.
내 물건들도 자주 나눔한다. 2층집 타운하우스에 9달 동안 살 때는 청소 시간을 줄여보려고 막대 걸레를 샀다. 그런데 원베드룸으로 이사를 오니 막대 걸레를 쓸 수 있는 곳은 손바닥만한 화장실 바닥뿐인데 몇달 지내보니 막대 걸레는 자리만 차지하고 쓰지 않아서 최근에 비웠다. 몇 년전 샀던 1000ml짜리 보온병은 이곳 저곳에서 선물로 받은 400ml와 750ml짜리 보온병에 밀려 쓰지를 않아 역시 얼마전 비웠다.
좁은 집에서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식재료 관련해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세일한다고 식재료를 쟁여두지 말라고, 물건을 두는 그만큼의 공간을 내가 쓰지 못하는 것이라고. 마트 선반을 내 식재료 선반으로 생각하라고 한다.
12평 원베드룸에 사는 지금, 그 말을 정확히 이해한다. 나는 중고거래플랫폼과 이웃 단톡방을 다용도실이나 붙박이장처럼 쓰고 있다. 매일 쓰는 물건은 다용도실이나 창고방에 들어있지 않다. 가끔만 쓰는 물건들이 그 안에 쌓여 있다. 잠깐 쓰고 오래 넣어두듯 물건을 나눔 받아 쓰고 다시 나눔한다. 내가 사놓고 잘 쓰지 않는 물건을 창고에 다시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잘 쓸 누군가에게 보낸다.
24평 신혼집은 처음 아파트가 지어질 때부터 화장실로 설계된 한 공간이 화장실이 아닌 조그마한 방으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둘이 사는데 화장실 두개가 꼭 필요하지 않으니 안방 옆에 붙은 작은 창고 방이 있어 특히 좋았다. 그 창고 방은 언제나 유용한 것 같았는데 출국 준비를 하면서 아주 고생스럽게 정리한 방이다. 그 방이 있었던 탓에 나는 평소에 안쓰는 물건을 정리하지 않고 몇 년을 쌓아두다가 급하게 정리를 했다. 그 방에 넣어둔 줄도 잊었던 그런 물건들을. 그 때 살던 공간의 반밖에 되지 않는 공간에 살면서도 부족함이 없이 편안한 것은 미니멀라이프를 몸에 익히고 나눔하고 나눔 받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임을 안다.
언뜻 보면 비용적인 손해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도, 물건을 테트리스 해서 넣기 위한 수고로움, 공간에 지불하는 월세, 정신적 스트레스 같은 걸 함께 생각해보면 이 방식이 내게 잘 맞다. 사람들이 늘 떠나고 물건을 잠깐 쓰는 외국에서 이 생활을 충분히 연습해야겠다.